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마다 무늬가 있었다
흉곽을 뜯고 들어와 심장을 쪼아 찢어 먹는
사랑스러운 파괴자,
나의 불면의 주인공이 사랑스럽다.
환청에 들뜬 고막이 들려주는 세상이 설렌다.
이곳은 더 이상 우리의 집이 아니다.
어떤 검은 것들이 기어 다니는 속내다.
언젠가는 자라난 것 하나가 툭하고 굴러 떨어질 것이다.
커튼 사이 빛을 막고 있는 머리 집게가 나를 쳐다보며
당신이 기다리던 순백의 드레스에는
이미 곰팡이가 슬었다고 말해 준다.
나는 첫사랑이 건네온 먼 이국의 담배를 사랑하다
폐까지 썩어 가서도 향이 나지 않는 불순한 것들에
불을 붙이는 일을 즐겨 하곤 했다.
해가 잘 드는 집에서 태어났지만
창이 너무 낮아 빛이 드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외로움은 숨결처럼 내게 붙어 있다.
우리는 창자를 꺼내도 서로에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이가 빠져 가는 반지가 오른손가락을 타고 올라
목줄이 되려 하자 썩어 빠진 뇌가 기꺼이
노예가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봉숭아빛 손톱이 겨울을 버티면
사랑은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기꺼이 손톱깎이를 들곤 했다.
내 등을 타고 다니던 그림자가
이곳저곳에서 나를 보며 낄낄거리고 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등 뒤에 숨어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쯤 끝을 보라는 듯 웃는다.
빙점 아래를 떠도는 녹슨 압정을 씹어 먹으니
입술에 구멍이 난다.
뭘 먹을 때마다 그곳으로 새어 나오니
나는 바느질로 싹 다 막아 버렸다.
이제 새어 나오는 것은 없지만
나는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말은 혈관을 타고 흐르다 손끝에서 새어 나온다.
땅, 땅, 땅.
당신을 상처 내는 것은
내 손가락과 이름 모를 남자들의 혀다.
나는 심장을 꺼내어 당신에게 보여줄 용기가 없으니
내 손가락 역시 자르지 못하겠지만
만약 내가 그걸 목격했다면
그 혀들을 몽땅 뽑아 사이프러스 나무에 심었겠지.
내가 살아오며
틈에 숨어 있던 작은 입들에게 흘려준 피가 몇 리터인데
그깟 피가 아깝겠는가.
네가 목이 마르다면
자르지는 못해도 적당한 상처를 내어
아직 따뜻한 적혈들을 갈증이 가실 때까지 쥐여 주겠다.
우리가 갔던 바다에 내 검은 눈알을 띄워 두니
이제야 졸려지기 시작한다.
그건 적당한 풍경들을 먹으며 살아갈 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
경마의 발굽 소리.
사막의 낙타가 남기고 간 모래.
장례식장의 발걸음들.
순례의 행렬.
그리고
당신의 작은 발이 나를 누른다.
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 속이 비어 있던 존재라
이토록 얇게 눌려도 적당히 숨을 쉰다.
구석진 곳에는 또 다른 구석이 있다.
바위 틈보다도 얇고 날카로운 곳이다.
그곳은 모세혈관처럼 얽혀 있어 미로처럼 복잡하고
그 길마다 종착역이 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불어 터진 약지들이
삼나무 밑에서 간신히 숨을 쉬고 있다.
역시 사랑은 불필요하다.
사랑은 끝나서 슬픈 것이 아니라
끝나도 지속되기 때문에 슬픈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이 건네준 자갈을 입에 물어야
숨을 몰아쉴 때도 있었다.
'내 사랑을 받으면 행복할 것이다.'
'내 사랑을 받아 보았다면 행복했을 것이다.'
'내 사랑을 받고 불행했던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좋은 사람이기에
언제나 나쁜 짓도 할 수 있다.
이보다 죄책감 없는 악행이 어디 있을까.
나도 나에게 사랑을 받아 보고 싶다.
나는 나에게 사랑받았던 네가 부럽다.
너는 분명 행복해질 것이다.
나보다 오래 살 것이고
결국 하고 싶은 일도 찾아낼 것이다.
너의 행복을 빌며 나는 조금 안심한다.
억지로 잠을 청하면 언제나 험악한 꿈이
전두엽을 파고든다.
어느 날의 그녀가 거대한 그림자를 데려오고
또 다른 날의 그녀가 산악 신발의 발소리를 남기고
어떤 계절의 그녀가 깨진 유리의 반짝임을 흩뿌리고
또 다른 밤의 그녀가 재 속에서 달궈진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스무 살의 네가 피칠갑한 발을 질질 끌며
이곳에 도착한다.
더 행복한 곳으로 갈 수 있었을 텐데
하필 도착한 곳이 이런 곳이라니.
그래도 다행이다.
네가 신고 있던 무거운 신발은
내가 신고 있던 가벼운 것과 몰래 바꿔 두었다.
1. 데구르르… 며칠이 지났는가.
어느 날은 높은 곳에서 머리가 굴러와
나를 닮은 얼굴이 길을 물어온다.
모습이 딱하고 불쌍하여
나는 그에게 길을 알려주려 한다.
그때서야 떠오른다.
맞다. 나는 벙어리가 되었지.
2. 오늘은 버려진 살점이 꼬챙이처럼
머리에 꽂힌 사람이 서 있다.
나는 그에게 길을 묻는다.
분명 입이 있는 것 같은데
그는 말을 못 하는 사람처럼
얕은 신음만 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3.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거울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길을 묻던 얼굴이 거울 속에서
여전히 입을 달싹이고 있다.
나는 ‘그럼에도’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지나간 사랑을 안아주는 방법을 배웠다.
내가 당신에게 주었던
사랑 또한 모성애만큼 크고 뚜렷하다고 확신한다.
어쩌면 전생의 나는
여자로 태어나
당신을 낳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