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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와 Mar 22. 2023

새 봄에 할 일

봄, 꽃, 새와 기도와 코로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작년 봄엔 이사오기 전의 집에 있던 마당에 심어놓은  갖가지 장미덕에 바쁘게 봄을 보냈다. 로즈데톨비악, 로열바카라, 라디오, 아메리카, 알바, 안젤라 등의 덩굴장미와,  이름 모를 미니 장미들.  장미 돌보느라 찔리고 피나고, 하루가 참 모자랐다. 제비꽃과  벚꽃, 산수유와 개나리, 진달래가 지천인 뒷동산에 올라 간간이 운동도 했고,  온갖 화분의 분갈이도 봄에 했다. 바쁜 봄을 보낸 집에서 떠나 이제 아파트로 이사 가면 할 일이 없어 심심해 어쩌누 했던 내 생각은 이사 오고 나서 여지없이 깨졌다. 다른 의미로 바쁜 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이사 온 동네의 갈산동 성당은 수도원과 양로원 이 같이 있어 신부님이 네 분이나 계신다. 성당 신자수나 규모가  서울에서 다니던 성당보다 훨씬 크다 무엇보다, 성당천장이 돔식으로  되어있고, 나무로 되어있어  성당 2층에서  울리는  성가대소리가  잘하지 못해도  천국의 소리처럼  너무나도 성스럽게 들린다. 어느 한 교우에게 상처받는 후 냉담하기와 풀기를 반복하며, 신자인 듯 아닌 듯 무늬만 신자로 살아온 나로서는 성가대의 찬송가 소리가 특별히 더 의미 있는 소리로 들렸다. 그래서, 그날 바로 레지오에 들어가  기도 생활을 시작했고 몇 달 뒤 성가대에도 들어갔다. 성가대는 원래  중학교 때부터 했었기 때문에 별어려움이 없었지만, 레지오는 내가 날라리 신자였던 탓에 평소에도 엄청난 기도를 하는 다른 단원들을 보며 기가 죽었다. 나는 묵주기도5단하는것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단원들에 비하면  하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단원들은 그 많은 기도를 언제 다 하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곧 풀렸다. 아니, 나도 그렇게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강물 위로 나란히 선 새들은 기도길에 좋은 친구다.

 이 동네는 서울 여의도처럼  강물이 동네를 돌아  아라뱃길로 나간다. 그래서 정해놓은 목적지까지 갔다가 동네를 돌아 집으로 오면 두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기도를 하면서 걷는 것이다.  기도도 하고 운동도 하고. 한참을 바쁘게 기도하다 보면 하루가 지난다. 꽃을 돌보는 만큼 바쁜 봄이다.





그런데 코로나에 걸려 그걸 못하니, 좀이 쑤신다.


벌써 두 번째 코로나에 확진되어 격리 생활을 한지 오일째. 지루할 것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생활하고 있다. 아침 인가 싶으면 하루가 다 가서 저녁이 된다. 왜 이리도 시간이 빨리 가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시간이 더 빨리 가는 듯하다. 삼시 세끼를 먹고, 유튜브 좀 보고, 기도 좀 하면 잘 시간이다. 남편과 같이 확진되어 한방에 있으나, 별로 할 말도 없고 각자 자기가 보고 싶은 유튜브 보고 책 좀 보고 또 멀뚱멀뚱. 약을 먹으니 조금 있던 가래와 기침은 쏙 들어갔는데, 결국 하는 일이 없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격리가 끝나고 다시 나가, 강물 따라 왜가리 백로 청둥오리와 갖가지 이름 모를 새들을 기웃거리면서 걷는 날이 오리라. 추운 겨울을 겪어봐야 봄이 따뜻함을 알듯이 코로나로 못 누리는 자유로움을 코가 뻥 뚫리게  맘껏 누리고 누리리라.  나에게 필요한 건  작은 묵주 하나와 운동화, 봄을 기다리듯 그날을 기다리는, 새싹 같은 마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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