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의 크리스마스

by 매력덩

“남자 다섯 명이랑 잤어요.

한 명 빼고는 다 처음 본 사람들이에요.”




어느 한 중학교.

조용한 상담실, 동그란 테이블에 먼저 와 앉아 있던 그 여학생은 검정 롱패딩 차림에 앞머리로 눈을 거의 가린 채,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치아 교정 중이라 마스크를 벗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얼굴은 희고, 얼핏 보이는 눈매는 맑고 순해 보였다.

이 아이를 만나기 약 닷새 전,

학교 학생부장 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117 신고를 막 마친 직후라고 했다.


사건은 이랬다.

2025년 8월부터 10월 사이,

○○역 인근을 배회하던 한 미성년자 여중생에게

총 다섯 명의 남자가 접근했다.

그중 한 명만 미성년자(만 17세)였고, 나머지는 성인이었다.

이들은 술과 밥을 사주고, 담배를 함께 피웠으며, 나중엔 성관계를 요구했다.

각각 다른 날짜에, 다른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위력 또는 위계에 의한 성폭행으로 판단되어 접수된 성사안이었다.

교사는 통화 말미에 덧붙였다.

인지 능력이 다소 낮은, 경계선에 있는 아이라고.


“왜 그 사람들을 따라갔지?”

건조한 내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의 대답이 나왔다.

목소리는 생각보다 컸다.

분수에 맞지 않게 씩씩한 톤이었다.

“밥이랑 술 사주고, 담배 준다고 해서요.

싫다고는 했는데, 계속 요구해서요.”


역 근처.

굳이 갈 이유가 없어 보이는 그곳을

아이는 집이 답답할 때마다 찾았다고 했다.

그곳에서 노숙을 하다,

술과 밥을 사주며 말을 걸어오는 남자들을 만났고

관계를 갖게 됐다고 했다.

조금 전까지 쓸데없이 씩씩하던 목소리는

지금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 앞에서 힘을 잃었다.

임신했을까 봐 무섭다고 했다.

만약 임신을 했다면,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걱정된다는 말도 이었다.


‘그럼 거길 가지 말았어야지.’

그만한 자식을 키우는 사람의 마음이

쓴소리로 올라올 뻔했지만, 삼켰다.

이 아이가 두려워하는 건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가 아니었다.

내 몸에 무슨 변화가 생겼을지 모른다는 불안,

앞으로 생길지 모를 결과에 대한 공포였다.

성병일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흔적이 남았을 수도 있다.

아무도 확답해 줄 수 없는 상태였다.

병원 동행 여부를 묻자

아이는 ‘이모’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연인이라고 했다.

산부인과 진료가 필요하면 함께 갈 수 있다고 했다.

정기적인 심리상담은 받고 있지 않았다.

가해자들과의 현재 접촉은 없었고,

휴대전화와 SNS를 통한 연락도 모두 끊긴 상태였다.


아이의 눈빛에서 나는 이런 뜻을 읽었다.

‘나는 이미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어요.’

이 아이를, 이대로 두면 안 된다.

자신의 몸이 함부로 다뤄져도 되는 것이 아니라고,

고결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누군가는 분명하게 말해줘야 했다.




나는 내 전화번호를 건넸다.

앞으로 집이 갑갑하다고 해서 습관처럼 역으로 가지 말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번호로 전화하고,

배고프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망설이지 말고 연락해. 전화 못 받으면 문자를 남기면 된다.

내가 반드시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했다.

온전히 그 뜻이 가닿았을는지는 모른다.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거 하나만은 꼭 기억하라고.






이 글을 쓰는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다.

집에 있던 사람들마저 약속을 만들어 밖으로 나가는 밤이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어떤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고 있을까.

또다시 모르는 사람에게서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 있지는 않을지.

그 생각이 이 밤을 오래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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