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밤의 벗과 영원의 맛
여름밤의 무게는 다르다. 낮의 뜨거운 숨결이 땅에 스며들어, 공기마저 걸쭉히 졸아들었다. 마치 누군가 하늘에 끈적한 꿀을 발라놓은 듯, 달빛마저 흐릿하게 번졌다.
창가에 매달린 풀무치 소리마저 지쳐 쉬고 싶어 하는 그런 밤, 그의 손에는 시퍼런 무늬가 아롱거리는 둥근 우주가 들려 있었다. 수박이었다.
"야! 이놈, 얼음통에 하루 종일 품었더니,
별빛도 식힐 기세야."
그의 말끝에 살짝 걸린 웃음은 더위에 절어버린 밤공기에도 시원함을 스치는 바람처럼 전했다. 칼이 꽂히자, '푸득' 하는 소리와 함께 상큼한 냉기가 공중에 흩어졌다.
그 속에서 벌겋게 반짝이는 과육, 검은 씨앗들은 별자리처럼 박혀 있었다. 한 조각을 건네받으며 내 손바닥에 닿은 차가움은 마치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개울물을 떠올리게 했다.
붉음 속에 검은 별 박혀 있네,
한 입 베어 물면 서릿발 흩날리네. /
뜨거운 세상 시원한 우정이여,
이 밤의 맛 영원하리.
(紅瓤黑星點 / 咬破霜雪散 /
熱世涼友情 / 此味永夜存)
우리는 발가벗은 발로 마루 끝에 걸터앉아, 수박의 단물을 터트렸다. 입가로 줄줄 흐르는 달콤함, 톡톡 튀는 씨앗을 뱉어내는 소리.
"야, 내 씨 저 멀리까지 갔어!" 하는 허세 섞인 자랑은, 반백을 훌쩍 넘긴 어른들이 어린아이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이 무더위 속에서, 이 시원한 달콤함을 나눌 벗이 있다는 건, 인생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 아닐까. 수박 한 통 값은 얼마겠는가.
그러나 그 속에 담긴 공유의 순간, 함께 웃고 떠들며 씨를 뱉는 그 소박한 기쁨의 가치는 저 하늘의 은하수만큼이나 광대하다.
별빛이 서서히 짙어졌다. 더위에 잠겼던 하늘이 깨어나, 차가운 보석들을 하나둘 박아내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고개를 들어 그 무수한 반짝임을 바라보았다. 수박 속의 '검은 별들(씨앗)'과 하늘의 '차가운 불꽃들(별)'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철학자라면, 이 대비에서 존재의 덧없음과 영원함을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수박은 순간의 맛으로 사라지지만,
그 맛을 나눈 기억은 별처럼 오래 빛난다.
별은 찬란하지만 만질 수 없고,
수박은 덧없지만 입안 가득 찬 시원함과 달콤함으로 지금을 증명한다.
어쩌면 인간의 우정도 그렇다.
영원을 약속할 수는 없어도,
지금 이 순간의 진실된 나눔으로,
차가운 우주 속에서 따뜻한 좌표를 새겨놓는 것이다.
검은 별들이 쏟아지는 밤,*
우리 입속에서 녹아내리는*
달큰한 벗.*
차가운 빛줄기들이 스민 마루,*
그 위에 맺힌*
시원한 웃음의 이슬.*
한 조각 붉은 달,*
네 손에 남은 흰 설탕가루,*
이 밤의 모든 단맛은*
영원으로 가는 씨앗.*
"이거, 진짜 달다. 올해 최고다."
그의 중얼거림에 우리는 다시 한 조각씩 손을 뻗었다. 씨를 뱉는 소리, 씹히는 과육의 아삭거림, 가끔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이 소리들은 뜨거운 여름밤을 뚫고,
별빛 아래에서 하나의 리듬을 만들었다.
시간은 그 순간을,
수박의 단물처럼 우리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 스며들게 했다.
미래의 어느 더운 밤, 갑자기 찾아올 그리움은 아마도 이 맛, 이 시원함, 이 웃음소리일 것이다.
수박은 점점 작아졌다. 마지막 조각을 나누어 들고, 우리는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더 선명해져 마치 손에 잡힐 듯했다.
수박 속에서 본 '검은 별들'은 땅속으로 사라지겠지만, 하늘의 별들은,
그리고 이 밤의 기억은 남을 것이다.
마지막 한 입을 입에 넣으며 느껴지는 달콤한 여운은, 덧없는 순간 속에 박힌 영원의 씨앗 같았다.
더운 밤은 여전했지만, 속은 시원했다. 수박의 냉기와 우정의 온기가 어우러져, 영혼의 더위까지도 식혀 주었다. 남은 수박 껍질은 별빛에 은은하게 빛나며, 지나간 순간들의 잔향을 담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이 달콤하고 시원한 평화를, 별빛과 함께 마음 속에 오래도록 간직하기로 했다.
수박은 사라져도, 그 맛과 빛은 이 밤의 벗과 함께 영원히 남아, 인생의 무더운 길에서
찾아오는 시원한 그늘이 될 테니까.
별빛 한 조각과 수박 한 조각,
그 안에 녹아있는 시간의 단맛을
우리는 오늘도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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