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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와 Jun 19. 2023

기적의 스페인 가족여행

그라시아스!

     

오늘도 여지없이 남편과 아들이 예비자 교리 공부를 하러 성당으로 나간다. 늦기 전에 어서 가라고 재촉하며 문 밖으로 내보낸 후, 나는 안도의 숨을 쉰다. 생각해 보면 꿈만 같은 일이다. 20년 전쯤 세례를 받고 끊임없이 남편에게 성당을 같이 다니자고 했건만, 남편은 자신은 과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형이상학적인 종교에는 관심이 없고, 절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억지로 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체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기회만 있으면 계속해서 성당에 같이 다니길 권했다. 그렇다고 내가 신앙심이 깊은 것도 아니다. 성당을 가다 말다 냉담과 풀기를 반복하였고. 젊었을 때에는 전쟁을 치르듯 하루하루를 일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시간도 없었다. 종교적 신앙이나 믿음도 없긴 했지만 부부가 나이 먹어가며 같은 종교를 갖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같이 가기를 권했던 것이다.


가톨릭은 개신교와 다르게 교리 공부를 6개월 간 해야 한다. 일정한 시간을 내어 빠지지 않고 간다는 게 쉽지 않지만, 그 과정을 다 거쳐야 세례를 받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딸은 내가 세례를 받을 때 같이 얼렁뚱땅 받았지만, 아들과 남편은 세례를 안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 입시 공부가 얼추 끝나 그동안 가지 못했던 해외 가족 여행을 계획하고, 2월에 스페인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다. 남편은 평소에도 몇 년에 한 번씩 위경련을 일으켜 밤을 홀딱 새우는 일이 있었다. 한번 위경련이 나면 웬만한 약이나 동네 병원에서는 위통이 나아지지 않아 종합 병원까지 가서 강력한 약을 먹어야만 나았다. 그런데, 남편이 비행기 기내식을 먹고 나서부터 위통이 생겨 거의 음식을 먹지 못하고 점점 상태가 안 좋아졌다. 남편은 가족여행을 망칠 수 없다는 생각에 참고 있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나는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나 어쩌나 노심초사가 되어 남편의 안색만 살폈다. 그러다가 둘째 날 첫 일정이 몬세라트의 검은 성모상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가이드가 검은 성모상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면서, 기도를 하면 딱 하나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였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는 차례로 한 명씩 성모상을 만지며 기도를 하고 나왔다.      


“뭘 빌었어?”

“나는 배 아픈 거 낫게 해 주면 성당에 나간다고 빌었어.”

“헐!”  

   

아프긴 되게 아팠나 보다. 나와 남편은 같은 소원을 빌고 산미구엘 전망대까지 가서 벼랑 끝 십자가에 매달려 사진도 찍고, 기념품도 사고, 다시 돌아오는 산악 열차를 타고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남편이 거짓말처럼 안 아프다며 점심을 먹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나와 아이들은 모두 신기해하며 그 이후로 스페인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남편은 처음엔 우연의 일치라고 하며 안 믿으려 했지만, 약속을 안 지키면 큰일 난다고 하는 내 말이 통했는지 세례를 받겠다고 했다. 아들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덤으로 같이 받겠다고 하여 온 가족이 일요일이면 성당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가 패키지로 가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스페인에서 먹은 음식은 정말 별로였다. 일단 짜고 맛이 없었다. 오렌지만 엄청나게 나온 것 같다. 마늘도 있고 고추도 있고, 올리브에 발사믹도 있고, 온갖 채소들도 다 있는데, 이런 향신료와 양념을 넣는 건지 안 넣는 건지. 감자 요리나 고기요리나 닭요리, 생선요리, 밥 등 어느 것 하나 맛이 없었다. 샐러드까지도. 광고에는 ‘세계의 별미, 4대 특식’을 준다고 했는데, 호텔 조식조차도 동남아만도 못했다. 많이 차려져 있는데 입에 맞는 게 없어서였을까? 여동생이 우리 가족 보다 일주일 먼저 동유럽에 갔다 와서, 그곳 날씨는 늦가을 날씨이며 밤이 많이 춥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각자 한 사람당 하나씩 찜질용 간이 매트와 컵라면, 햇반, 김, 진공 포장한 마른반찬과 통조림 볶음김치까지! 옷은 많이 안 가져가고 주로 먹을 것만 잔뜩 가져갔다. 


결혼하기 전 외국에 공연 갈 때 다녀본 짐 싸기 솜씨로 많은 먹을거리를 가져가서 우리는 잘 먹었지만, 같이 갔던 사람들은 너무 춥고 잘 못 먹어서인지 얼굴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초췌해져 갔다. 나는 가져갔던 반찬을 풀어 나누어 먹었다. 동생이 정말 음식이 맛이 없다고 가져가라고 할 때 설마 했던 마음은 어느새 고마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원래도 외국 음식을 잘 못 먹어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에는 돌아와 보니 몸무게가 5kg이나 줄어있었다. 하는 일 때문에 여행을 많이 가지도 못했지만, 몇 군데 나라를 다녀왔어도 뭘 맛있게 먹은 기억이 없다. 나는 오이지나 김치나 밥을 매일 먹을 수는 있으나, 고기나 감자 그리고 딱딱한 빵을 매일 먹을 순 없다. 어쩌다 한번 먹어야지. 그걸 매일 먹으면 보기만 해도 속이 느글거린다.  

    

스페인에서 돌아와 제일 큰 냄비에 묵은 김장 김치를 숭숭 썰어 김치찌개를 끓여 온 가족이 세 끼니를 김치찌개만 먹었다. 고기를 하나도 안 넣은 김치찌개를 뜨거운 밥에 얹어 쓱쓱 비벼서, 크게 한 술 입에 넣고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쉬어가며 먹었다. 십 년쯤 묵은 느글거림이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남편에겐 성당 가는 것이 김치찌개 먹는 것만큼이나 묵혀온 체증이었을까. 이번 크리스마스에 세례를 받고 나면 내 버킷리스트 하나가 다시 이루어진다. 이것 또한 스페인의 검은 성모님의 기적이리라. 그라시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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