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놀고 잘 쉬는 기술

by 최재식

웃지 않으면 숨도 끊어지리라 … 유머가 안겨주는 통찰력


젊었을 때보다 아는 것도 많아지고, 말하는 것도 더 논리적으로 되었는데, 왜 소통은 더 안 되는 걸까요? 여러분도 혹시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말만 꺼내면 ‘꼰대’라고 윽박지르는 것 같아 어지간하면 그냥 입을 닫고 살게 되더라고요. 나름대로 재미있게 다가가려고 해도 분위기는 금세 썰렁해지고, 또 진지하게 얘기하면 싸우자고 덤비는 걸로 오해해서 관계가 ‘살벌’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 가슴이 마치 서랍처럼 변해서 꾹꾹 닫혀버린 것 같아요.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저도 모르게 ‘유머’가 숨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유머라는 게 어찌 보면 좀 유치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역할은 정말 놀랍도록 경이로운 것 같습니다. 유머는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마음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유머가 자아내는 웃음이 아주 오래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분위기를 정말 재미있게 만들고 상대방에게 특별한 기쁨을 주어 대화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잖아요. 유머는 삶을 긍정적이고 즐겁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유머는 기본적으로 소통의 도구이지만, 결국엔 자기 자신을 기분 좋게 만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 말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같이 웃게 되거든요. 웃기를 좋아하고 마음이 밝은 사람은 신체적으로도 젊고 건강하다는 말, 정말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 주변에는 어떤 유머러스한 사람이 있나요?


항상 새로운 유머들을 떠올리려고 노력하고, 그것들을 말로 표현하는 창의적인 언어생활이 정말 우리를 젊게 만든다고 저는 믿어요. 유머는 일종의 ‘정신적인 친절 운동’이랄까요? 사람들의 마음에 즐거움과 따스함을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유머입니다. 유머 속에는 항상 선의와 관대함이 담겨 있죠. 심지어 유머는 사람에 대한 서운함이나 미움을 풀어주는 해독제 역할까지 한다니, 정말 놀랍지 않나요?


봄날 같은 다사로운 마음씨와 여유로운 마음으로 선의를 갖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유머라고 저는 생각해요. 혹시 당신도 유머를 통해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본 적 있으신가요? 부정적인 사람은 절대로 유머로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없다고 봅니다.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은 밝은 유머 대신 의도적으로 상대를 비꼬는 말을 하기 때문이죠.


유머는 가끔 예상치 못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안겨주기도 해요. 누가 그랬던가요, 인생은 ‘눈물의 골짜기’라고. 저는 그 ‘눈물의 골짜기’에서 벗어나려는 우리 인간의 지혜가 바로 유머 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이 웃는 사람이 오래 산다는 말도 있잖아요. 웃음은 정말 만병통치약입니다! 웃음은 그저 긍정적인 효과만 있을 뿐, 어떤 해로운 부작용도 없다고 저는 확신해요. 그러니 우리는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유머를 좀 더 진지하게 연습해 보는 건 어떠세요?


유머는 웃게 하고, 숨 쉬게 하고, 피가 돌게 하며, 그렇게 우리 몸의 모든 부분을 순환시켜 주는 힘이 있어요. 저는 가끔 이런 생각도 합니다. 우리가 나이를 먹어서 웃지 않는 게 아니라, 어쩌면 웃지 않아서 오히려 더 빨리 나이를 먹는 게 아닐까 하고요. 사람들은 비록 나이 들어가지만, 언제나 가슴속에는 작은 불씨를 지니고 다닌다고 하잖아요. 아무리 재가 겉을 에워싸고 있을지라도, 그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겁니다. 유머를 통해서 다시 한번 그 불씨를 활활 지펴보는 건 어떠세요? 안 그러면… 웃지 않으면 숨도 끊어질지 모르니 말이죠!





황혼에 필요한 건 ‘기적’이 아니라 ‘감탄’이지요!


