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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 매켄지, 부산 한센병의 친구로 불리는 선교사

두 딸은 부산 일신병원 설립하며 대를 이어 헌신

by 신재천

제임스 노블 멕켄지 선교사 (매견시, 1965~1956)는 부산에서 29년간 한센병 환자를 돌보면서 복음을 전하여 <한국 한센병의 친구>로 불리는 선교사이다.

그는 영국 스코틀랜드 서쪽 에웨 섬(the Isle Ewe)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서 16살에 일자리를 찾아 글래스고로 이동하였다. 그곳에서 무디 등 부흥사의 강연을 듣고 영적 체험을 하였다. 그 후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하여 1891년 졸업하고, 이어서 트리니티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894년 초 글라스고를 방문한 바누아투 선교사 페이튼의 강연을 듣고 그는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단하였다. 바누아투를 위한 기도회에서 마거릿 켈리(간호사)를 만나 1894년 7월 결혼하고 호주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1894년 12월 멜버른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895년 선교지로 파송되었다.


그는 호주 장로교 소속으로 15년간 바누아투(호주 인근 인구 20만의 기독교 국가), 뉴 헤브리디즈(New Hebrides)의 산토 섬에서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의 첫째 부인 켈리가 병으로 그곳에서 순직하였고, 그도 열대성 질병으로 호주로 돌아왔다. 그 후 건강을 회복하였으나, 다시 그 지역으로 돌아가는 것이 선교 규칙상 금지되어 한국 선교사로 지원하였다.


* 바누아투는 영국 및 캐나다 선교사가 초기 방문하였으나, 식인종인 원주민에게 많은 선교사가 순교당한 국가이다. 50년이 지난 후 맥켄지 선교사 부부가 바누아투 산토 섬에 가서 헌신하여, 그들을 문맹에서 해방시키고 세례를 받도록 활동하였다.


그는 1910년 2월 45세의 나이에 새로운 선교지인 부산에 도착했다. 그는 부산에서 엥겔 선교사와 협력하여 경남 지역을 순회 전도하였다. 이때 동래 금사리 교회, 화전 교회, 내리 교회가 설립되었으며, 울산 평동 교회도 설립하였다.


또한 울릉도를 방문하여 교회 설립에 협력하였다. 울릉도 기독교 역사에서 저동 교회, 장흥동 교회, 현포 교회의 공동 창립자로 기록되어 있다.


부산진 교회 당회장을 3차례 역임하였고, 일신 학교 설립자 대표로서 활동하였다. 1919년 엥겔 선교사가 평양으로 이동하면서 부산진 교회, 동래 교회 등 부산 내 교회를 돌보는 동사 목사의 역할을 하였다.


그는 1911년 경상 노회 창립부터 임원으로 활동했으며, 노회 지역 내 교회 건축 프로젝트를 감독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당시 진주에서 사역하던 호주 여성 메리 케리를 만나 재혼하였다.


* 메리 켈리는 1905년 호주 선교사로 내한하여 부산과 진주에서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였다. 매켄지를 만나 1912년 결혼하고 남편의 한센병 환자 돌보는 사역을 도왔다. 그녀는 1939년 은퇴하고 남편과 함께 호주로 돌아갔다.


그는 목사였으나 의료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1912년부터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사역을 하였다. 당시 부산에는 한센병 환자가 많아 이들을 돌보는 사역이 필요되었는데 멕켄지가 이 사역을 담당한 것이다.


우리나라 한센병 사역은 1909년 10월 영국 구라 선교회가 상애원을 창설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한센병 환자 수용소인 상애원이 부산에 건립 후 이듬해 1910년 개원했다. 그 후 상애원 운영이 호주 선교부로 이관되면서 맥켄지 선교사가 맡게 되었다.


상애원은 20여 명으로 시작됐으나 점차 그 수가 증가되었다. 1912에는 36명이 되었고, 1914년에는 80여 명으로 증가하였고 이후는 650여 명의 한센병 환자를 수용하는 정착촌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상애원 내 상애 교회(현 창대 교회)를 창립했다. 그는 정식 의사가 아니었으나, 한센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익혀서 정부로부터 의사로 인정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39년 6월 선교사 직을 은퇴하고 호주로 돌아갔고, 이듬해 호주 빅토리아 장로교 총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 1956년 7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호주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한국 한센병의 친구(FRIEND OF KOREAN LEPERS)로 기록되어 있다.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는데, 그의 두 딸인 헬렌(매혜란, 의사)과 캐더린(매혜영, 간호사)은 의료인이 되어 부모의 뒤를 이어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중국 윈난 성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고, 1952년 한국에 와서 일신 기독병원을 설립하고, 1975년까지 헌신하였다. 헬렌 맥켄지는 국가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2012년 국민 훈장 무궁화장이 추서 되었다.


막내이며 유일한 아들인 제임스는 1922년 두 살의 나이에 이 땅에서 사망했다. 제임스는 부산진 교회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매켄지의 헌신을 이어받은 한국인 목사가 손양원 목사이다. 그는 부산 한센병 병원 내 교회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면서 맥켄지 선교사의 헌신을 배웠다. 그 후 한센병 환자를 위한 사역에 헌신하였고, 두 아들이 공산당에게 순교당하면서도 가해자를 양아들로 삼는 믿음의 본이 된 목사님이다. 손양원 목사님을 있게 한 맥켄지 선교사의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에 충분한 삶이다.


맥켄지 선교사에 대한 이야기는 책 <맥켄지의 발자취>로 출판되어 있다. 이 책은 딸 헬렌에 의해 저술된 것으로, 2006년 출판되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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