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말고 고구마 순, 고구마 줄기의 맛
올해는 장마가 늦어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에 날씨가 좋다. 봄에 심어 놓은 고구마가 쑥쑥 커서 살랑한 바람에 잎이 반짝인다. 벌레 먹은 것 하나 없이 윤기가 반들반들하다. 나는 전문적으로 농사짓는 것이 아니어서 휴일인 5월 5일에 고구마를 심는다.
고랑이 길어, 한 고랑에 촘촘히 고구마 순 한 단을 심어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고구마는 거름을 많이 하면 안 된다. 땅이 너무 기름지면 고구마 잎만 무성하고 정작 고구마는 들지 않는다. 여동생이 제주도 2년 살기를 할 때 집 근처에 노는 땅이 많아 주인이 마음대로 농사지으라고 해서 고구마를 평소처럼 퇴비와 비료 조금 넣고 멀칭을 해서 심었는데 제주도 땅이 워낙 기름진 탓인지 잎이 크고 무성하고, 고구마 줄기도 굵고 튼튼해, 고구마가 많이 달릴거라 잔뜩 기대를 했단다. 그런데 가을에 땅을 파보니 새끼손가락 굵기의 가느다란 고구마와 잔뿌리만 무성해 고구마 한 개를 못 먹었단 소리를 듣고 깔깔 웃었다.
그렇다고 제주도가 아닌 땅에 전혀 거름을 안 하면 안 되어 대충 퇴비를 뿌려놓고 멀칭을 한다. 요즘은 고구마용 비닐을 따로 팔기는 하는데 전문적으로 짓는 게 아니라서 그냥 대충 농사를 지었다. 비료는 칼슘과 인, 칼리 등 식물에 필요한 영양분을 가장 적정한 비율로 만들어 놓는 것이라 열매가 달리는 작물과 잎을 먹는 작물, 뿌리 작물의 비료가 각기 다르다. 고구마 심을 때는 길쭉한 줄기를 포를 뜨듯이 땅속으로 얇게 찔러 넣어준다. 물론 고구마 줄기 심는 도구도 따로 있다. 고구마 줄기는 중간중간 한 번씩 따주어야 한다. 오히려 안 따 주면 양분이 고구마 줄기로 다 가는 것 같다. 나는 항상 고구마 줄기를 한 번 정도 따준다.
식당을 하고 있었기에 고구마 줄기 김치를 담가 손님상에 내놓으면 맛나게 드셨다. 나는 단순 노동을 좋아해 가만히 앉아서 고구마 줄기를 까는 것을 좋아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진력을 내며 싫어했다. 그래서 여름이면 고구마 줄기를 따, 주말 내내 집에서 고구마 줄기를 다 까서 가져가면 다들 놀라곤 했다.
고구마 줄기 김치는 껍질 까는 것이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김치 담그는 것과 똑같이 소금에 잠깐 절여 씻어 채에 받쳐 놓고 오이, 고추나 양파를 썰어 넣어 아삭하게 먹으면 여름 별미 김치이다. 또는 냄비 바닥에 양념을 털어내고 넣어 고등어를 졸여 먹어도 맛나다. 반찬을 해놓으면 고등어보다 고구마 줄기가 더 맛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경남 고성 둘째 아주버님 댁에서도 고구마 농사를 짓는다. 여름에 고구마를 심으시고 추수한 후엔 시금치를 심어신다. 아침 일찍 형님은 커다란 우산을 쓰시고 고구마 밭으로 들어가신다. 고구마 줄기를 한 아름 따서 평상에 앉아 고구마 줄기를 까고 계신다. 나는 득달같이 달라붙어 고구마 줄기를 깐다.
“에고 하지 마라. 손가락 까매진다.” 형님은 말리신다.
“아니에요. 저 고구마 까는 것 좋아해요.”
“하이고, 서울내기가 이런 것도 할 줄 아나? 참 희한타, 손도 안 댈 줄 알았데이.”
둘째 형님은 나와 나이 차가 20년도 넘게 나니 한참 윗 형님이시다. 8남매이다 보니 제일 큰 형님은 아버지와 몇 살 나이 차가 나지 않을 정도이다. 고구마 줄기를 두 묶음 정도 까놓으면 용달차가 와서 수거해 간다. 수첩에 꼼꼼히 체크해 놓고는 한 달에 한 번 돈을 주어 쏠쏠히 용돈벌이가 된다고 하셨다. 고구마 줄기를 깐 것과 고구마 잎은 소쿠리에 담아 소가 있는 곳으로 가신다. 소 몇 마리를 키우고 계셨는데 계속 새끼를 낳아 열 마리도 넘게 되어 마당 옆 땅을 개조해 야외에 풀어 햇볕도 쐬고 바람도 쐬게 만들어 놓으셨다. 대문 앞에는 닭 몇 마리가 병아리와 함께 있고 개와 고양이도 있어 동물 농장이 따로 없다.
형님과 같이 소들이 있는 곳에 다 달았을 때 갑자기 소들이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집채만 한 소들이 뛰어오는 것을 보고 덜컥 겁이 나서 형님에게 바짝 붙으며 “소들이 왜 저래요?”하고 물었다. “먹이를 갖고 오니까 그런 갑다. 고구마 잎을 억수로 좋아한데이.”하며 형님은 소여물통에 고구마잎을 넣어주셨다. 소는 허겁지겁 우걱우걱 씹는다. 엄청 행복한 표정으로.
“어머, 소가 웃네요.”
정말 소가 웃으면서 먹는 것 같았다. 어쩜 그렇게 맛나게 먹는지. 나도 먹고 싶을 정도였다. 서울에서 고구마순을 사면 보통은 고구마잎은 다 시들어서 따버리는 게 당연한 일처럼 생각되어 한 번도 고구마잎을 먹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주말농장을 같이 하던 옆에 밭 아주머니가 자기네 시골에서는 어렸을 때 고구마잎으로 나물을 해서 먹었다고 하며 고구마잎을 가져가셨다.
그즈음 TV에서 고구마, 줄기, 잎 중에서 잎에 좋은 성분이 제일 많고 특히 당뇨에 좋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래서 밭에서 따온 잎으로 전을 부쳐보았다. 고구마잎은 깨끗이 씻고 쫑쫑 썰어 전분과 밀가루를 반반씩 하여 간을 한 후 팬에 부쳐보았다. 같이 시식을 했던 사람들이 모두 하나 같이 감탄을 했다. 아주 구수하고 바삭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며 너무 맛있다고 했다. 그 후로 우리 식당의 대표 반찬이 되었다.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고구마잎 전을 먹으러 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시장에 가서 싱싱한 잎사귀가 붙어 있는 고구마순을 한 단 사서 고구마 줄기는 까서 반찬 해 먹고 잎은 버리지 말고 전을 부쳐 먹자. 고구마잎 전을 먹을 때마다 가늘게 눈을 뜨고 이를 드러내어 웃으며 고구마잎을 먹던 누렁소가 생각난다.
“고마워. 좋은 것 가르쳐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