어렸을 때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신비와 경이감에 흠뻑 빠져들었던 적이 참 많았어요. 여러분도 그런 기억 있으신가요?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저는 어느새 평범한 일상의 늪에 빠져들었고,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없어지더라고요. “에이, 이제 세상일 다 알 만큼 알지 뭐!”하고 생각하며, 경이감 같은 건 잊어버린 지 오래되었습니다. 마치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삶에서 스스로 내쫓아 버린 것 같았죠.


우리는 왜 하루하루를 아름답고 새로운 시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요? 어렸을 때는 정말 놀랍고 신기한 것도 많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감성의 눈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 말이죠. 세계적인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선정했다는 헬렌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은 정말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당신도 혹시 읽어보셨나요? 제가 그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 깊이 새겨둔 구절들을 들려드릴게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저는 단지 감촉을 통해서도 나를 흥미롭게 해주는 수많은 것들을 발견합니다. 잎사귀 하나에서도 정교한 대칭의 미를 느낍니다. 손으로 은빛 자작나무의 부드러운 표피를 사랑스러운 듯 어루만지기도 하고, 소나무의 거칠고 울퉁불퉁한 나무껍질을 쓰다듬기도 합니다. 봄이 되면 긴 겨울잠을 깨고 나오는 자연의 첫 번째 몸짓인 새싹과 새순을 찾아보려는 희망으로 저는 나무줄기들을 더듬어봅니다. ……… 제게 있어서 계절이라는 꽃수레는 너무나 떨리는 끝이 없는 드라마이며, 그 활기찬 흐름은 저의 손가락 끝을 스치며 지나갑니다. 때로는 이런 모든 것들을 너무나도 보고 싶은 열망에 제 가슴은 터질 것만 같습니다. 단지 감촉을 통해서만도 이처럼 많은 기쁨을 얻을 수 있는데, 만약에 볼 수만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어렸을 때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어버렸던 헬렌 켈러가 세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촉각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단지 감촉만으로도 세상에는 이렇게나 놀랍고 감동을 주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던 거예요. 경이심을 다시 살리려면 화가 폴 고갱이 말했다는 “나는 보기 위해서 눈을 감는다”라는 말처럼, 마음의 눈을 활짝 떠야 할 것 같아요.


신비로 가득한 황혼의 삶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상상하고, 또 그것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 저는 황혼에 정말 필요한 것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바로 ‘감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탄해 보는 거죠. 경외심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진심으로 감탄해 보는 거예요. 낯설고 색다른 무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숨겨진 경이로움을 찾아 떠나는 유랑을 한번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그런 소중한 순간들을 황혼의 일기장에 하나하나 추가해 보는 거죠.


사실 우리가 그냥 무심코 지나쳤고, 너무 당연하게만 여겼던 것들이 모두 알고 보면 위대한 불가사의가 될 수 있잖아요? 경이감이야말로 모든 지식과 철학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이 경이감을 우리가 다시금 지니게 된다면, 나이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푸념할 시간이 없을 거라고 저는 확신해요. ‘감탄’이라는 건 말이죠, 열 살짜리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여든 살 노인에게도 언제나 아주 매혹적인 감정일 테니까요.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 내 안의 아이를 깨우다


저는 어렸을 때 조그만 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이리저리 몸을 비틀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어요. 여러분도 그러셨겠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호기심이나 놀라움 같은 감정에는 좀 인색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아이들에게는 그렇게나 자연스러운 유희성, 호기심, 경이감, 탐구심, 낙천성 같은 특성들이 왜 나이가 들면 시들해지는 걸까요? 혹시 아이들의 본능적인 욕구나 행동들이 유치하게 인식되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이 세상 물정은 이제 다 알지, 뭐!” 하는 생각에 신기하고 흥미로울 게 별로 없다고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솔직히 이유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겠어요? 그냥 어른이 되면 세상사에 좀 무덤덤해지는 건 맞는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그냥 무덤덤하고 재미가 없는 삶은 정말 따분하기 그지없잖아요. 저는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어 잘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그런 특성들을 최대한 되살리는 게 노년을 재미있고 흥미롭게 살아가는 진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재미있게 살고 싶다면, 우리 가슴속에 잠자고 있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다시 깨워야 할 겁니다.


