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일요일 아침.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난 첫째가 부스스한 얼굴로 방에서 나왔다.
오늘 우리 가족은 어젯밤 잠들기 전, 순댓국을 먹으러 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씻고, 선크림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먼저 준비를 마친 큰아들이 툭 던지듯 말한다.
“이따 밥 먹고 장 보고 오면 아빠는 나간다는데,
엄마는 어디 안 가?”
“안 가.”
대충 어떤 말이 이어질지 알겠어서 무뚝뚝하고 떫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 아빠도 없이 엄마랑만 있어야 돼?”
여기에 작은놈이 한 술 더 뜬다.
“으, 망할. 다 틀렸네.”
- 뭐. 뭐라고? 너희 지금 뭐라 했냐………
평소 같으면 웃고 넘겼을 텐데, 유난히 그날은 그 말이 너무 버르장머리 없이 들렸다.
순간 발작 버튼이 눌렸고, 급발진 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연이틀 새벽 세 시 반까지 이어진 불면.
잠은 잤다기보다 끔찍한 꿈을 몇 개나 꿔댔는지 모를 정도로 수면의 질이 바닥이었다.
전날 밤, 남편과 나눈 직장 이야기와 삶의 허무, 조기 갱년기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그걸 옆에서 듣고
“엄마 요즘 외로운가 봐”
라며 아는 척 끼어들던 그 녀석이 아무 생각 없이 저 말을 뱉었다는 게 괘씸했고, 분했고, 억울했다.
얼마나 엄마가 우습게 보이면 저런 말을 하나 싶어
‘아, 내가 애를 잘못 키웠구나’라는 생각은 순식간에
‘내가 잘못 살아왔나’라는 자기 검열로 이어졌다.
“안 가.”
“왜. 다음 주는 당신이 애들 방학 점심 당번이잖아.
점심거리 사야지. 같이 가.”
남편 말은 못 들은 척하고 아이를 불렀다.
“댕댕이, 이리 와봐.”
말로 쇠사슬을 걸어 끌어당겼다.
분위기를 눈치챈 큰아이가 재빨리 다가와 앞에 앉았다.
“엄마 요즘 마음 상태 안 좋은 거 너도 알잖아.
왜 그렇게 버릇없이 말했는지 이유를 말해봐.”
(묵묵부답)
“............... 밥은 됐으니 너희끼리 다녀와라.”
엄마의 잔소리 공격이 끝나자 남편은 예의상으로도 ‘그래도 같이 안 나 갈라냐’고 한 번 더 묻지 않고 아이들을 데리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수동적 분노표출은 지구 1등인 랭정한 인간 같으니.
결국 나는 집에 남았다.
아침부터 따뜻한 순댓국에 갓 지은 밥 말아 깍두기 얹어 막걸리 한잔과 먹을 생각에 설렜는데, 버릇없는 말로 감정 상하게 한 아이도 꼴 보기 싫고, 왜 이 포인트에서 내가 화났는지 뻔히 알면서도 굳이 공감해주지 않는 남편도 밉고, 요즘의 앙상해진 내 마음을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아 서러움이 밀려왔다.
저것들은 크면 클수록 즈그들끼리만 더 뭉쳐 다니고 엄마는 자연스럽게 왕따다.
딸 하나만 있었어도 덜 외롭지 않았을까 같은 아무 의미 없는 미련까지 두더지처럼 고개를 내민다.
사는 게 나만 이렇게 찌질한가.
다들 멀쩡하고 단단해 보이는데 왜 나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이렇게 치이는 기분일까.
회사 인간관계에서 떨어진 자존감은 집까지 따라와 내 설 자리를 조금씩 지운다.
스트레스는 몸으로 오고, 삶의 재미와 의욕은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내가 봐도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감정과 상황에 맥없이 휘둘리는 나 자신이
다방면에서 함량미달인 듯하다.
그래도 그렇지.
속으로 ‘자식새끼 다 필요 없다’ 욕을 하면서도 눈치 없이 위장은 뭘 좀 넣어달라고 아우성친다.
사는 게 고역이라면서도 먹고 살 생각엔 눈이 밝아지는 이 짐승 못지않은 본능을 어찌할 것인가.
냉장고를 열어 시금치, 콩나물, 무생채, 참기름, 고추장.
손에 잡히는 걸 죄다 꺼내 양푼에 넣고 쓱쓱 싹싹 비볐다.
입이 미어지게 퍼먹다 밥알 하나가 목구멍을 건드려 밥분수를 뿜었고,
수습하려다 보니 밥알 한 알이 코로도 들어갔다.
이 인생, 참 시트콤이구나
온 얼굴로 꿀맛 같은 비빔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하—
기분은 드러운데 맛은 또 드럽게 좋네.
나의 일요일은,
나의 하루는,
나의 일상은 누가 봐도 무슨 호들갑이냐는 듯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또 그렇게 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