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직장에서 미친 듯 존버
직장에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기류가 있다.
한때는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라 믿었던 존재가 어느 순간부터 그 기류를 움직이는 쪽으로 서 있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된다.
예전처럼 편하게 말 걸기도 어렵고,
조금만 오해가 생겨도 죄책감부터 앞서는 나를 보며 관계는 이렇게 조용히 뒤바뀌는구나 싶었다.
한때는 분명 내 편이었다.
내 주변의 질투 어린 시선들, 작은 악의들,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흔들렸는지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믿었다.
그 사람이 있다면 적어도 내 마음이 고립되지는 않을 거라고.
그때는 동맹 같았다.
언제든 기대도 되는, 최소한 등을 맡길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믿음이 오히려 약점이 된 느낌이다.
가장 가깝다 느꼈던 사람이
내가 힘들어했던 기억을
자신의 조용한 통제의 방식으로 바꾸었다.
말로는 “내 적을 만들어 가면서까지 널 보호하고 감싸고 있다”라고 하면서,
태도는 세상 쎄하고 냉정했던 순간들.
남들 앞에서는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굴면서
나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차가움만 남길 때
나는 그 온도 차에 자꾸 눈이 가고 마음이 다친다.
특진을 둘러싼 일이 있고 나서
이 관계는 이전과 이후로 달라졌다.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사소한 오해 하나, 작은 실수 하나도
그 사람에게는 내가 틈을 보인 신호처럼 보였던 것 같다.
예전에는 최소한 숨을 고를 여유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나를 향한 온기가 거의 사라졌다.
날 싫어할 수는 있다.
그건 이해한다.
다만 굳이 나만 선을 긋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보다 더 밝게 웃는 모습을 보일 때 나는 그 격차에 마음이 아릴 뿐이다.
사람 사이의 끝은 거창하게 오지 않는다.
조금씩 쌓인 차가운 말투,
짧아진 대화,
설명되지 않는 거리감이
어느 순간 관계의 결말을 대신 말한다.
나는 지금 그 지점에 서 있다.
이 자리를 계속 지켜야 할지,
아니면 내 발로 떠나는 편이 나에게 더 온전한 선택인지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누구의 태도에 휘둘리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누가 등을 돌리면 나도 삶을 접어야 하는 존재도 아니다.
지금의 흔들림이 나의 가치를 덜어내는 건 아니며
누군가의 편의대로 해석될 삶을 살고 싶지도 않다.
때로는 떠남이 용기일 때가 있다.
때로는 남음이 용기일 때가 있다.
그 판단은 결국 나의 호흡, 나의 속도,
그리고 나의 마음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나는 오늘도 묵묵히 내 하루를 지킨다.
흔들리는 감정 아래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언젠가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나는 지금의 나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버티느라 수고했다.
시간은 결국 성실한 마음의 손을 들어주는 쪽에 서 있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