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오래된 것들은 크게 두 가지더라고요. 하나는 시간이 지나 그저 낡고 헤진 것들, 또 다른 하나는 오래될수록 오히려 새롭고 귀한 가치가 더해지는 것들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나이가 들면서 힘없이 쇠락하는 분들도 있지만, 잘 익어가는 포도주처럼 깊고 멋진 맛을 내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저는 나이와 함께 속절없이 늙어만 가기보다, 이왕이면 더 가치 있고 더 새롭게 피어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Oldies-But-Goodies, New-Old-Fashioned’… 오래될수록 가치가 있고, 오래되었기에 오히려 새로운 것들.
이거 정말 멋지지 않나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화려했던 빛은 좀 바래더라도, 더 깊고 성숙한 분위기로 다시 살아나는 빈티지의 매력! 저는 그게 바로 제대로 잘 익어가는 꽃중년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저만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면, 저는 나이 드는 게 전혀 두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분별력이 생겨서 더 사려 깊고 신중해지고, 젊었을 때는 미처 듣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제 귀에, 제 눈에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한다면… 와, 정말 행복한 일 아닐까요?
우리는 인생의 각각의 시기마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살아가죠. 하지만 그저 수동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기만 해서는 인생이 제대로 숙성되지 않더라고요. 가치 있게 다시 새로워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경험하고 생각하고 직접 행동하지 않으면 절대로 깊이 있는 맛을 낼 수 없어요. 그러니 나이가 들면서 그저 늙어갈 것인지, 아니면 풍요롭게 익어갈 것인지는 결국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달린 거겠죠. 여러분은 어느 쪽을 택하시겠어요?
요새 보면, 맙소사! 60세도 채 안 됐는데 벌써 스스로 노인으로 생각하고 삶에서 한발 물러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런데 말이죠, 60대는 물론 70대까지도 건강 때문에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80세가 넘는다고 해서 신체적, 지적 능력이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저는 나이 듦을 단순히 ‘쓸모없음’이나 ‘나약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봐요. 인생에는 원래 ‘정년’이란 게 없거든요. 굳이 정년을 따지자면, 탐구하고 창조하려는 노력을 멈추는 바로 그때가 아닐까요?
우리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 일에 온 마음을 다해 몰두한다면, 그게 바로 제대로 익어가는 삶을 사는 거 아닐까요? 그런데 만약 스스로 벌써 늙었다고 생각하고, 뭘 하든 몸을 사리게 된다면 정말 늙고 쇠약해질 수밖에 없어요. 가만히 있어도 우리 몸은 언젠가 늙고 쇠약해질 텐데, 왜 굳이 우리가 나서서 빨리 노인이 되기를 바라는 걸까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그런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노인은 약하다’는 그 고정 관념이 사실은 진짜 늙기도 전에 우리를 노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거예요. “나는 이제 노인이니까” 하는 생각은 마치 스스로 돌절구에 앞니를 찧는 것처럼 바보 같은 짓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열 살 때는 스무 살의 마음을 모르고, 서른 살에는 쉰 살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그게 당연해요,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의 생각도 함께 커가는 거니까요.
인생이 짧은 것 같다가도 또 무척 길게 느껴질 때가 있죠. 특히 인생 후반기는 그냥 흘려보내기엔 시간이 너무나도 귀하고 또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한 걸음 한 걸음 여유롭게 사유의 폭을 넓혀 나갔으면 정말 좋겠어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어떤 사람들은 싱싱한 피부와 푸릇푸릇한 생각의 젊음이 최고라고 말해요. 하지만 뭐, 나이가 많아서 딱히 좋을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년이라고 위축될 이유도 전혀 없어요. 굳이 젊은이들을 따라 할 필요도 없고, 일부러 ‘호호백발’ 행세를 할 필요도 없죠. 그냥 지나온 세월만큼 나이 들면서 잘 익어가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노쇠와 고독, 소외감 같은 건… 그냥 감내하면 되는 거죠, 뭐. 여러분은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가요?
“야, 요즘 젊은것들은 말이지,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 생각도 없고 끈기도 없어. 개인주의가 심하고 예의도 없고…, 그런데 할 말은 다 해, 꼭 외계에서 뚝 떨어진 놈들 같아.”
