기대가 깨진 자리, 자라나는 피해의식

비존중의 아픔 3편

by 학연서

내가 원한 건 '인연'인가? '인형'인가?

우리는 타인의 취약성을 안아줄 수 있는 따뜻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힘을 발휘하려면 먼저 '환상'이라는 안개를 걷어내야 합니다. 내 기대가 만든 인형이 아닌, 조금은 서툴고 부족해도 살아 숨 쉬는 진짜 나와 너가 마주할 때, 우리는 현실의 땅 위에서 단단한 관계를 짓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따뜻했던 마음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환상은 달콤해도 현실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내가 만든 환상대로 상대가 움직여주길 바라면, 그 요구는 상대에게 '감정적 지옥'이 됩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면 너도 이 정도는 해줘야지."

"사랑한다면 당연히 이래야 하는 것 아니야?"


어느덧 상대는 고유한 인격체가 아니라, 내 필요를 채워줘야 하는 '역할'로 전락합니다.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자리엔 불만과 날 선 평가가 들어앉습니다.


상대도 사람인지라 지칠 때가 있고, 기분이 나쁠 때도 있고, 예전처럼 다정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날도 있습니다. 또한 존중이 부재한 관계에서는 상대 역시 자신이 쓴 '환상의 시나리오'대로 내가 행동해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쌍방이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기만을 바라다보면, 언제나 따뜻할 것만 같았던 관계 속에 차가운 바람이 불어닥칩니다. 장점 뒤에 가려 있던 취약한 모습, 묵묵부답이거나 이기적인 모습이 현실의 민낮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상대가 대놓고 나의 시나리오와 다르게 행동하는 순간, 배신감을 느낍니다. 믿었던 사람의 낯선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드는 시간. 달콤했던 환상이 무너지고, 거친 현실의 마찰이 시작됩니다.


이 아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잠시 멈추어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볼 기회입니다.


"나는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좋아한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거라 기대했던 인형을 좋아했던 건 아닐까?"


관계가 흔들리는 건 상대만의 탓이 아니라, 애초에 내가 쓴 시나리오에 허구가 섞여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진실을 마주하기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방패를 들어 올리고, 상대방을 향해 화살을 겨누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나의 괴로움을 넘어 관계에도 독소가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혼란 속의 줄다리기: “다 너 때문이야”


'변했네!'


처음 만났을 때 상대가 보여준 정중한 예의를 존중이라고 착각했다면, 관계가 깊어진 뒤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과거의 호감보다 훨씬 강렬한 파괴적 감정을 느낍니다. 바로 무시당한다는 모멸감입니다.


이 격랑의 순간, 누구의 책임인지를 따지는 줄다리기를 시작합니다.


“예전엔 안 그랬잖아. 왜 변했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갑자기 왜 저래?”


억울함이 목 끝까지 차오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본래의 모습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저 내가 덧씌운 ‘이상적인 시나리오’가 처음부터 사실이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판단이 틀렸다는 것, 그리고 내 결핍이 만들어낸 오해였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진실을 보는 대신,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길을 택합니다. 실망감이 반복해서 쌓이면, 감정은 빠르게 ‘판단’으로 굳어집니다.


“이 사람은 원래 이기적인 사람이었어.”

“다정한 척했던 거야. 본색은 이런 거였어.”


한 번 이렇게 낙인을 찍고 나면, 그 사람의 행동이 색안경을 통해서 보입니다. 이제 내 앞에는 소중했던 그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결함 있는 존재, 혹은 고쳐야 할 문제 덩어리로 남게 됩니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만 봤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네가 나를 배신했어”*라고 상대를 몰아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탓 : 미워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기이한 모순

한편으로는 상대가 너무 밉고 섭섭한데,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예민한가?’라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무기력함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이 단계가 참으로 괴로운 이유는 미움과 기대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좋았던 기억과 내가 만든 시나리오 때문에 관계를 놓지도 못합니다.


‘미운데 보고 싶고, 섭섭한데 다시 괜찮아질지도 몰라...’


실망은 쌓여가는데 기대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 이 상반된 감정은 결국 상대를 향한 통제로 변질되곤 합니다.


“넌 왜 내가 원하는 걸 못 해줘?”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만 하는 존재로 상대를 닦달하는 것. 존중이 부재한 상태에서의 사랑은 사실,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폭력에 가깝습니다.



피해의식이 만든 ‘탁한 공기’와 골든타임

상대를 고쳐야 된다는 판단이 서면, 상대가 내 요구대로 따라주지 않을 때 ‘피해의식’이 똬리를 틥니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고 나면, 상대의 말과 행동은 나를 상처 주려는 의도로 해석되곤 합니다.


상대에게 실망하고 한편으론 자책하며 무기력해질 때,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 위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이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골든타임입니다. 아직 판단이 돌이킬 수 없는 고정관념으로 굳어지기 전이고, 상대에게도 아직 이해하려는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격랑의 순간, 딱 한 번만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봐 주세요.


“지금 내 분노는 상대의 잘못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쓴 시나리오가 깨진 고통 때문인가?”


이 질문에 진실하게 답할 수 있다면, 관계를 덮고 있던 독소가 걷히기 시작합니다.


“아, 내가 기대했던 그림이 너무 강했구나.”

“내 기대 때문에 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했구나.”


이 작은 자각 하나가 소중한 인연을 '경계'와 '단절'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게 붙잡아 줄 것입니다.



감정과 고통

본격적인 ‘정신적 고통’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상대를 미워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기이한 모순 속에서 스스로를 자책하며 자존감이 깎여 나갑니다. 실망감, 배신감, 억울함, 모멸감 등의 감정 속에서 관계의 위기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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