론다 비먼이 쓴 『젊음의 유전자, 네오테니』라는 책에 실린 어떤 작자 미상의 재미있는 글이 저에게 정말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요, 당신에게도 분명히 그럴 겁니다.


∙ 민들레 꽃밭을 보면 제 눈에는 그저 마당을 온통 뒤덮으려는 잡초더미만 보입니다. 그런데 제 아이는 꽃을 꺾어 엄마에게 선물하고 소원을 담아 솜털 같은 하얀 홀씨를 힘껏 날려 보냅니다.

∙ 술에 취한 노인이 저에게 미소를 보내면 저는 ‘어쩌면 내 돈을 노릴지도 모르는 냄새나고 지저분한 사람’이라고 먼저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아이는 자신에게 미소 짓는 누군가를 보면 그냥 환한 미소로 답합니다.

∙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저는 음치에 박자감마저 없어 수줍게 앉아 조용히 음악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지만 제 아이는 리듬을 타면서 음악에 맞춰 온몸을 움직이고, 흥얼흥얼 가사를 따라 부릅니다. 심지어 가사를 모를 때는 제멋대로 지어서 부르기도 합니다.

∙ 얼굴을 세게 때리는 바람을 만나면 저는 행여 머리가 헝클어지거나 걸을 때 방해가 될까 피할 궁리부터 합니다. 그런데 제 아이는 두 눈을 감고 두 팔을 활짝 벌려 바람을 타고 날다가, 이내 웃으며 사뿐히 땅으로 내려옵니다.

∙ 진흙 웅덩이를 보면 저는 조심조심 바깥쪽으로 돌아갑니다. 신발과 옷, 그리고 거실 카펫에 진흙이 잔뜩 묻을 게 눈앞에 아른거리니까요. 하지만 제 아이는 아예 웅덩이 안에 철퍼덕 앉아버립니다. 거기서 댐을 건설하고 강을 만들고, 심지어 벌레들과 함께 놉니다.


요즘 현대인의 삶은 은퇴기가 길어졌잖아요? 그래서 저는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라는 개념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봐요. 요한 하위징아는 자신의 책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가 단순히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진다”라고 강조했죠. 이 말, 정말 공감되지 않나요?


나이가 들면 우리는 오히려 ‘시간’을 발견하게 돼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시간은 넘쳐나죠. 하루 24시간 중에 한 13시간 정도를 먹고, 자고, 운동하고, 신문 보거나 TV 보거나, 친구 만나는 시간으로 쓴다고 쳐도, 하루에 11시간이 남는대요! 그걸 은퇴 후 25년으로 계산하면, 무려 10만 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이 생긴다는 거죠. 이 엄청난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 당신은 한번 생각해 보셨나요?


저는 ‘햇빛, 공기, 물’처럼 우리 생명과 건강에 꼭 필요한 게 있다면, 여기에 ‘놀이’도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아직도 철들지 않는 어린아이가 살아있다는 걸 저는 믿어요. 그 어린아이를 다시 깨우기만 한다면, 우리는 정말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겁니다. ‘노년’이라는 말 대신, 언제나 그저 ‘나’만이 존재한다고 믿고 싶네요.





잘 쉬려면 움직여라! … 내 몸이 알려준 꿀잠의 비결


나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쾌적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휴식 아닐까요? 한자를 들여다보면 쉴 ‘휴(休)’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고, 숨 쉴 ‘식(息)’은 마음을 자연스럽게 내려놓는 모양새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보면 보통 휴식이라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하게 가만히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곤히 잠을 자거나, 머리를 전혀 쓰지 않고 그저 멍하니 있는 것을 흔히 ‘휴식’이라고들 하죠.


