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울음의 밀도

소음 너머의 침묵

by 월하시정

7년만의 외출!

여름은 소음의 절정이다.

그중에서도 매미 울음은 자연이 쏟아내는

가장 격렬한 음향 공세다.

숲이 울고 하늘이 진동한다.


한 마리의 비명이 다른 한 마리를 부르고,

그 울음은 다시 열 마리의 울음으로 증폭되어 도시의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메아리친다. 100데시벨이 넘는 이 소음의 벽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하게 작아진다.

우리는 귀를 막고,

창문을 닫고,

에어컨 소리에 매미 소리를 덮으려 애쓴다.


이 지독한 울음소리는 과연 자연의 스팸 메일인가,

아니면 우리가 듣지 못하는 다른 메시지인가.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이 압도적인 소음의 한가운데,

그 소리가 가장 극에 달한 순간,

문득 찾아오는 깊은 고요가 있다.


마치 폭풍의 눈처럼. 매미 울음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그 소음 너머로 열리는 내적 침묵의 공간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는 단순한 소음의 부재가 아니다. 오히려 소음 그 자체에 의해 활성화되는, 일종의 정신적 ‘백색 소음’ 같은 침묵이다.

모든 것이 울부짖는 가운데,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지는 그 찰나.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그 본질적인 고독을 마주하게 된다.

晩蟬 (만선)
振翅向蒼穹
날개 떨며 푸른 하늘 향하니
鳴聲沒虛空
울음소리 허공에 잠기네
喧中得靜界
시끄러움 속 고요한 경계 얻으니
心遠地自通
마음 멀리하나 땅 저절로 통하네

동양의 선(禪) 사상은 이 역설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았다. ‘적적중수적적진(寂寂中 愁寂寂盡)’ – 고요한 가운데 고요함이 다함이로다.

완전한 고요는 오히려 완전한 소음 속에 내재한다는 가르침이다. 매미의 울음이 극에 달해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는 그 순간, 그 소음은 스스로를 소거하는 경계에 이른다.

마치 눈부신 빛이 결국 암흙으로 돌아가듯이.

이는 소리를 듣는 주체인 ‘나’가 일시적으로 소멸하는 순간이다. ‘나’라는 필터가 사라질 때, 소음은 더 이상 소음이 아닌, 순수한 현상 그 자체로 다가온다. 우리가 귀를 막는 것은 결국 ‘내가 듣기 싫어서’다.


그 ‘내가’ 사라진 자리에는 시끄러움도 없고 조용함도 없는, 그저 ‘있는’ 상태만 남는다.
그곳이 진정한 침묵의 영토다.

* 소리 속 고요 *
매미 울음소리 높으면 높을수록

고요는 깊어지네
소리 속에 잠긴 마음
고향을 찾아가네

이 침묵 속 고독은 결코 공허하지 않다.

오히려 풍요롭다.

현대인은 끊임없는 정보의 소음,

관계의 기대, 성취의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진정한 침묵과 고독을 두려워한다.


그것이 무의미함이나 소외감으로 다가올까 봐. 그러나 매미 소음의 핵심을 관통하는 그 순간적 침묵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고독은 비워짐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외부의 간섭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채워지는 본질적인 ‘나’의 공간이다.


마치 시끄러운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질 때, 학생들이 비로소 자신의 생각 소리를 들을 수 있듯이. 이 내적 침묵은 창조의 온상이며,

진정한 자아 인식의 출발점이다.


우리가 외부의 목소리에 않고,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여기에 위트가 필요하다.

매미는 정녕 무엇을 알고 그렇게 울어대는가? ‘사랑해! 사랑해!’라는 주장도 있고,

‘더워! 더워!’라는 항의도 있다.

어쩌면 그저 “나 여기 있어!”라는 존재의 외침일지도 모르겠다. 철학자 장자(莊子)가 소요하며 말했을 법하다. “매미야, 그렇게 목이 터져라 우는 게 무슨 큰 뜻이 있느냐?” 매미가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그대가 내 귀를 막으며 철학을 논하는 그 뜻이란 게 또 무엇이오?”

우리의 의미 부여 역시 한낱 소음에 불과할 수 있다. 매미는 그저 매미일 뿐이다. 그 소음은 그저 소음일 뿐이다. 그 소음에 반응하는 ‘나’라는 소음만이 문제일 뿐이다.

* 매미의 자서전 *
나는 목청 터지게 우는 법을 배웠다
땅속 칠 년의 침묵이
하늘로 뚫고 나온 기억이니까

나는 내 울음 사이사이에
고요를 박아둔다
그 빈틈으로 숨 쉬는
너를 위하여

매미 울음의 계절은 길지 않다.

그들이 땅속에서 칠 년을 참고 견디며 축적한 생명력의 모든 것을 단 몇 주 동안 소진해 버린다. 그들의 울음은 필멸(必滅)에 대한 항변이자, 생명 그 자체의 과시다.


그들의 시끄러운 죽음 앞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작은 소음들 – 핸드폰 알림, 교통 소음, 사무실의 잡담 – 은 갑자기 하찮아 보인다. 매미의 소음은 그 강도와 지속성으로 인해 오히려 일종의 정화(淨化) 작용을 한다.


그 소음의 용광로 속에서 사소한 불만과 초조함은 녹아내린다.


남는 것은 생명의 거대한 맥동과,

그 한가운데서 발견된 나의 작지만 확고한 침묵의 핵이다.

가장 시끄러운 곳에 가장 깊은 고요가 깃든다. 매미 울음이 도시를 뒤덮을 때,

우리는 귀를 막기 전에 잠시 멈춰 그 소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압도적인 밀도의 소리가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공간.


그곳에서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본질적인 침묵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소음 너머의 침묵이 아니라,

소음 속에서 깨어나는 침묵의 소리다.


여름이 지나고 매미 소리가 사라질 때,

우리는 그 침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조차 알지 못할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이 소란스러운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가장 큰 소리가 가장 깊은 침묵을

가르쳐 주는 신비로운 순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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