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의 반찬 투정
휴, 오늘은 또 무슨 반찬을 해야 하나.
하루 세끼, 매번 식탁에 뭘 올릴지 고민하다 보면
‘엄마’라는 이름이 얼마나 위대한지 절로 느껴진다.
특히, 폭염 속에서도
외식 한 번 없이 매 끼니를
찌고, 볶고, 데치고, 삶아내던 우리 엄마.
가만히 있어도 더위에 지치는 날,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어도.
엄마는 하루 세 번, 불 앞에 섰다.
그건 ‘생존을 위한 노동’이었고,
엄마라는 이름이 짊어진 조용한 책임감이었다.
누가 그랬던가,
‘지나간 끼니는 무효’라고.
밥때는 왜 이리 자주 돌아오고,
배꼽시계는 또 왜 그렇게 정확한지.
끝없는 숙제처럼 매일 반복되는 이 일을
감당해 내시는 엄마들은 전부 대단하시다.
나도 한때 도시락을 싸주는 엄마의 딸이었다.
학교 다닐 땐 우리 넷이 모여 점심을 먹었다.
그중 도시락을 싸 오는 건 둘뿐.
나머지 둘은 자연스레 얻어먹는 시스템.
그리고 그 도시락 둘 중 하나는, 내 거였다.
친구의 도시락 반찬은 언제나 눈부셨다.
노랗게 곱게 말린 계란말이,
윤기 좔좔 흐르는 어묵볶음에 큼직한 소시지,
빨간 양념에 쫄깃쫄깃 진미채까지.
분식집을 하시는 엄마답게 반찬도 늘 푸짐하고 맛깔났다.
그에 반해 내 도시락은…
김치, 김치. 그놈의 죽일 놈의 김치.
겉절이, 김치찜, 김치볶음, 김치전.
물김치, 총각김치, 백김치, 갓김치, 오이김치까지.
어쩌다 가방에 도시락 뚜껑이 열리는 날이면
사방팔방 퍼졌던 검붉은 그림자..
“김치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냐”는
소리가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 시절에 내 피는 김치국물로 구성 되었 을지도 모른다.
평소에도 이 정도였는데,
그날의 도시락은 좀 더 특별했다..
네모난 도시락통 대신
검은 비닐봉지에 돌돌 말린 무언가.
풀어보니 그 안엔
까맣게 된 시골 고추장 한 덩이와
푸르고 질긴 날배추 몇 장이 전부였다.
노란 알배추도 아니고,
질기고 억센 푸른 잎 배추..
하필 점심시간, 조용한 교실에서
뽀시락뽀시락 비닐봉지 비벼지는 소리가 퍼질 때부터 느낌이 안 좋더니…
내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야, 이거 누구 거냐?”
우리 반의 개구쟁이 ‘우종태’가
내 검은 봉지를 낚아채며 소리쳤다.
내 밥 메이트들은 침묵.
나는 얼굴이 벌게져 아무 말도 못 했다.
“아~ 이주화 으르신~
백세까지 만세무강 하세요~!”
그러고는 꾸벅, 폴더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창피해서, 도저히 못 앉아 있겠더라.
“난 밥 안 먹을래. 너네 먹어라.”
도시락을 친구들에게 맡기고
난 수돗가에서 물을 마셨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혼자 있었던 것 같다. 마음속엔 분함과 부끄러움이 뒤엉켜 폭풍처럼 일었다.
집에 가자마자 된장 담근다고 바쁜 엄마에게
참았던 분노를 터뜨렸다.
“엄마, 도시락 싸기 싫으면 그냥 싸지 마!
배추가 뭐야, 배추가… 나 진짜 망신당했단 말이야!”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 이 무슨 난리냐는 듯,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년이 왜 승질이여~
아침에 고추 따느라 바빠서 반찬 할 시간이 없더라고.
새끼들 밥 굶길 수는 없고, 그거라도 쌌지.
배추 말고, 아침에 딴 싱싱한 고추나 싸줄 걸 그랬냐?”
하...
공감력 1도 없는 우리 엄마.
예민한 사춘기 딸에게 푸른 배추라니.
엄마 흉만 잔뜩 보다 보니 좀 미안해진다.
사실, 그때 엄마가 싸신 도시락이
시장 다니시는 할머니 아침·점심·저녁 3개,
고등학생 오빠 것도 3개,
언니 것 점심. 저녁 2개,
내 것까지 무려 10개를
새벽 농사일 마치자마자
등교 전에 후다닥 도시락을 싸주시던 엄마의 은혜야 말로 다 못 하지만
그래도... 날배추는 좀 아니지 않은가.
그런 나도 이제는 두 아이를 먹이는 엄마다.
반찬 투정하는 아들을 보며
(도시락 사건은 논외로 하고)
내가 음식을 깨작깨작 먹을 때마다 맛본
엄마의 그 매운 손맛, 그 시절 등짝 스매싱이
괜히 그리워진다.
아침엔 칼질 소리에 눈을 떴고,
저녁엔 된장찌개의 구수한 냄새가
집 안을 채우던 시절.
오늘따라 우리 엄마의 된장찌개가,
유난히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