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아스퍼거 증후군이 남긴 질문ㅡ
오후 1시 30분.
○○중학교 회의실에는 교육청 관계자, 학교 관리자와 교사들, 그리고 학교전담경찰관인 나까지 아홉 명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문제학생의 아스퍼거 증후군
행동 기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말은 모두 조심스러웠지만,
공기에는 묵직한 긴장이 맴돌았다.
‘또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이 아이는 이미 통제 범위를 벗어났다.’
그 말들은 누구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회의실 안의 표정과 시선에는
분명히 드러나 있었다.
회의는 학생의 행동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의자를 던져 또래 학생이 손가락 골절을 입었던 날, 그날 교실에 번졌던 공포, 그리고 폭력의 빈도와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과 안전을 더 이상 담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틀린 말은 없었다.
오후 2시.
문이 열리고 학생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회의실의 공기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는 들어오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주변에 피해를 줘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 한마디에, 그동안 문서와 기록 속에만
존재하던 ‘학생’은 사라지고,
한 사람의 ‘엄마’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담임교사가 먼저 말을 이었다.
아이가 흥분할 때 진정시키기 위해 어머니가
2학기 중반까지 참관 수업을 했던 일,
그러나 증상이 발현될수록 아이가 어머니에게 욕설과 폭행을 하고 그 장면이 급우들에게
날 것 그대로, 수차례 노출됐던 상황.
체구는 크지 않지만 힘이 점점 세져,
이제는 보호자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참관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어머니는 아이의 기질과 성장 과정,
지금까지 겪어온 어려움들을 이야기했다.
문제 행동에 대한 해답이 될 수는 없는 말들이었다.
목소리는 다소 높았지만, 그 안에는 변명보다 자책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왜 더 일찍 막지 못했을까.’
‘내가 엄마로서 실패한 건 아닐까.’
그 질문들이 말 사이사이에 묻어 있었다.
열 명이 둘러앉은 그 공간에서,
어머니는 가장 작은 사람이었다.
교육청, 학교, 경찰.
우리는 제복을 입지 않았지만, 어머니에게는 분명 ‘권한을 가진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이상할 만큼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는 경찰관이기 전에 두 아이의 엄마이고,
같은 반 아이들의 학부모 마음도
충분히 아는 사람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학생의 보호자라는 존재는, 솔직히 말하면 나에게도 불편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의 정체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건 아이 때문도, 어머니 때문도 아니었다.
내 안의 양심 때문이었다.
공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할 직업윤리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문제 행동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필요하다.
분리 조치와 치료 역시 필요하다.
다른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도 틀리지 않다.
그런데 그 모든 ‘정답’의 문장 사이에서,
나는 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타 학생들 앞에서 자식에게 맞으면서도
아이를 보호해야 했던 사람.
통제하지 못한 자신을
하루에도 몇 번씩 책망했을 사람.
그리고 오늘, 열 명 앞에 앉아
고개를 숙여야 했던 사람.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지금 누구의 편에 서고 싶은가.
그리고 누구의 불편함을 더 견딜 수 있는가.
회의가 끝날 무렵,
나는 학교전담경찰관으로서 해야 할 말들을 했다.
관리 체계 강화, 분리 조치, 보호자의 공동 책임, 그리고 필요시 경찰 개입 가능성까지.
모두 필요했고,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말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어머니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 말은 회의록 어디에도 남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아이를 ‘위험 요인’으로
간단히 정리한 뒤,
그 위험을 오랫동안 견뎌왔던 사람의 얼굴 앞에서
나는 조용히 불편해진 나 자신을 마주했다.
문제는 아이 하나가 아니었다.
이 아이를 어머니 혼자 감당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이 일은 누구의 잘못을 가려내는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늦기 전에
손을 내밀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그날 오후 2시.
나는 끝내하지 못한 말을 마음에 남긴 채
회의실을 나섰다.
그 말은 어머니에게도,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필요했을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