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시할머니의 49제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동이 불편할까 싶어 전날 금요일, 근처 휴양림을 예약해 가족이 함께 들어갔다.
금요일 저녁, 저녁상 앞에서 큰아이가 또 투정을 부렸다.
“입맛 없어. 밥이 왜 이렇게 맛이 없지? 반찬은 다른 거 없어?”
그러고는 밥을 국에 말아 깨작깨작 건드리기만 했다. 점심때도 속이 울렁거린다며,
먹는 건지 코로 들이마시는 건지 알 수 없는 모습이었다.
결국 또 밥. 기-승-전-밥. 그 죽일 놈의 밥!!!!!!
밥 이야기만 나오면 혈압이 오른다.
아이 어렸을 적부터 먹이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온 나는 ‘식(食)’ 문제만큼은 예민해졌다.
내 아이 내가 먹이는데 누가 뭐라 하는 게 못마땅했고, 한술 더 떠 고집은 황소 같았다.
입에 욱여넣은 밥을 토해내면 다시 떠먹이던, 지금 생각하면 엽기적인 엄마였다. 양보 따윈 없었다.
그러니 입맛 까다로운 큰아이의 밥투정은 언제나 얄미웠고,
속으로는 ‘어디 한 번 걸려봐라’ 하고 늘 벼르고 있었다.
남편이 한술 더 떴다.
“며칠 축구를 많이 해서 피곤할 거야. 먹기 싫으면 그냥 TV 보게 둬.”
순간 화가 치밀었다.
“밥도 제대로 안 먹는 애한테 왜 TV를 보게 해?”
말이 끝나자 남편은 갑자기 방에 들어가 이불을 펴고 드러누웠다. 황당했다.
“이게 뭐 하는 거야? 왜 그렇게 뾰족하게 굴어? 애 밥 안 먹는 것도 성질나 죽겠는데,
같이 먹여볼 생각은 안 하고 신경질부터 내? 말해봐.”
와다다 쏟아내는 나를 남편은 잠깐 쳐다보더니 창밖으로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내 말 안 들려?” 따지자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뭘 왜 그래. 몰라서 묻냐?”
누구 때문인지 알면서, 왜 이러냐는 투였다. 뒤이어 쌔한 말이 날아왔다.
“... 다음부터는 여행 따로 다니자. 서로 번갈아 가면서.”
돌아보면 남편이 크게 잘못한 건 없었다. 오히려 내가 괜히 닦달하다 일이 커진 셈이었다.
그래서 바로 사과는 했지만, 기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내 마음을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남편이 서운했고, 사건의 발단을 제공한 큰아이도 미웠다.
게다가 내일 있을 49제라는 의식 자체가 싫었다.
생각해 보면, 그날의 분노는 누구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지쳐 있던 나 자신에게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감당할 여유가 없을 때, 마음은 가장 가까운 곳에다 화풀이를 한다.
철없는 심보였음을 안다. 그래도 그 순간의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그 기분으로 어른들 앞에서 태연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어야 한다니, 도저히 못 해먹을 일이었다.
가출
택시를 타러 나가는데, 큰아이가 맨발에 내복 차림으로 급하게 따라 나왔다.
앞으로 밥 잘 먹을 테니 가지 말라며 내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그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지만, 울면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아이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젖은 눈을 애써 닦아냈다.
작은아이는 자면서도 이불을 자꾸 차내 곤 한다.
지금쯤이면 또 이불을 덮어줘야 할 텐데.
춥게 자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마음이 쓰였다.
이렇게 엄마는 집을 나서면서도 아이들 생각에 발목이 붙잡혔다.
그때 기사님이 물었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세요?”
나는 부부싸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기사님은 웃으며 말했다.
“애들 어릴 땐 다들 그래요. 우리도 참 많이 다퉜죠.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지나갈 일이더라고요.
아이들은 부모 싸우는 거 보면 많이 불안해하니까, 엄마가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지는 마세요.”
그 말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집을 나가는 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뿐이었다.
엄마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울고 있을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사님, 휴양림으로 다시 돌아가 주실 수 있을까요?”
기사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머리를 반대로 돌렸다.
귀가
숙소가 가까워지자 아이들이 보고 싶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도착해 보니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안 잠그고 자면 어떡해. 누가 잡아가면 어쩌려고.”
현관문을 벌컥 열자, 불 끄고 자려던 가족이 모두 놀라면서도 반가워했다. 남편도 내심 안도하는 눈치였다.
엄마가 나간 뒤, 큰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어 달을 보며 울었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동시에 아이들이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두 아이를 꽉 껴안으며 생각했다.
'그래, 이게 가족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