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습관

40대 남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by 바다가 보이는 곳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우리 세대 책을 좀 읽었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계몽사의 50권짜리 동화전집이 집에 있었다. 초등학생(정확하게는 국민학생)때도 종이 색깔이 노랗고 재질은 거칠며 두께는 살짝 두꺼웠던 것이 기억난다. 겉표지는 하드커버였다. 지금 생각하면 독서를 하면서 좋은 음식들을 섭취하며 기초 체력을 키우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2학년 때는 집 앞 상가에 서점이 하나 들어왔는데, 100원인가 200원인가를 내면 새 책을 이틀동안 빌려볼 수 있었다. 그때는 해문출판사의 세계추리소설전집을 빌려읽었다. 계몽사 전집이 일상적인 밥상이라면 이건 별미라고 할까. 일본에서 발간된 것을 우리나라에서 번역하여 펴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삽화였다. 특히 묘하게 기분나쁜 눈동자, 그리고 어딘가 괴기스러운 얼굴과 포즈(그림체는 완전히 다르지만 지금도 이토 준지의 만화책을 보면 그 때 그 삽화가 떠오른다. 어딘가 기분나쁜 게 똑 닮았다!) 특히 엘러리 퀸의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삽화는 며칠간 꿈에서 나를 괴롭혔다.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없고, 몇 개 안되는 TV채널도 낮시간에는 방영되지 않으니 할 게 없어서 책을 봤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때도 분명 즐길 거리는 있었다. VHS 방식의 비디오도 있었고, 재믹스가 있었으며, MSX 컴퓨터(라고 쓰고 게임기라고 읽는다)도 있었다. 지금의 PC방과 같은 오락실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린이들의 관심을 유혹하는 것은 꽤 많았다. 그런데 나는 책을 읽었다. 물론 책만 읽었다는 것은 아니다. 오락을 미친듯이 좋아해서, 오락실에서 끌려와 집에서 쫓겨난 적도 있고, 컴퓨터를 배운답시고 MSX를 사서 게임만 주구장창했던 기억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멀리 한 적은 없었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대강 두가지 이유였던 것 같다. 첫번째는 분위기. 누나와 형이 엄청난 다독가였다. 내가 책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누나와 형에 비할 바는 못된다. 매일같이 책과 음악을 끼고 사는 사람들 옆에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두번째는 외로움이었다.

초등학교 때 집에 혼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TV는 노이즈만 잔뜩 낀 화면만 내보내고 있고(그때는 그걸 보면 세뇌가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무얼 세뇌시키는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비디오를 빌려보기엔 너무 어렸다. 그렇다고 집에 장난감이 잔뜩 있는 것도 아니어서, 유일한 낙은 책을 보는 것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책을 보거나 혼자서 멍때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당시에는 그런 외로움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책임감없이 하고 싶은 일을 했던 시간. 그리고 책 읽는 습관을 길러준 시간.


오늘도 퇴근을 하고, 간단하게 집 청소와 설겆이를 마친 뒤 씻고 나와 소파에 앉는다. 그리고 옆에 놓인 책을 집어든다. 그리고 세상과 단절하고 책 안의 세계로 들어가 탐구의 기쁨을 맛본다. ‘여보’ ‘아빠’하고 누군가 부르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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