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2018)
어린 시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편에는 장독대가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 그믐달이 뜬 밤, 위집에 사는 부부가 서로 눈에 불을 켜는 날에는 그 장독대에 있는 장독들 중 하나는 열받은 누군가가 든 막대기에 맞아 파열음을 내며 산산이 부서져 옆집에 잠든 누군가를 깨우곤 했다. 깜빡 선잠에 들었다가 '와장창' 소리에 영문도 모르고 눈을 비비며 나오는 아이의 눈에는 부서진 장독보다는 엎어진 체 나뒹굴고 있는 밥상과 깨진 그릇들이 뒤엉켜 서로 죽일 듯이 우당탕 소리를 내던 두 사람이 갑작스러운 결말을 낸 영화의 엔딩처럼 눈에 들어온다.
세상사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 날이 많음은 오래 살 수록 경험적으로 체득되는 중요한 배움이다. 그렇지만 그런 날들에 울화를 못 이기고 분풀이를 하고자 갈무리가 되지 않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타자에게 풀어본다 한들 그러한 감정의 배설이 남긴 추한 광경들은 보는 이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와 멍울을 만든다. 고립된 섬에서 탈출하고 싶어도 다시 잡혀오고야 말 상황에서 견딜 수 없는 남편의 폭력을 남편을 죽임으로써 끝내고자 하는 이가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에 나오는 김복남이라면 견딜 수 없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자살로서 생을 마감하고자 했던 이가 '그것만이 내 세상'에 나오는 주인숙이다. 가출을 해서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조하'의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견딜 수 없는 가정 폭력이 주는 두려움은 어린 '조하'에 대한 모성마저도 이길 정도로 가혹한 것이었을까? 그녀는 아들 '조하'에게 죄인이 될 줄 알았지만 중학생이면 어느 정도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술주정뱅이가 사는 집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술주정을 하는 밤이면 그의 폭력을 피해 늘 만화방에서 잤던 '조하'에게 엄마는 자신을 버리고 간 존재일 뿐 남편의 폭력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환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엄마가 가진 고통을 볼 수 없는 어린 '조하'가 그것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그도 어른이 되어서는 엄마의 고단한 삶을 이해한다. 그리고 보듬어야 할 약자들을 보듬지 않고 어른이 해야 할 마땅한 일들을 내팽개쳐온 아버지를 향해 외친다. "절대 감옥에서 나오지 마세요. 나오면 그동안에 엄마와 자신이 맞았던 그 모든 빚을 갚을 테니까!". 눈물을 자극하는 신파라고 영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마도 주인숙과 같은 엄마를 둔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화목한 가정환경이 아닌 늘 싸우고 반목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이들에게는 조하가 가진 감정은 지극히 동감되는 것이며 또한 타자로서 엄마가 뱉어내는 그 고통의 흐느낌은 그녀를 실제로 목격해 온 아이의 눈에 새겨진 그 장면들로부터 생겨난 진실이기에 오히려 사실적이다.
자기 앞가림을 하기 위해 거칠게 살아왔던 '조하'가 만난 배다른 동생이 하필 서번트 증후군을 가져서 용변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장애인인 것은 누군가의 눈에는 '레인맨', '포레스트 검프'를 베낀 설정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 나오는 것처럼 불행은 항상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설정을 신파적 설정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의 현실에 가깝다고 오히려 옹호한다. 또한 이 영화의 신파적 요소를 보완하는 안전장치로서 장애인인 진태를 연기한 박정민의 연기력을 부각하는 것은 영화에 잘못된 관점을 투여하는 것과 같다. 이 영화가 '조하'의 이야기인 까닭은 돈을 벌기 위해 '조하'가 캐나다로 가려다가 진태의 콘서트 출연 소식에 발걸음을 돌리는 장면이 조용한 클라이맥스이기에 그렇다. 후반부 '진태'의 신들린 연주는-사실 판타지에 가까운, 그러나 어찌 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지만 -단지 캐나다로 갈 돈을 모으기 위해서 엄마의 집에 들어왔다가 엄마를 용서하고 진태를 책임지기로 맘먹는 '조하'에 대한 헌정으로 나는 읽었다.
불행한 장면들을 겹쳐서 만들어놓은 영화적 현실이 나의 오랜 상처를 상기시켜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지만 오랜만에 '조하'의 독백을 들으며 작년 부모의 가정불화를 털어놓으며 잠시 집을 떠나고자 휴학상담을 했던 P군이 떠올랐다. "그래 무거운 현실을 잠시 피하는 것은 인간이 평안을 얻기 위한 필연의 선택일지 모르지. 시간이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져 마음이 단단해졌을 때 다시 현실로 돌아오도록 하게 P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