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도 왈츠를 추는 날을 위해

ㅡ뜨거운 순댓국 앞에서 건져 올린 마음 하나

by 매력덩

나는 요즘, 마음을 붙들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
몸이 원하는 음식을 먹어보고, 익숙한 음악을 틀어놓고,
위로 영상을 찾아 듣고,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 땀을 내봤다.
그 모든 과정은 잠깐의 숨구멍은 되었지만,
파도처럼 다시 밀려오는 생각을 오래 막진 못했다.

사람은 이상하다.
갈등의 당사자를 멀리 두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주말처럼 고요한 시간에 더 힘들다.
비어 있는 시간만큼 생각의 음영이 짙어지고,
감정은 그 빈틈을 파고들어 한 겹씩 쌓였다.
마치 어두운 물속에서 발목을 잡는 무엇처럼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감정의 수압이 있었다.

잠을 거의 못 자고 맞이한 주말 아침.
머리는 둔하게 아프고, 몸은 무겁고,
심장마저 이유 없이 빠르게 뛰었다.
“이 단순한 일이 나를 병들게 하진 않겠지.”
그 생각이 순간 스치듯 지나갔다.

늦잠에서 막 깬 아이가 순댓국을 먹으러 가잔다.
아무 의욕도 없고, 움직이는 일조차 고통스러운 몸을 일으키며 나는 스스로에게 아주 작게 말했다.
‘그래, 따뜻한 것이라도 먹고 오면 조금은 나아질 거야.’


뜨끈한 국물을 첫 숟가락 뜨는 순간,
가슴 아래로 흘러내리던 그 열기에서
나는 뜻밖의 안도감을 느꼈다.
행복은 거창하지 않아도
내 앞에 조용히 놓일 수 있는 거구나 하는 느낌.
그 순간의 작은 감각이
며칠간의 묵은 생각을 잠시나마 밀어냈다.

들깻가루와 다데기, 후추를 잔뜩 넣어
마치 원래의 국물이 아니게 변해버린 그 한 그릇.
콧물이 흐르고, 뜨거운 땀이 배어 나오고,
몸 안의 탁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은 기분.
무언가의 앞에서 조건 없이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막걸리 한 잔이 더해지자
오히려 마음이 더 차분해졌다.
그때 문득,
가까웠던 사람도 멀어질 수 있고,
좋았던 관계도 흐려질 수 있다는 것.
그게 잘못이나 배신이 아니라
인생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일 수도 있다는

아주 단순한 진실이 떠올랐다.

내가 겪은 상처의 상당 부분은
상대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기대했던 만큼의 온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생긴 거였다.
기대는 늘 마음에서 태어나고,
상대는 그 마음을 전부 알 수 없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이번 일을 통해 관계가 아니라
관계에 거는 기대를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분명해진 사실 하나.
직장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한 자리고,
나의 사람을 만드는 곳은 아니다.
괜히 인정받으려고 마음을 내어주었고,
그 마음이 다치자 나도 따라 흔들렸던 것 같다.

‘난 혼자다.’
이 생각을 하자 역설적이게도 낯설게 편해졌다.
누구에게 마음을 기대지 않으면
상대의 기분에 흔들리지 않아도 되니까.
그게 쓸쓸함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움일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조금 실감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결국 내가 더 단단해지면 되는 거라고,
그렇다면 언젠가,
혹은 모두 언젠가,
아쉬운 마음으로 내가 다시 생각나는 날이 올 거라고.
그런 가벼운 상상도 어쩐지 날 조금 살렸다.

나는 분명 크게 내상을 입었다.
그리고 한 달 넘게
넘어지고, 흔들리고, 상처받고, 지쳐 있었다.
하지만 오늘, 뜨거운 국물 한 그릇 앞에서
나는 천천히 제자리로 걸어오고 있었다.

이 아픔은 분명 나를 더 깊고 유연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언젠가 사막 위에서도 왈츠를 추듯
부드럽고 단단하게 움직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게 이번 시련이 남긴 하나뿐인 선물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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