어떠세요, 여러분? 제가 이렇게 쓱~ 한마디 던져보니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사실 저도 모르게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이렇게 백 번, 천 번을 이야기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아는데도 말이죠. 상대방이 “영감님, 백날 떠들어보세요. 저는 안 들을 건데요?” 하는 식의 태도를 보이면 말이죠, 가끔 속에서 확 불이 솟구칠 때도 있다니까요! 그렇게 입에서 불쑥불쑥 ‘꼰대 향’ 나는 말들이 튀어나오면, 저 자신이 너무 싫어져요. ‘난 절대 꼰대가 되지 않을 거야!’하고 다짐했건만, 점점 그렇게 변해가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이럴 때 정말 답답해요. 그저 꾹 참고 참견하지 말아야 할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예전에 우리 부모님 세대는 말이죠, 자식들한테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그만해도 될 텐데 계속 잔소리를 퍼부었잖아요. 학교 선생님들도 똑같이 잔소리가 많았고요. 우리가 어렸을 땐 그런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을 속으로 ‘아이고, 꼰대들…’ 하고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꼰대는, 글쎄요, 좀 결이 다른 것 같지 않으세요? 직장이나 사회생활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종류의 꼰대를 만나게 돼요. 어떤 분은 말 그대로 ‘원액 100% 꼰대’이시고, 또 어떤 분은 ‘아니야, 나는 꼰대 아니야!’ 하면서 태연하게 위장하는 스타일도 있죠.
그분들은 어찌나 상대방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믿음이 강한지, “이거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면서 늘 한마디씩 덧붙이곤 합니다. 그리고 또 이상한 건, 그들은 자신이 하는 모든 행위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요. 상대방의 “네? 네?” 하는 반항 섞인 물음표가 “네! 네!” 하는 존경의 느낌표로 바뀔 때까지, 기어이 자신들이 살아온 ‘밑천’을 들이대고 싶어 하죠. 아, 이거 어쩌면 좋죠?
사실 꼰대라는 건 말이죠, 단순히 나이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보니 ‘공감 능력’의 문제와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물론 나이 드신 꼰대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요즘에는 가끔 ‘젊은 꼰대’들도 눈에 띄더라고요. 이 젊은 꼰대들은 자기만의 특유의 허세와 과시가 있어요. 늙은 꼰대들과 마찬가지로 말이 안 통하고, 유머 코드도 썰렁한 건 똑같아요. 젊은 나이에 찾아온 불치병 같아서 볼 때마다 참 안타깝죠. 그래도 역시 ‘꼰대’ 하면 아무래도 노년층의 전유물처럼 통하는 게 현실이긴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우리, 이제 “요즘 세상은 말이야…”라는 말로 서두를 꺼내지 않기로 해요. 만약 그렇게 시작한다면, 이건 과거와 비교해서 지금 세상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걸 지적하는 꼴이 되거든요. 같은 맥락에서, “요즘 젊은이들은…”이라는 말도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산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명산이 아니듯, 나이가 많다고 해서 모두가 어른인 건 아니잖아요? 세월이 일깨워 준 연륜의 지혜로 판단이 올바른 사람, 그런 분이 진짜 어른이라고 저는 믿어요. 막연하게 ‘연륜’만 내세우고, ‘나이테가 들려주는 소리’만 하고 있다면, 미안하지만 그건 그냥 꼰대예요. 꼰대는 결국 과거에 갇혀 사는 사람이니까요.
대체로 훈수, 오지랖, 잘난 척, 독불장군, 고리타분함, 권위적… 이런 모습을 보이면 꼰대 소리를 듣는 것 같아요. 심지어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춰 조언했는데도, 듣는 젊은이가 불편해하면 ‘꼰대’ 혐의가 씌워지기 일쑤입니다. 가는 곳마다 ‘꼰대들의 무덤’ 같은 상황이 벌어지니, 저도 모르게 ‘아, 이렇게 말하면 꼰대라고 할까?’ 하면서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게 됩니다. “당신이 꼰대라서 그래!” 하는 말이 때론 우리의 생각 자체를 가로막기도 하고요. 여러분은 이런 경험 없으신가요?
