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 나 자신과 함께 달리는 법

by 신정원

공이 날아올 때 눈을 감지 않기까지


한참 연습을 하던 중 나는 내 치명적인 약점을 들키고 말았다. 내 몸짓을 바라보던 감독님의 눈썰미는 도대체 왜 그렇게 날카로운지. 나는 기질부터 태어나기를 상겁쟁이다. 몸으로 하는 건 바로 실행에 옮기기보다는 조심하는 편이고, 어릴 때부터 위기 상황에서 더 움츠러드는 성향이 있었다. 그건 내가 살아남고 나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습관이었고, 몸에 깊게 밴 기질과 같은 거였다. 하지만 그날, 공이 얼굴 쪽으로 빠르게 날아오자 공을 끝까지 보지못하고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피했다. 그 순간을 본 코치 선생님의 눈빛은 매서웠다. “야이!!! 너 뭐하노 지금!! 눈 까지 똑바로 못 뜨고 뭐하는데!!! 정신 어디 갔노!! 저 코너로 가!! 모든 연습은 중단되고 나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나는 멍한 상태로 체육관 구석으로 걸어갔다. 코치는 언니들에게 소리쳤다. “야!!! 거기 있는 공 몽땅 다 갖고 와라! 농구공 싹 다 가져온나!!!” 중고등부 언니들은 일사분란하게 공들을 모아왔고 큰 철로된 바구니에 담긴 농구공들이 코치 앞에 한가득 모였다. 그러곤 모두 일렬로 서서 열중쉬어 자세를 하고 나에게 집중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기 전 쥐가 이런 느낌이었을가….긴장된 침묵이 흘렀고 농구코트 코너에 혼자 서서 나는 더 움츠러들었다.


코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더니, “똑바로보고 공을 잡아라!!!” “이거 잡을때 끝난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공이 내 쪽으로 날아왔다. 아니, 쏘아졌다. 체육을 전공한 그것도 운동선수 출신인 성인 남자가 공을.. 그것도 딱딱하기 그지 없는 농구공을 있는 힘껏 던진다는 상황 자체가 나에게는 정말 공포스러웠다. 공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 땅에 튕기는 소리, 내 몸에 박히는 소리가 뒤섞였다.


“잡아라!! 눈 감지 말고 똑바로 봐!!”
코트 벽에 공이 부딪히는 소리, 내 몸을 때리는 소리, 땅에 공이 튕기는 소리……. 모두가 숨죽이는 코트에서 코치의 목소리만 울려퍼졌다. 공포에 휩싸인 나는 계속 공에 맞았다. 돌덩이처럼 무거운 공이 내 팔과 어깨, 머리, 그리고 배에 툭툭 공들이 박혔다. 서러운 눈물이 났다. 너무 아프기도 했지만,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싶어서. 진짜 다그만두고 그자리를 벗어나 도망가고 싶었다.


나는 겁없이 잘하고 싶은데, 왜 자꾸 겁만 나고, 왜 몸이 말을 안 듣는 걸까.

그런데…계속 공을 맞다 보니 이상하게, 그 공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몸이, 어느 순간 반사적으로 공을 향해 팔을 뻗었고, 툭— 공이 내 손에 잡혔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코치 선생님은 그제야 공던지기를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그거다!! 겁내지 말고 똑바로 잡으란 말이다!! 농구선수가 공 무서워서 어쩌겠노, 응? 그렇게 해가 되겠나?!”


눈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만, 내 안에서는 아주 작은 미소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맞는 게 아프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여전히 아팠다. 그때 알았다. 두려움은 내 안에 있었고, 그걸 외면하면 더 커졌고, 끝까지 마주할 때만 줄어든다는 걸. 그제야 조금 알게 된 것 같았다. 그 진실이, 내 안에서 아주 조용히 무언가를 바꿔놓았다.


그날 이후, 나는 공을 피하지 않았다. 경기 중 코에 공을 맞아도, 눈을 감지 않았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겁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겁은 그대로였지만, 겁이 나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그날은 내 인생의 아주 작은 한 헤프닝이었지만, 지금도 종종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두려움은 나를 해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건 어쩌면 내가 만든거고, 내가 더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일 뿐이다. 나는 그 문 앞에서, 끝까지 눈을 감지 않았다.


