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킬로는 장거리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거리다.
그렇다고 아무 준비 없이 덤볐다간 반드시 혼난다.
근육을 단련하고, 숨을 틔우고, 심박수를 올려봐야
‘아, 나는 이 정도까지는 뛰는 사람이구나’ 감이 온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연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타입도 아니고, 계획을 세워 몸을 준비시키는 진지함도 없다.
나는 본디 무대에 다짜고짜 던져놔야 움직이는 인간이다.
그래서 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첫 10킬로 대회에 나갔다.
와—
그날의 긴장감이란.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 시점에 모여 있는 것도 처음이었고, 요즘 세상에 러너가 이렇게 많았나 싶어 괜히 두리번거렸다.
첫 대회라 페이스 조절 같은 건 전혀 몰랐다.
처음엔 얼마로, 중간엔 어떻게, 마지막엔 언제 올려야 하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계산해도 뜻대로 안 될 게 뻔했다.
그냥 생각을 접었다.
몸이 가는 대로 가자.
출발 신호가 울리자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나갔다.
마치 100미터 앞에 금가마니라도 놓여 있는 것처럼.
어라? 전력질주 분위기네?
주변 리듬에 휩쓸려 나도 냅다 뛰었다.
앞에서 풍선을 달고 달리던 한 아저씨의 보폭을 따라갔다.
그렇게 몇 킬로를 지나고 나니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뛰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이미 무리였다.
갈 때는 몰랐는데 반환점을 돌고 나자 무릎 통증이 온 신경을 잡아끌었다.
컨디션을 끌어올려보겠다고 에너지젤을 꺼냈다.
뛰면서 이를 악물고 포장을 뜯었는데 찢어지는 방향이 잘못됐다.
손에 끈적한 젤이 묻고, 얼굴에도 튀었다.
하, 진짜.
다리 아파 죽겠는데 별게 다 속을 썩인다.
마침 급수대가 보였다.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가 삼키는 순간, 몸의 진동 때문에 물이 울컥 넘어갔다.
그때부터 옆구리가 찌르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이었다.
정신이 없어서 이어폰도 빼버렸다.
돌아오는 길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무거웠다.
‘아니, 내 주변 사람들은 10킬로는 껌이라던데…저 사람들도 멀쩡한데 왜 나만 이러지? 내 한계가 고작 10킬로야? 배드민턴도 안 맞더니, 마라톤도 안 맞는 인간인 건가? 내가 이렇게 의지가 약했나…’
초반에 앞질렀던 러너들이 하나둘 나를 추월했다.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릎 통증이 이미 경고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7킬로부터는 속도의 의미가 사라졌다.
함께 뛰던 메이트가 “괜찮아?” 하고 묻는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답하기조차 귀찮고, 솔직히 말하면 성가셨다.(미안해, 메이트…)
그건 정말 나만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고통, 나와 나 사이의 싸움이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여기서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이를 악물고 끝까지 갈 것인가.
체력만큼은 평타 이상이라고 믿어온 내가 기권을 한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걸을까? 옆으로 빠질까?
뭐 죽기야 하겠어.
존투처럼 아주 천천히 뛸까?
차라리 앰뷸런스를 탈까?
근데 왜 구급차는 안 지나가지?
무릎에 파스라도 붙이면 나아질 것 같은데…
헬퍼는 대체 어디에 있지?’
의식은 요동쳤고, 몸은 흔들렸다.
누가 보면 울트라 대회라도 나온 줄 알겠다.
고작 10킬로 뛰면서 유난이란 유난은 혼자 다 떨었다.
갈 때는 100미터 질주하듯 뛰었다면, 올 때는 풀마라톤 피니시 2킬로를 남긴 사람처럼 한 발 한 발을 옮겼다.
다리를 절뚝이며, 옆구리를 움켜쥐고 참고 뛴 시간이 대략 25분쯤 됐을까.
어느새 1킬로 전이었다.
와. 내가 여기까지 왔네.
평소엔 1킬로만 뛰어도 진절머리가 나 금방 걷던 내가 이만큼을 멈추지 않고 뛰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고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 속으로 들어갔다.
삑—
시간 측정 소리.
결승선을 넘자 세상에, 다리도 옆구리도 거짓말처럼 안 아팠다.
몸이 이렇게 간사하다니. 오히려 하프도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애 첫 10킬로를 마치고 메달을 목에 걸며 중얼거렸다.
“해냈다. 해냈어.”
아팠지만 포기하지 않은 나에게 잘했다고, 신통하다고 무릎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날 햇살을 받으며 한강 옆에서 먹은 빵 맛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뛴 게 아니라, 그만두고 싶은 나를 끝까지 데려오기 위해 10킬로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