그렇다고 해서 매사에 “네 떡 네 먹고, 내 떡 내 먹고” 하면서 남 일에 아예 신경 끄고 살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정보가 있거나,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 바탕이 된 이야기라면, 설령 꼰대 소리를 듣더라도 말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물론, 이런 경우라면 ‘꼰대’라기보다는 훌륭한 ‘멘토’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지만요. 정말 그렇지 않나요?
흔히 말하는 ‘꼰대의 육하원칙’이라는 게 있잖아요. 제가 한번 읊어볼까요? “내가 누군지 알아(who)”, “네가 뭘 안다고(what)”, “어딜 감히(where)”, “왕년에 내가(when)”, “어떻게 나한테(how)”, “내가 그걸 왜(why)”… 우리가 왜 자꾸 이런 ‘꼰대 짓’을 하게 될까요? 아마 생각이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있기 때문일 겁니다. 살아오면서 생긴 나름의 강한 신념, 이념, 가치관, 그리고 지적인 체계가 우리의 생각을 하나의 좁은 틀에 가두어 버리는 거죠.
꼰대는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세상이 이 우주의 전부라고 믿으면서 자기 이야기만 해댑니다. 그러니 ‘꼰대’에서 탈출하려면, 우리가 만든 그 ‘나만의 세계’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합니다. 자신의 신념 체계를 좀 더 유연하게 만들고, 자신을 무한한 개방성 속에 놓아두는 용기가 필요해요. 이 시대의 모든 ‘풋내기 노년’ 여러분! 혹시 입에서 꼰대 같은 말이 불쑥 튀어나오려고 한다면… 차라리 ‘혀’를 깨물기로 해요! 아프겠지만 꼰대는 안 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지금이 제가 살아온 세월 중에 제일 여유롭습니다. 예전엔 노동, 돈벌이, 힘든 것들, 안 했으면 하는 것들… 이런 것들에 얽매여 살았는데, 이제는 그런 것들에서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돈 걱정도, 자식 걱정도 없고, 건강도 아직까진 괜찮은 편이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끔 사는 게 재미없다는 생각이 불쑥 들 때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제일 행복해야 할 시기에, 정작 어떻게 살아야 이 시기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는 거죠. 여러분은 어떠세요? 대체 어떻게 살아야 재미나게 사는 걸까요?
저는 이제, 인생이라는 커다란 파도에 제 몸을 그냥 맡겨보기로 했습니다. 파도타기가 인생살이와 참 비슷할 것 같네요. 우리는 파도를 직접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그저 좋은 파도가 오면 올라타는 수밖에요. 서핑할 때도 파도를 힘들게 헤치고 나가는 게 아니라, 그 파도에 몸을 싣고 자연스럽게 올라타는 거잖아요. 솟구치면 솟구치는 대로, 또 때론 가라앉으면 가라앉는 대로. 이렇게 인생을 살아간다면 재미없을 리가 없지 않겠어요?
그냥 ‘좋은 것이 좋은 거다’라는 생각으로 살고 싶어졌습니다. 아무런 조건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냥 좋은 것. 그게 아마 가장 순수하고 본연의 좋음이 아닐까 싶어요. 이제부터는 제 내면에서 올라오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소리에 맞춰서 제 삶의 박자와 리듬을 조율해 봐야겠죠. ‘라임, 플로우, 펀치 라인, 스웨그’… 요즘 젊은 친구들이 즐겨 하는 힙합 음악을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저에게도 뭔가 강렬한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 같더라고요. 이거 저만 그런가요?
1. 라임(Rhyme): 인생 박자를 맞춰봐!
라임은 랩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래요. 운율을 맞춰서 랩 가사를 만드는 기술이라고 하더라고요. 글자 수를 일정하게 반복하거나,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면 거기서 운율이라는 게 생겨나잖아요. 저는요, 이제 막 시작된 인생의 은퇴기도 이렇게 운율을 살려서 박자와 장단을 맞춰가며 살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도, 그렇다고 너무 게으른 것도 때와 기회를 놓치게 만들지 않나요? 조급한 마음과 게으른 마음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비로소 자기 박자에 딱 맞는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2. 플로우(Flow): 나만의 리듬으로 춤춰봐!