약점은 인정할때 변화가 일어난다.


드디어, 우리는 마침내 경북 대표로 전국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상대는 충남 보령팀!!

새빨간 유니폼을 입고 코트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설레고, 떨리고, 무섭고, 또 자랑스러웠다. 그간 땀으로 쌓아 올린 훈련의 자신감도 있었지만, ‘실수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더 크게 몰려왔다.


나는 그 경기에서 센터 포지션을 맡게 되었다. 아이들 중 키가 가장 크다는 이유였지만, 그건 경기의 중심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공수 양면에서 중심을 잡고 버텨야 하는 자리. 부담감은 나를 꾹 눌렀다.


경기장 바닥 위를 달리며 서로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 너머로 내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로 긴장됐다.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고, 경기는 시작되었다.


첫 두 경기는 의외로 순조로웠다. 우리 가드가 기가 막힌 3점 슛을 연달아 성공시켰고, 우리는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전반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대팀이 나의 약점을 눈치챈 듯했다. 우리팀의 약점이 내가 되었고 그들은 나만 노렸다. 상대편 가드가 나를 향해 빠르게 돌진해왔다. 나는 몸으로 막아야 했지만, 나도 모르게 또 반사적으로 팔을 들었다.


휘슬. 파울.
휘슬. 또 파울.


감독님이 타임아웃을 요청했다. 벤치로 돌아오자, 코치와 감독님의 목소리가 나에게 마구 쏟아졌다.
“아, XXX 답답해 죽겠네 진짜! 몸으로 막으라카이, 왜 또 팔 들고 서노!!!”
“그럴 거면 걍 뒤로 확 쓰러지든가!!! 정신 안차리나? 이래 저래 이렇게 해야지 똑바로 안하나!!!??,!”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차마 쓰러지는 연기도 못하는 겁쟁이였고, 거짓은 더 두려웠다.

경기는 계속되었고, 같은 실수도 반복됐다.팔을 들고, 또 파울. 머릿속이 하얘졌고, 몸이 굳었다.
나는 점점 위축되었고, 결국 다섯 번째 파울로 코트에서 퇴장당했다.


오반칙 퇴장.


스코어는 벌어졌고, 벤치에 앉은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몸보다 마음이 아팠다.
‘내가 팀을 망쳤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파묻히듯 주저앉아, 수건으로 땀을 닦는듯 눈물을 닦는 듯 아무도 모르게 울었다. 그날의 패배보다 더 아팠던 건, 내가 내 스스로를 한정 짓고 못한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이다.


나는 감독님과 상의 끝에 포지션을 변경했다.센터보다 수비 부담이 덜하고, 움직임이 더 많은 포워드로.
막는 사람이 아니라 파고드는 사람으로. 내 약점이 드러난 자리에서, 다른 가능성을 모색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포워드가 된 나는 더욱더 편안하게 경기를 할 수 있었다. 움직임이 많아지니 중심을 잡아야하는 부담이 줄었고, 공을 향해 달리는 게 더 익숙해졌다. 내 안에는 늘 겁쟁이가 있었지만, 그 겁쟁이와 함께 가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도 경기마다 늘 두려움은 있었다. 그래도 나는 겁쟁이지만, 그 겁쟁이와 함께 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그 코트 한 귀퉁이에서 맞은 공, 맞으면서도 눈을 뜬 내 자신이다.


겁쟁이는 여전히 내 안에 있다. 다만 이제는, 그 아이와 함께 달릴 줄 아는 내가 되어 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몸에 배어 있던 훈련의 감각이 떠오른다. 그건 몸으로 익힌 성실함의 감각이었다.

그리고, 내 취약점을 안다는 것. 나는 겁이 많고, 조심스러우며, 위기 앞에선 움츠러드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이, 결국 방향을 바꿀 수 있고 필요할 땐 자리를 조정하고, 다시 뛰기 위해 호흡을 가다 듬을 수 있다는걸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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