그런데 사람마다 쉬는 방법은 참 다양한 것 같아요. 바쁜 일을 내려놓고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면서 여유를 즐기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기도 하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혼자 가만히 있는 방법을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볍게 산책하거나, 멀리 여행을 떠나서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도 좋고, 아니면 하루 종일 푹 잠을 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도 있겠네요. 고요한 공간에서 좌선을 한 채 눈을 감고 호흡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다독이는 명상도 분명 훌륭한 휴식이겠죠.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쉬는 것을 가장 선호하시나요?


그런데 저는 좀 특별하고, 어쩌면 아주 낮은 차원의 ‘잘 쉬는 기술’을 한 가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잘 쉴 수밖에 없도록 제 몸과 마음을 어느 정도는 ‘소진’해 버리는 거예요. 열심히 생각하고, 정말 지칠 정도로 몸을 움직이고 나면, 우리 몸은 생체리듬에 따라 자연스럽게 깊은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고 매일 한두 시간 정도 운동을 해보세요. 피곤하고 나른해서 잠도 정말 푹 잘 올 겁니다. 모두가 다 아는 단순한 사실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참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제 아내가 저한테 하는 말이 있어요. “당신은 어떻게 머리가 방바닥에 닿기도 전에 잠이 들어? 진짜 신기해!” 좀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밤잠은 물론 낮잠도 정말 잘 자는 편입니다. 제가 청소년 시절에 불면증과 가위눌림에 시달렸다고 하면, 아내는 언제나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퉁명스럽게 받아쳐요. 사실 저는 이 단순한 기술을 실천하기 전까지는 신체적으로 꽤 힘든 시절을 보냈습니다. 40대 초반부터 머리 쓰는 공부와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개선되더라고요. 지금도 방바닥이든 어디든, 그저 가만히 등을 대기만 하면 편안해지고 조금 있으면 금방 잠이 듭니다. 물론 요즘도 저는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계속하고 있고,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만 있고 휴식이 없거나, 반대로 일은 없고 휴식만 있는 세상에서는 살 수 없잖아요? 결국 일과 휴식을 병행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면서 적절한 시간에 휴식을 적당히 배치하여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바로 제대로 쉬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짧게라도 잠깐 눈을 붙이는 것만큼 머리를 맑게 해주는 것도 없고요.


쉰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잘 쉬어야 컨디션을 회복해서 다음 일을 잘 해낼 수 있으니까요. 지친 몸으로 쉬지 않고 계속 일하는 것은 마치 무딘 낫으로 힘들게 풀을 베는 것과 같다고 저는 비유하곤 합니다. 가끔 논두렁에 앉아 쉬면서 낫을 잘 갈아줘야 능률이 오르는 것과 같죠. 그러나 너무 오래 쉬기만 한다면 오히려 기력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뭐든 적당히 쉬는 것이 중요하겠죠?


물이 흐르면 자연히 도랑이 생기듯이,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잘 쉴 수 있습니다. 적당히 몸을 움직이고, 신선한 공기를 한껏 마시고, 마음가짐을 느긋하게 가져보고, 적당하게 음식을 먹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저는 이것 이상으로 잘 쉴 수 있는 기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별의별 약제를 다 먹는다 해도, 몸과 머리를 사용하는 일이 없다면 결코 달콤한 휴식을 맛볼 수 없을 겁니다. 부단히 움직여야 한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겠죠!





‘힙업’ 잘 된 노신사 되는 법!


얼마 전이었을까요, 저는 골프장 탈의실에서 참 묘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문득 ‘인생무상’이라는 말이 떠오르더군요. 왜냐고요? 젊은 시절에는 정말이지 으스대고 떵떵거리던 전직 고위 관리분들의 앙상한 뒤태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근육은 물론 지방 한 줌 없이 거죽만 축 처진 엉덩이를 보면 말이죠, 정말이지 애처롭기까지 해요. 구부정한 자세로 느릿느릿 걸으시는 모습을 보니, 예전의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더라고요. 참 서글픈 일이죠!