플로우는 가사를 리듬감 있게 만들어 주는 기술이라고 하던데요. 힙합 가수들 보면 보통 자기만의 목소리 톤이나 리듬 타는 랩 스타일이 다 있잖아요? 저는 은퇴기를 사는 데도 우리 각자만의 ‘리듬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리듬이 있어야 삶을 재미있게 타고 넘을 수 있겠죠.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단조로운 인생에서 무슨 재미를 느낄 수 있겠어요? 단조롭게 꽉 막힌 삶은 재미가 없어도 너무 없지 않겠어요? 그러니 우리, 흔들리지 말고 각자 자신의 인생 리듬에 맞춰서 이 소중한 은퇴기를 즐겁게 살아가자고요!
3. 펀치 라인(Punch Line): 인생 한 방, 통쾌하게 날려봐!
펀치 라인은 말 그대로 ‘한 대 세게 때려주는’ 부분이라고 합니다. 랩이 사람들에게 각인되려면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강한 충격을 받는 부분이 꼭 있어야 한대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특히 은퇴기의 인생에도 가끔은 이렇게 신선하고 강력한 ‘한 방’의 충격이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저 밋밋하고 뜨뜻미지근하게 살면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여러분, 혹시 누가 우리를 막아서더라도 한 번쯤은 속 시원하게 소리치고 힘껏 뛰어보세요! 지금, 이 은퇴기가 바로 자신을 위한, 가장 좋은 때라는 걸 잊지 마시고요!
4. 스웨그(Swag): ‘간지’ 나는 노년, 허세 좀 부려봐!
‘스웨그’ 라는 말, 들어보셨죠? 허세, 간지, 자유로움… 이런 것을 뜻하는 힙합 용어라고 하던데요. 자신을 한껏 높이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났다는 그런 기분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저는요, 은퇴기의 삶에는 좀 건들건들하는 허세가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맨날 바른생활만 하는 노년은 숨 막히고 재미가 없잖아요? 스웨그는 자기를 과시하려는 거지, 남을 무시하려는 건 아니거든요. 비록 다소 철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유쾌한 면이 훨씬 더 많답니다. 어디선가 “아, 저 어르신 좀 멋진데!” 이런 소리를 들으면, 어깨가 으쓱하고 기분 정말 좋지 않겠어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제가 이렇게 라임, 플로우, 펀치 라인, 스웨그까지 힙합 용어를 빌려 가며 우리의 은퇴기를 이야기해 보았는데 말이죠. 결국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예요. 이제 우리는 과거의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리듬과 개성을 찾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때를 맞았다는 겁니다. 더 이상 남의 시선이나 세상의 정답에 얽매이지 말고, 우리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신명 나는 비트 위에 인생을 얹어보는 거예요.
“만약 저에게 단 24시간만 건강을 회복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스위트롤 빵과 차로 아침 식사를 하고, 수영하러 가고,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족, 친구들과 서로 소중한 사람임을 확인하고, 산책하러 나가서 자연에 파묻히고, 저녁에는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늦게까지 춤추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 나오는 루게릭병 환자, 모리 교수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죽음을 앞둔 그가 마지막으로 간절히 바라던 하루는, 대단하고 거창한 하루가 아니었어요. 그저 행복이 깃든 평범하고 일상적인, 바로 그런 하루였던 거죠. 이처럼,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작은 즐거움들이 곧 행복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결국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그 하루 중 기분 좋은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가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요? 은퇴 후의 행복도 결국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얼마나 보람 있게, 자기 주도적으로 꾸려나가느냐에 달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은퇴하면 그동안 우리를 얽매었던 ‘의무적인 시간표’로부터 드디어 해방됩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 거죠. 지금까지 강제적으로 따랐던 시간표 대신, 이제는 내가 직접 만들고 즐길 수 있는 ‘나만의 행복한 시간표’로 대체해야 하는 겁니다. 정말 근사하지 않나요?
