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마라톤 씹어먹기-
그날이 올까?
한 달 전 달력에 동그랗게 그려놓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그날이 정말 오고야 말았다. 빼박이다.
하프도 물론 준비가 되어야 하지만 풀마라톤은 하프 마라톤과는 또 달라서 한 달에 예를 들면 300킬로 내지는 350 키고 정도로 연습량이 채워져야 완주가 가능하다고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나는데,
나란 인간은 연습은커녕 실전에 나를 던져 놓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무식한 생각으로 풀마라톤에 도전하겠다는 간 큰 인간인 셈이다.
사실 말이 쉽지 풀마라톤 준비를 직장 다니며, 살림하며, 아이들 챙기며 어떻게 준비하냐는 배 째라 배짱도 한몫하긴 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평일에 연습을 하나, 생업이 있는데 하루에 못해도 30킬로를 뛸 시간을 어떻게 확보한단 말일까.... 그게 가능한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연습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도 모든 건 마음먹기 나름.
가만있어보자.... 42.195라..
대략 천안에서 집까지 거리쯤?! 그거 못하겠어 내가? 앞전에 하프도 성공했는데, 그까짓 거 두 번 뛰면 되는 거 아냐!!!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고 자꾸만 내 뇌를 속였다.
하프 마라톤 이후, 풀도 조만간 도전하겠다고 하자 오만방자한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는 남편에게도 큰소리 뻥뻥 친 나였지만 막상 결전의 그날이 다가오자 내심 끌어 오르는 긴장이 나에 대한 의심과 불신으로 이어졌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평소에 약했던 무릎이 바쳐주지 않으면 어쩌지? 발목은 잘 버텨줄까? 쥐가 올라오면 낭팬데,, 이게 의지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내가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만약에 완주를 못하면 내 의지와 체력이 나약해서가 그저 연습량이 충분하지 않았던 거라고 둘러댈 핑계를 준비해 둬야지 후훗
나도 알 수 없는 내 능력치를, 한계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10월 3일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급기야 비가 오기 시작했다.
집에서 서울 강남까지 차를 타고 가는데 처음에는 흩날리던 비가 목적지가 도착하자 장대비가 되어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뛰기에는 까다로운 날씨.
비가 오면 신발도, 옷도, 모자도 젖어 몸무게+2킬로 정도는 더 무거워질 텐데.. 걱정이 앞섰다.
주차를 한 후 모자, 무릎보호대, 스프레이 파스, 고글 등 개인 장비를 전대(?)에 빠짐없이 넣고,
텐션을 끌어올려줄 에너지젤도 야무지게 챙겼다.
대회장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화장실 앞에는 용변을 보려는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서 그 줄만 해도 100미터는 족히 될 것 같았다.
평소와는 다른 광경인 게, 이번 마라톤 대회는 먹거리 장터처럼 천막에 음식들이 즐비했고, 마치 축제장에 온 느낌이었다. 군침이 절로 돌게 만드는 바비큐 냄새, 오늘의 장소와 어울리진 않지만 참으로 먹고 싶은 비주얼 초밥, 다 아는 맛이지만 추억 돋는 핫도그까지 매력적인 음식들이 한데 모여 나에게
잘 뛰고 와. 하고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시간이 촉박해 몸을 제대로 풀지 못했는데, 앞 무대에서 스트레칭 체조를 보여줬지만
시끌시끌하고 웅성웅성하고 정신없는 분위기에 정신이 아득해져서 뭘 보고 따라 할 정신도 집중도 안 됐다.
늘 그렇듯, 스타트 라인 앞에 서서 출발 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5,4,3,2,1! 드디어 함성과 함께 출발~~ 알!!
초반에는 모두가 활기에 넘쳐 우- 하고 몰려 뛴다. 이럴 때 다른 사람의 발이나 내 발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잘못 걸려 넘어졌다가는 도미노가 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바닥을 잘 보고 앞사람과의 간격 유지를 잘해야 한다.
마라톤 시작 2분 만에 물이 고여있던 웅덩이를 잘못 밟았더니 신발에 물이 튀어 신발이 그대로 젖었다. 그야말로 군인들 행군할 때 무거운 가방 메고 전투화신고 산길을 걸을 때의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이 상태로 42킬로를 뛸 생각 하니 찝찝하기도 했지만 갑갑했다.
전날 긴장 상태라 밤잠을 잘 자지 못해서 인가, 스트레칭을 충분히 하지 않아서 인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1킬로가 왜 그리도 멀게 느껴지는지..