사실 중년 이후부터는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이 정말 눈에 띄게 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근육이 줄어들면 보행 조직과 신경 조직도 감소하고, 심지어 뇌 수축에도 영향을 미쳐서 치매 위험까지 늘어난다고 합니다. 깜짝 놀라셨죠? 중장년층의 근감소증이 치매뿐만 아니라 뇌졸중, 당뇨, 고지혈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하니, 이건 정말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건강하고 활기찬 은퇴기를 보내려면 뭘 해야 할까요? 바로 근육을 지키는 겁니다! 전문가들 말로는 30세 전후에 비해 65세에는 근육이 30% 정도, 80세에는 40% 이상 줄어든다고 해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근육이 줄어든 자리에 지방이 채워지다 보니 체중 변화가 없어서 근육이 줄어드는 걸 알아채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나중에 지방마저 빠지고 나면 정말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된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죠? 이런 근 감소를 막거나 늦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 맞아요! 꾸준히 근력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근육의 구성 요소인 단백질도 충분히 섭취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나이 들어서 운동을 해본 분들은 아마 공감하실 거예요. 젊었을 때처럼 근육이 팍팍 잘 붙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엔 ‘뭐 얼마나 붙겠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근육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 그저 줄어드는 걸 막거나 늦추는 걸 목표로 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말이죠, 꾸준히 하다 보니 근력이 늘어나는 걸 몸소 체험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은퇴 후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 왔는데, 솔직히 눈에 띄는 몸의 변화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거예요. 제가 젊은 시절에도 1개를 못 했던 턱걸이를, 70세 언저리에 접어들면서 5개 정도를 거뜬히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턱걸이 첫 1회를 성공하는 데 3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지만, ‘안 되는 건 아니었구나!’ 하고 깨달았죠. 이 맛에 운동하는 거 아니겠어요?


근력 운동과 함께 중요한 게 바로 유산소 운동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걷고 또 걸어라!’ 걷기 운동은 심폐 기능에도 좋고, 혈액 순환에도 좋고, 비만 예방에다가 근력 강화까지 되니, 이거야말로 만능 운동이 아니겠어요? 저는 저만의 방법으로 재미있게 걷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주로 ‘어떤 주제에 대해 생각하기’를 하면서 걷는데, 이렇게 걷다가 보면 힘든 것도 잊게 되더라고요.


매일 시속 6km의 속보와 9km의 달리기를 섞어서 30분 정도 꾸준히 합니다. 40대 초반에 시작한 달리기는 정말 제 건강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죠. 5km를 기본으로 가끔 10km나 하프 마라톤까지 즐겼는데, 60대 중반 이후부터는 걷기 위주로 바꿨어요. 마음만으로 할 수 없는 게 ‘몸’이라는 것을 비로소 인식하는 나이가 되면서부터죠. 여러분도 자신만의 걷기 루틴, 가지고 있으신가요?


운동은 우리 몸에 익어서 습관처럼 저절로 반응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행동 심리학자들 말로는 어떤 것을 3주 이상 반복하면 몸에 익고, 3개월 이상 반복하면 안정적인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3주, 3개월 버티기’가 정말 중요한 거죠! 여러분, 만약 우리가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축 늘어진 엉덩이에, 고지혈증, 뇌졸중, 당뇨 같은 녀석들과 친구처럼 지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생각만 해도 싫지 않으세요?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히포크라테스는 건강에 대해 이런 멋진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에게 믿음직한 두 사람의 주치의가 있으니 한 사람은 왼쪽 다리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오른쪽 다리다.” 얼마나 통찰력 있는 말입니까!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발을 멈추면 몸이 멈추고, 몸이 멈추면 마음과 정신마저 다 멈추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세상마저 등지게 되는 거죠. 우리는 끊임없이 건강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항해서, 자신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함께 꾸준히 걸어가자고요!





나이 들어 배우는 공부, 그게 진짜 '내 것'이 된다!


