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표현에 서툰 아빠와 까칠한 막내딸 ㅡ
- 아들, 오늘 누구 만났어?
-그 친구랑 뭐 했어?
-재밌었어?
-밥은 먹었냐?
-뭐 먹었어?
-맛있디?
“하앍 짜증. 아, 엄마 쫌!” (버럭)
ㅡ입. 닫.ㅡ
그 순간,
학창 시절 나에게 시시콜콜 묻던 아빠가 떠올랐다.
왜 그땐 아빠의 질문이 그렇게
귀찮고 싫기만 했을까.
무뚝뚝하고 말주변 없던 아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반복적인 질문들이야말로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관심이자
사랑의 표현이었다.
몇십 년이 지나
내가 똑같이 아들의 짜증을 들으며
그때서야 아빠의 마음을 깨닫는다.
표현에 서툰 아빠는
어떻게든 나와 대화를 이어보려고
그저 가장 기본적인 질문들만 던졌던 거다.
“밥 먹었어?”
“학교는 갈 만햐?”
“친구들이랑은 안 싸우고 잘 놀어?.”
그게 전부였다.
그걸 귀찮아하고 피하던 나는
사춘기의 문턱을 넘으며
점점 냉랭하고 무뚝뚝한 딸이 되어갔다.
애기일 적,
아빠 입에 자갈치 과자를 넣어주며
팔짱 끼고 웃던 딸.
그 딸이 보고 싶었던 거겠지.
그 딸의 목소리를, 체온을, 웃음을
그 질문들을 핑계로 다시 느껴보고 싶었던 거겠지.
나는 붙임성이 없는 성격이라
딱히 자주 전화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너무 미안하다 싶을 땐,
가끔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그럼 아빠는 여지없이 폭풍 질문을 쏟아낸다.
“일은 할 만햐?”
“애들은 잘 커?”
“밥은 먹었어?”
대답을 해도, 자신의 궁금증만 쏟아낼 뿐
아마 제대로 듣지는 않으실 거다.
그저 내가 말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좋은 거겠지.
3분쯤 지나면 참을성 없는 나는 또 이렇게 말한다.
“아, 아빠 알았어요. 나 바빠서 오래 통화 못 해요.
밥 잘 챙기시고 건강하세요. 끊을게요.”
그러면 아빠는 늘 같은 말로 마무리한다.
“그래그래. 아빠는 잘 있으니까 걱정 말고,
애들 잘 키우고, 너도 몸 성하게 잘 있어라.
전화해 줘서 고맙다.”
고맙다는 말.
그 말이 왜 그렇게 궁상맞고, 청승맞게 들리는지.. 다짜고짜 짜증부터 올라온다.
그렇게 내가 궁금했으면
아빠가 먼저 전화하면 될 텐데,
딸 눈치 보느라 전화도 못 하다가,
막상 전화 한 통 받으면 ‘고맙다’는
말을 먼저 꺼낸다니.
결혼 이후 딱 한 번,
아빠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온 적이 있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내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근무 중일까 봐 방해될까 싶어
얼른 종료 버튼을 눌렀다고 했다.
그 짤막한 말을 하면서도, 떠듬떠듬..
아마 전화기를 귀에 댄 채,
한 손엔 휴지를 돌돌 말고 있었겠지.
눈을 깜빡이며, 말하는 내내
딸과의 어색함을 이겨내 보려 애쓰고 있었을 아빠.
언제나 아빠의 대화는 물음표였다.
그에 반해, 나는 늘 마침표로 끝냈다.
더 묻지도 않고, 더 듣지도 않고.
그저 ‘끊을게요’라는 말로
대화를 닫아버리기 바빴던 딸.
이제는 안다.
그 모든 물음표들은
‘사랑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는 걸.
아들의 짜증 섞인 표정에서,
예전의 내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고,
딸에게 사랑을 제대로 주지도,
표현하지도 못했던
서툰 아빠의 쩔쩔매던 마음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