다른 날과 다르게 이번 뜀은 귀에 아무것도 꽂지 않고 뛰어보았다.
장작 42.195를 아무 소리 없이 뛰는 게 지겨울 거 같았지만 막상 뛰다 보니 많은 것들이 귀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의 숨소리, 씁씁- 후후- 하는 소리에 내 호흡도 함께 맞추고, 그에 맞춰 발 박자도 맞추고
마치 탭댄스를 하는 것 같았다.
또 바닥이 젖어있어 사람들이 바닥을 밟는 소리가 주사 맞을 때 엉덩이를 탁탁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지면에 따라서는 다듬이 방망이질 같게 들리기도 했다.
뛰다 보니 내 앞에 시각장애인분이 페이스메이커의 도움을 받으며 열심히 뛰는 모습이 보였다.
나라면 용기도 못 냈을 거 같은데, 도전에 숙연해짐과 동시에 존경심이 생겼다.
그래 맞아 내가 한계는 정하는 거였어. 못할 건 없지.
그분의 용기에 진심으로 박수쳐 드리고 싶었다.
10킬로 푯말이 나오자 예전에는 10킬로 뛰는 것도 엄청 부담스럽고 힘들게만 느껴졌는데 지금은 10킬로라는 숫자가 반갑고 정겹게만 느껴졌다.
한 12킬로 정도 지나가는데 벌써 반환점에서 돌아오는 하프 주자들이 반대편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을 해주는 모습을 보자 한마음이란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오름을 느꼈다.
13킬로쯤 지나면서 비가 그친 게 눈에 들어왔고, 14킬로를 지날 때는 그리 덥지 않아 뛰기 딱 좋은 날씨에서 뛰는 게 참 다행이다 싶었다.
또, 중간중간 나오는 화장실에 급하게 뛰어 들어가 볼일을 본 다음, 용변을 해결하고 급하게 뛰어 내려와 빠르게 합류하여 각자의 페이스에 맞게 뛰는 사람들도 보였다.
16킬로를 뛰다 보니 하프 코스의 반환점이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거기서 반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프 참가자들이 빠지자 온전히 풀 마라톤 주자들만 남아 개별적으로 각자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모두 한 방향으로 같은 종착지를 향해 한 발 한 발을 내딛고 있었다.
21킬로를 지나 22킬로 숫자가 보였다. 뛰기로서는 처음 보는 숫자였다.
인간이 22킬로 너머를 뛸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앞만 보고 뛰었다.
맹목적으로 뛰면서,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뛰는 나를 발견했다.
반환점이 언제쯤 나오나..
턴 할 때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지겹고 징그럽게 멀었다.
대략 풀의 반환점은 27킬로 정도였던 거 같다. 반환점으로 가는 중간중간 나오는 급수대는 하늘이 내려준 보물이다. 심봤다를 외치고 싶은 생명수 같은 곳.
어찌나 반가운지, 그렇지만 뛰면서 옆구리가 아플까 봐 입만 축이고 목만 축였다.
난데없이 배변활동으로 골치 아플까 봐 급수대에 함께 놓인 바나나도 째끔씩 째끔씩 조절하며 베어 먹었다.
30킬로쯤 뛰었을 무렵,
함께 뛰던 메이트(라 하겠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열기가 올라 그렇겠거니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계속 달렸다.
그러다가 31킬로쯤에는 4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르는 그룹이 뒤따라 오는 소리가 들렸다.
“한 37킬로부턴 옆사람이 퍼지든 말든 나뛰기 바쁘잖아, 그때 인간성 나와 ㅎㅎ”
“그래? 아직은 괜찮아야 하는 거리네?!”
“오늘 뛰고 나서는 뭐 먹지?”
“당연히 고기 먹어야지”
“어제도 족발에 막걸리 먹었다 안 했어?”
“그건 어제고, 오늘은 칼로리 한 4천 이상 태울 텐데 단백질 섭취는 필수라구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얘기를 하는 것을 주워들으며 무리와 33킬로까지 함께 맞추어 뛰다가
급수대 통과하면서 거리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34킬로.
지금까지의 페이스보다 속도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때부터가 메이트의 컨디션이 본격적으로 안 좋아지기 시작했던 듯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견디며 뛰었다.
옆구리 아플까 봐 목만 축이던 나도 미친 듯이 올라오는 갈증에 항복하고 말았다
‘에라 모르겠다’ 포카리를 벌컥벌컥 연거푸 4잔 마시고, 배고프지는 않았지만 허기가 지는 것 같아서
바나나를 입에 와구와구 구겨 넣었다.
