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만취 손님이 내게 던진 질문 ㅡ
ㅣ추운 겨울, 새벽 두 시.
온 세상이 잠든 시간,
경찰서 로비에서 당직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때 택시 한 대가 조용히
앞마당으로 들어왔다.
차 시동은 켜져 있는데, 내리는 사람이 없다..
'금방 나가겠지' 싶어 지켜봤지만,
십 분이 지나도록 꼼짝도 없었다.
경험상 이런 경우는 셋 중 하나다.
승객이 차 안에서 잠들었거나, 토를 했거나,
아니면 요금 시비가 붙었거나.
'이 시간에 웬 택시.' 하며
그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잠시 후, 차문이 열리더니 한 승객이
엎질러지듯 내려섰다.
앞으로 왔다 뒤로 갔다.. 비틀비틀 갈지자걸음.
80년대 김흥국의 「호랑나비」 춤사위를
연상케 하는 몸짓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겨우 50미터 남짓인데,
저러다 날 새겠구나 싶었다.
출입문은 이미 잠겨 있었다.
그는 유리문을 덜컥거리다가 안 열리자 성질을
내며 쾅쾅 두드렸다.
급기야 입김을 ‘허—’ 하고 불어넣고는,
코를 문에 대고 아래로 쓸고 내려왔고
그 바람에 안경은 얼굴에 삐딱하게 걸쳐졌다.
마침내 문이 스르륵 열리자
그 틈으로 몸을 쏙 디밀고 내게로 다가왔다.
호랑나비는 계속 유지되는 중이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후끈한 술 냄새와
소+돼지+닭고기가 짬뽕된 정체 모를 음식 냄새,
거기에 시큼 씁쓰름한 토사물 냄새까지…
인간이 발산할 수 있는
‘향기롭지 않은 향기’의 종합세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 기사분이
헐레벌떡 들어왔다.
전화를 받고 오느라 늦었다는 설명과 함께 말했다.
“이 분이 서울에서 화성까지 가자고 하시더니 타자마자 곯아떨어지신 거예요.
주소도 안 알려주고, 아는 사람한테 전화 좀 하자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어쩔 수 없어 경찰서로 들어온 겁니다. 집은 보내드려야 할 텐데,
방법이 없을까요?”
한참 후 연락이 닿아 아내분이 직접 오셨고, 교수님은 무사히 귀가하셨다.
그래, 교수님. 맞다..
그분은 서울의 꽤 유명한 대학 교수였다.
단언컨대, '전국에 8살 이상
이 대학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에
내 손목을 걸 수 있을 만큼 장담할 수 있다 할
정도면 아시겠는가
나는 순간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교수라는 사람이 술에 저렇게
만취해도 되는 거야?
체면도 있는데…
저러다 똥이라도 싸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다 곧 머쓱해졌다. 교수도 사람 아닌가.
아니 교수는 술 취하면 안 되고, 용변도 안 보는가.
내가 얼마나 편협한 틀로 사람을 재단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곧 내게로 향했다.
그렇다면 난 누구지..
국적, 성별, 종교, 직업, 나이, 재산, 가정, 인맥
이런 것들을 모두 벗겨내면
‘나’라는 알맹이는 무엇일까.
두 아이의 엄마도, 직장에서의 직위도,
부모님의 막내딸이라는 호칭도 아닌,
껍데기를 다 걷어낸 순수한 나는 도대체 뭘까.
내가 나라고 믿고 있는 것 또한 그것이 나의 진짜 본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타이틀’ 속에 갇혀 산다.
엄마, 아내, 딸, 경찰관… 다 맞지만,
그것만이 나를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나는 아직도 나를 잘 모른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최소한 나만큼은 나를 보듬어야 하는데, 습관적으로 나를 내팽개친다.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일관성 없는 나일지라도… 이제는 인정해야겠다.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침에 알람 맞춰둔 시간에 일어났다면,
“잘했어” 하고 칭찬해 주고.
넘어졌을 땐 누가 일으켜줄 때까지 서운해하기보다 스스로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된다.
힘들면 좋아하는 닭발이랑 소주 한잔,
치킨과 맥주로 지친 심신을 위로해도 되고, 산책이나 반신욕으로 몸을 달래도 된다.
가끔은 평소 망설였던 선물을 나에게 사주면서 스스로를 격려해도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에게 말을 자주 걸어주는 습관이다.
“기분은 괜찮아? 오늘은 하루는 어땠어?” 이렇게.
인생은 결국 수많은 선택의 합이고,
그 결과는 내가 책임진다.
그러니 남에게 답을 구할 필요 없다.
시작점도, 조건도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
그저 내 몫만큼의 행복을 누리며 살면 되는 거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켜줄 단 한 사람.
내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지켜보는 유일한 존재인 나를 내가 잘 돌보고 아껴야 한다.
살아본 세월이 길진 않지만,
인생은 결국 ‘나를 찾아가는 여정’ 같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다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꾸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지금보다는 분명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생각한다.
교수님도 마찬가지다.
반듯하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도,
술에 만취해 비틀거리는 모습도 모두 교수님이다.
직업이나 체면이 가려주는 게 아니라,
그 모든 합이 곧 ‘그 사람’이다.
기뻐서든, 속상해서든, 한 잔 씨게 기울이셨던 교수님의 내일을 조용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