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엄마를 꼭 봐야 해서
경찰서에는 늘 종이가 먼저 도착한다.
사람보다 빠르고, 감정보다 정확하다.
‘117 성사안 신고.’
A4 한 장.
가해 학생, 피해 학생, 일시, 장소, 행위 개요.
글자는 정갈했고, 문장은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이 문서에는 없는 게 하나 있었다.
아이의 얼굴.
그날 문제의 학생은
(지능)경계가 조금 흐릿한, 열네 살 남자아이였다.
여기서는 가명으로, 종엽이라고 부르겠다.
종엽은 아파트 커뮤니티센터
여자 화장실에 따라 들어가
두 명의 여학생을 훔쳐보려다 신고를 당했다.
‘성추행 미수’라는 단어가 신고표에 찍혔다.
나는 종엽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죄송하다는 말,
정말 죄송하다는 말,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
이혼 후 장애가 있는 아들을 혼자 키우고 있는데
아이가 클수록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경찰서 한 번 데리고 오시겠어요?
대면 상담 진행하겠습니다.”
엄마는 부디 그래달라고 했다.
사흘 뒤,
엄마와 종엽은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상담실로 들어가기 전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무섭게 야단칠 수도 있는데,
옆에 계실래요?”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를 혼내는 자리에 자기는 없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나와 종엽, 둘만 상담실에 앉았다.
“종엽아, 왜 그랬는지 말해줄 수 있을까?”
“여자가 보고 싶어서요.”
대답이 너무 즉각적이었고,
쓸데없이 컸고,
밍구스러울 만큼 솔직했다.
ㅡ 아, 맞다. 이 친구, 약간의 장애가 있었지....
“뭐가 잘못됐는지는 알아?”
“창피하게 했어요.”
“창피한 게 문제가 아니야. 너를 마주치기만 해도
그 여자애들은 얼마나 무섭겠어.”
종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표정.
“앞으로 또 그럴 거야?”
“아니요.”
“그러면 돼? 안 돼?”
“안 돼요.”
“자꾸 맹꽁이 같은 행동 하다가
엄마 못 보고 감옥 가면 어쩌려고 그래.”
그때였다.
“안 돼요. 싫어요. 엄마 꼭 봐야 돼요.”
갑자기 눈빛이 달라졌다.
쓸데없이 크던 목소리가 가라앉고,
말이 또렷해졌다.
“그게 무서워?”
“네. 엄마 못 보는 게 무서워요.
엄마가 나 없으면 울어요.
종엽이가 우리 엄마. 지, 지켜줘야 해요.”
그 순간,
나는 다른 아이와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
종엽에게 엄마는 보호자도, 양육자도 아니었다.
신이었고, 우주였고, 세상 전부였다.
아기일 때는
작은 장애를 안고 가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남자아이가 크면,
그 장애도 함께 단단해진다.
엄마 혼자 감당하기에는
그 짐이 크고, 무거울 것이다.
그걸 종엽은 알고 있었다.
말은 서툴렀지만 본능으로 알고 있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장애가 있는 아이를 혼자 키웠다면.
이런 성적 호기심을 통제하지 못한 아이를
나는 더 들들 볶고 거칠게 잡아대지 않았을까.
존재 자체를 부끄러워하지는 않았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엄마의 울음이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기로.
나는 사비로 산 다이어리를 하나
아이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건 아무도 안 봐. 네가 너한테 쓰는 거야.”
종엽은 고개를 끄덕였다.
삐뚤빼뚤 써 내려간 글씨는
꼭 대여섯 살 짜리가 한글을 배우느라
뭘 보며 따라 쓴 것 같았다.
상담이 끝나고 배웅을 했다.
엄마와 함께 선 종엽은 덩치만 컸지,
여전히 아이였다.
엄마 손을 꼭 잡고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는 더 깊게 숙였다.
경찰서 정문을 나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쓸쓸함 가득한 그림 한 장을 보는 것 같았다.
그때 나는
고단할 엄마의 삶과
그 노고를 모를 리 없는 아이의 앞날에
기쁨이 충만하기를 온 마음 다해 바라고 있었다.
종엽이 잘 사냐.
요즘도 여학생들 따라다는 건 아니지?
얼마나 컸을까 그 아인.
문득 그 얼굴이,
그 분수스럽게 컸던 목소리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