세상에 이렇게 꿀맛일 수가 있나...
자 먹었으니 또다시 뛰는 거다.
나는 기계다. 뛰는 기계다. 느끼지도 말고, 뛰자. 생각하지도 말고 그냥 뛰자.
35킬로 표지판이 보이면서는
다리는 천근만근, 무릎은 뻐근, 종아리는 터질 듯했고 허벅지는 찢어지는 아픔이 느껴졌다.
메이트의 멘털을 잡아줘야 할 나마저 힘들어지기 시작하는데 와 정말이지,
속수무책으로 체력과 정신력이 무너져 내림을 느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미친 도전을 하고 있나. 후회가 되면서 나에게 성질이 나기 시작했다.
엉덩이도 얼근하고 허리 통증도 심해졌다. 대퇴골이 ‘미쳤어? 날 잡으려고 작정하는 게야?’라고 아우성치는 듯했다.
여기까지가 내 한계인가. 나는 정말 여기에서 멈추게 되는 것인가? 내 의지는 여기서 꺾이는 것인가..
떵떵거리던 그 패기는 다 어디 갔나..
내리 5시간 정도를 무작정 뛰면 되는 거다. 뭘 따지고 말고 할거 없이 물리적으로 그 시간을 채우면 끝나는 게임이다.! 를 마음에 새기며 멈추지 말자. 멈추지만 말어. 마음을 다잡았다.
36킬로 접어들자 위기가 찾아왔다.
메이트가 혈압이 급속도로 떨어지며 어지럼증이 있었던 모양이다. 잠시 걷자고 하더니
나에게 ‘지금 본인의 눈에 초점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 질문을 듣자 나도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벌겋던 메이트의 얼굴이 갑자기 흑빛으로 변해 있었다.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으며 힘겹게 달리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독하게 만들었나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메이트는 포기하지 않고 숨을 고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조금 가라앉고 나자 또 걷뛰걷뛰를 반복했다.
37킬로.
이때부터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메이트의 양다리에 발끝부터 허벅지까지 쥐까지 올라왔단다.
끝까지 달리는 게 목표였지만, 이대로 계속 무리해서 뛰다가는 큰일이 날 거 같았다.
중간중간 앰뷸런스 차량이 주자들의 상태를 체크하느라 왔다 갔다 할 때 그 차에 타고 가자고 제안했지만 끝끝내 목표지점까지 기어서라도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빠득빠득 고집부리는게 나를 위한 게 아닌데도 무조건 자신의 두 발로 가겠다는 걸 보자 나중에는 나도 약간 화를 낼 뻔했다.
본인 때문에 뛰지 못하는 게 속상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나 또한 조용히 옆을 걸었다.
메이트는 나에게 미안했는지 자꾸만 먼저 뛰어가라 했다.
절뚝절뚝 거리며 걷는 메이트를 팽개치고, 나 혼자 뛰어 골인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대회에서 함께 뛴다는 그 기쁨이 내겐 더 소중했기에.
솔직히 완전히 온전히 뛰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목표보다 더 값진건 누군가와 귀한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연대가 더 아름답다고 느끼기에 난 최종적으로 동행을 선택했다.
분하고 화가 나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참을 수가 없었던지 내가 옆얼굴을 보자 메이트는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 고개를 얼른 돌렸다.
이때부터는 또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맞으며 우리는 함께 걸었다.
38킬로부터는 사실상 걸을 수밖에 없었다. 뛰어서 끝내는 것은 불가능함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비록 마지막 5킬로 정도는 뛰지는 못했지만 5시간을 넘기지 않으려 그거까지 나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며 추 달린 듯한 두 다리를 이끌고 필사적으로 빨리 걸어온 메이트는
피니쉬 라인 200미터 전부턴 나의 부축을 받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걸었고 라인을 통과하자마자 쥐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벌러덩 거리에 누워버렸다.
그런 다음 우리는 함께 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환하게 웃었다.
첫 풀도전.
5킬로 정도 쭉 걸은 거 치고는 4시간 50분. 뭐 나쁘지 않은 기록이라고 위안을 해본다.
내 인생 버킷리스트 한 줄이 이렇게 달성되어 지워지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한번 하프 뛰어본 경험으로 겁 없이 풀대회를 나온 나란 여자.
실전이 곧 연습이고, 연습이 곧 실전이었던 막무가내 정신의 테토녀...
다음번에 또 풀마에 도전할 거냐고?
그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당연히 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