이상하죠? 은퇴 후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제 주변에도 인문학적 소양을 쌓겠다고 어려운 철학책을 돋보기까지 끼고 밤새워 읽는 분들이 꽤 있어요. 심지어 명문대 나오고 박사 학위까지 있는 분이 어학이나 문학 같은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겠다고 방송대까지 다니시는 걸 보면, 혹시 당신도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으셨나요? “맛있는 거 먹고 재밌는 거 하면서 편하게 살면 되지, 뭐 하러 저 고생을 사서 할까?” 하고요.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제가 아는 분 중에는 은퇴 후에 아침마다 공공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분도 계세요. 그분 말씀이, 무료함을 달랠 수 있어서 좋고, 또 ‘뭔가 하는 게 있다’라는 걸 보여줄 수 있어서 좋대요. 하기야 배낭에 막걸리 한 병 넣고 이 산 저 산 오르내리거나, 자외선 차단제 떡칠하고 골프장이나 순회하는 것보다는 낫겠죠. 하지만 단순히 이런 이유만으로 하는 공부라면 좀 허전하잖아요?


그렇다면 도대체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의 진짜 이유, 당신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바로 ‘재미’예요. 공부하면서 과거의 무지했던 나로부터 도망치는 재미, 혹시 느껴 보지 않으셨나요? 생각지도 못했던 지식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 상식을 뒤집는 엄청난 쾌거를 맛볼 수도 있잖아요.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뀐 것처럼,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상식이 한순간에 뒤바뀔 가능성은 언제든 있거든요. 은퇴 후 긴 여생의 시간에는 그 시간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 분명히 있어요. 지적인 호기심을 절대 꺼뜨리지 않고,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고 저를 맡길 때, 비로소 이 여생의 시간이 빛나는 거죠.


둘째는 ‘성장’입니다. 중년 이후의 공부는 우리 몸의 척추기립근처럼 우리의 정신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지적 호기심을 채워줘요. 그래서 오히려 젊은 시절보다 더 나은 ‘나’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허약해진 기력을 보충하듯이, 정신적인 갈증을 채워주고 스스로 새롭게 만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게다가 나이 들어 공부하면 안목이 더 밝아지고 섬세해져서, 세상을 훨씬 선명하게 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까지 발견하게 되고요.


인간은 지적인 깨달음을 통해 성장하는 존재잖아요. 끊임없이 배우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고, 자신을 풍요롭게 성장시키는 것. 이게 바로 진짜 멋진 인생을 사는 방법 아닐까요? 당신도 저와 같은 마음 아닌가요?

물론 간혹 공부가 쓸데없이 까다로운 사람을 만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해요. 자신의 지식을 남을 깎아내리거나 비판하는 데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요. 이런 거친 공부는 오히려 편견만 강화할 뿐이니, 정말 조심해야겠죠. 공부는 생각을 키워줘야 하는데, 오히려 생각을 가로막는 장해가 되기도 해요. 이론이나 지식을 머리에 이고 다니기보다는, 그걸 발판 삼아 더 높이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강한 신념이나 이념, 가치관, 그리고 지적인 체계는 유연한 생각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노년의 공부가 기껏 까다로운 사람 되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공부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무한한 개방성 속에 놓아두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떠세요?


100세가 넘은 김형석 명예 교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저는 사람의 정신력은 늙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기억력이 떨어지면 대신 사고력과 창조력이 늘어가는 것 같았어요. 뇌의 기능은 좀처럼 늙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퇴직 후에도 열심히 공부했어요.”


이 말씀이 저에게는 큰 울림을 주었어요. 늘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젊게 살 수 있습니다. 공부를 통해 옥수수 알이 영글듯, 우리의 생각도 그렇게 익어가는 거겠죠. 언젠가 우리의 ‘옥수수 알’은 저 은하 먼 곳으로 흩어져 별이 되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사는 동안만큼은 인생이 정말 알차다고 느껴져요. 젊어서는 그저 ‘밥’ 먹고 살려고, ‘의자’ 하나 차지하려고 했던 공부가 많았잖아요. 하지만 나이가 드니 이제는 삶의 본질과 다른 세상이 정말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확신해요. ‘나이 들어서 배우는 공부, 이게 바로 진짜 진정한 공부다!’라고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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