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이서 동업 비슷한 것을 했다. 모르는 사람을 몇십 명씩 모아서 특정한 소셜링을 열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해보고 싶었던 우리는 공교롭게도 사실상 모두 겸직 금지인 처지였기 때문에 실제로 행사대행업으로 신고를 하고 사업을 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호기심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그저 행사 진행에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만 받고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일정한 활동을 하는 소셜링 자체라도 경험해보고자 했다. 겉으로 보아서는 여느 친목 목적의 소모임과 다를 바 없는 활동이었지만, 운영진인 우리의 동기가 달랐다. 당장 이걸로 돈을 벌진 못하겠지만(아니, 오히려 인건비 포함하면 무조건 적자이겠지만) 소셜링 사업이 어느 정도의 품이 드는 것인지 직접 해보면서 알게 되는 데 가장 큰 의의를 두었다. 다들 외향형 인간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계속성을 띄게 되면 영리 사업으로 분류될 것이므로 한두 번에 그칠 소셜링이면 한 달 정도만 제대로 해보면 되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나아가 사람들을 모아서 하루 놀아주고 돈을 버는 소셜링 전문업자들이 돈을 꽤나 쉽게 벌고 있을 거라 여기며 가볍게 시작했다.
우리는 소셜링으로 어떤 활동을 해볼까 고민하다가 가장 만만한 피크닉을 해보기로 했다. 대학생 시절부터 나는 날씨가 좋고 심심한 날이면 친구들과 공원에 가서 돗자리를 펴고 시간을 보내던 사람인지라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스무 명 정도의 사람을 모아놓고 소풍을 진행한다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더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먼저 반나절 동안 진행할 프로그램의 일정을 짜야 했다. 어색한 첫 대면의 순간, 1인분의 점심거리를 들고 쭈뼛거리며 온 사람들을 편안한 목소리로 맞이하고 돗자리에 앉히고 자기의 명찰을 만들게 한다. 이때 명찰 제작을 위해 빈 A4용지와 매직이 필요하다. 이후 포틀럭 파티처럼 싸온 것들을 다 같이 펼쳐놓고 밥을 먹고 자기소개를 시킨다. 자기소개에 대해서도 가이드를 만들어 미니 테이블에 미리 붙이고자 했는데, 직업과 나이를 밝힐지 말지를 결정하는 데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만나자마자 개인정보를 말해주기 부담스러울 것이며 오히려 나중에 친해진 다음 자유시간 때 돌아가면서 밝히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 우세하여 처음에는 비밀로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자기소개 후에는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빙고게임과 도입부 듣고 노래 맞추기, 수건돌리기를 하기로 했다. 이후 자유시간을 주어 서로 좀 더 친해진 다음 원하는 사람끼리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것으로 일정을 정했다.
일정을 정하고 나서는 세부 공지를 올려 사람들을 모집해야 했다. 뒤늦게 참여하겠다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서 각각에게 계속 재안내를 했다. 하루종일 모임 운영에 얽매여 서비스직 업무를 하는 기분이었다. 직장에서 퇴근을 하고서도 모임과 관련해서는 퇴근이 없었다. 우린 똑같은 운영진이면서 왜 내가 하필 모임장 계정을 흔쾌히 하겠다고 해서 이런 돈 한 푼 안 나오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하고 현타가 왔다. 그렇게 의가 조금씩 상할 때 즈음 사람 모집이 끝나가고 일정은 가까워지는데 실제로 준비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더운 날씨에 모인 사람들에게 줄 마실 것들은 고사하고 명찰과 각 게임에 필요한 재료, 우승자에게 줄 소소한 상품까지 소셜링 전전날까지 준비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면서 모임장이었던 내 멘탈이 터지기 시작했고 4명의 의기투합은 처음으로 큰 위기를 맞이했다.
사실 위기를 맞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살면서 항상 ‘리더’가 아닌 ‘팔로워’로 살던 내가 갑자기 모든 크고 작은 결단을 내려야 할 자리에 서는 것이 괴로웠던 팃이었다. 단체 카톡방에서는 “내가 혼자 결정할 게 많네. 참 외롭구만.”이라고 장난스럽게 표현했지만 집에서나 직장에서 남들이 짠 계획대로 그저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익숙했던 나는 그 결정들 하나하나를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커다란 것들은 다 같이 논의해서 결정할 수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작은 질문들이 들어왔다. 그런 것들은 원래도 풍족하지 않았던 나의 정신력 재고를 조금씩 갉아먹어 결국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가끔은 나의 취향과 주관이 확고하지 않음이 화가 나기도 했다. 차라리 내가 뭐든 내 마음대로 해서 너무 즐거운 독재자 마인드 였다면 이 자리가 이렇게 괴롭지 않을텐데 하는 이상한 자책까지 들었다.
또 나도 모르게 서운하고 억울한 시간이 쌓였던 탓이었다. 나만 내 이름을 걸고 있는데 이 행사가 잘못되면 전부 내 책임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이 생겼다. 그러면서 피해의식이 생겼고 내가 더 희생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들은 곽정은 작가의 감정 수업에서 표면으로 드러나는 분노라는 감정 말고 그 아래에 있는 진짜 감정들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니 활용할 수 없었다. 근원적인 욕구에 대해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을 연습하라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이번에도 이걸 실패한 것 같았다. 나름대로 불만을 표출했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돌이켜보면 너무 돌려 말해서 그저 마음에 닿지 못하고 조용히 흘러가 버린 안타까운 볼멘소리였다.
소셜링 이틀 전날 밤, 내가 모든 소통을 거부하고 대인 활동을 그만두자 나머지 운영진들은 크게 놀라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행사 전날 그들의 활약이 엄청난 빛을 발하며 모든 준비가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쩌면 이 소셜링이 성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마음 속에 돌면서 의욕이 다시 차올랐다. 그리하여 다음 날 오후 한시에 모인 공원에 모였던 사람들이 그날 밤 자정에 파하는 나름의 대성공을 이뤄냈다.
사실상 돈을 오히려 쓰면서 진행한 모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소셜링 모임장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 많다. 먼저 나는 리더의 자리를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모임에서 리더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 어느 정도 이상의 주관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두 번째 깨달음은 동업에 관한 것이다. 동업은 부부간에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었는데 그 이유를 통렬히 느꼈다. 여러 사람의 마음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잘 맞아서 으쌰으쌰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 억울함이 없는 공평한 업무분장이란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서로 조금씩 더 상대방의 입장을 상상하며 배려하고 한 발 더 나아가 내가 좀 더 희생한다는 자세를 가지면 힘을 합쳐서 해낼 수도 있다는 것도 동시에 배웠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나는 소셜링을 업으로 삼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소통하는 일을 좋아해야 하며, 직접 만나서 상대에 대해 궁금해하며 즐거운 바이브를 이끌어내는 밝은 태도를 가져야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한 여기 모인 이들이 다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진심이 있는 사람들이 수익을 떠나 이런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mbti 검사할 때 대충 가끔 E가 나오는 외향 호소인은 오래 지속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