솔직히 은퇴 후에 가장 먼저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가 바로 ‘하루의 일과를 어떻게 보낼까?’ 하는 점입니다. 이것저것 다 해보겠다며 욕심을 내다보면 그냥 바쁘기만 하고,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할 때가 많아요. 반대로 할 일 없이 빈둥거리다 보면 밤에 잠도 잘 안 오고, 일찍 깨어나면 그렇지 않아도 긴 하루가 더 길게 느껴지죠. 그러다 보니 은퇴자들의 하루 일상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아요. ‘바쁘거나 아주 바쁘거나’, 아니면 ‘안 바쁘거나 아주 안 바쁘거나’. 이렇게 지내서는 일상의 진정한 자유나 즐거움을 제대로 얻을 수가 없겠죠.
일상을 얼마나 잘 꾸려나가는지에 따라 은퇴 생활 적응 여부가 확연히 달라진다고 합니다. 물론 바람직한 은퇴자의 일상은 개인적인 취향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적절히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이러한 일상의 요소들을 바탕으로 나만의 생활 방식을 만들어가며 노후 생활을 즐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요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 건강 관리: 건강한 삶이야말로 행복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매일 일정한 운동을 하고,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유지하며, 건강검진과 예방 접종도 때맞춰 꼭 받아야 해요. 아프면 다 소용없어요!
∙ 자기 계발: 은퇴 후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지식을 쌓아나가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독서, 문화예술 감상, 온라인 강의 수강 등 다양한 자기 계발 방법을 활용하여 끊임없이 성장해야 합니다. 뇌는 젊어져야 제맛이죠!
∙ 취미 활동: 삶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취미 활동이 필수입니다. 여행, 등산, 골프, 수영,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삶의 활력을 찾아야겠죠.
∙ 사회활동: 소외감을 극복하고 사회와 연결되는 좋은 수단이 바로 사회활동입니다. 모임이나 동호회, 연구 단체 등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하여 새로운 인연을 만들면 노후 생활을 풍요롭게 즐길 수 있습니다. 혼자만 있지 마세요!
은퇴하기 전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가 아닙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피하려고 저항하기보다, 우리 모두 행복을 부르는 새로운 일상의 생활 습관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불행은 상황이 바뀌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해 우리가 잘못 대응했을 때 찾아온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월은 참 빠르게도 흘러요. 몇 날,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것, 당신도 느끼고 계시죠? 시간에 빗장을 걸어 잠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알아요. 젊은 날 피를 뜨겁게 달구던 그 흥분은 어디로 갔는지, 몸은 자꾸만 중력에 이끌려 무거워지는 기분이에요. 결국 삶의 더 큰 가능성에서 등을 돌리고, 그저 안락함과 타협하는 나약한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어요. 이대로 우주의 한낱 이슬처럼 사라지고 마는 걸까요? 당신이라면 이대로 괜찮다고 하실 건가요?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요. 다시 삶을 가다듬어야죠. 몸이 더 힘들어지고 정신이 더 몽롱해지기 전에, 지금 당장 삶을 다시 추스를 방법을 찾아야만 해요. 어떻게 하면 이런 나약함과 게으름을 쫓아낼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해야죠. 혹시 당신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나요?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아일랜드의 위대한 시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예이츠는 좀 달랐나 봐요. <비잔티움으로의 항해>라는 시에서 그는 젊은이들의 감각적인 삶에 의문을 제기하고, 오히려 노년의 삶을 사랑했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물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영적이고 지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상상의 시인을 등장시켜 노년의 초월적인 세계를 동경했대요. 그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노인은 그저 하찮은 존재,
영혼이 손뼉 치며 노래하지 않는다면
썩어 없어질 모든 누더기를 위해
소리 높여 노래 부르지 않는다면
노인은 막대기에 걸린 누더기일 뿐,
영혼의 장엄한 금자탑을 탐구하지 않는다면
노래를 배울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하여 나는 바다를 건너
거룩한 도시 비잔티움으로 왔다.
가슴에 와닿지 않으세요? 영혼이 노래하지 않는 노년은 그저 ‘막대기에 걸린 누더기’일 뿐이라니, 섬뜩하면서도 정말 깊은 울림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여기서 말하는 ‘노년 초월(老年超越)’에 주목했어요. 단순히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무시하자는 게 아니더군요. 노화에 대한 ‘도전과 적응’을 의미하는 거였어요. 노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뛰어넘어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물리적인 능력이 줄어들고, 건강 문제가 생기고, 인지기능이 저하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정신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더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면, 이 길을 택해야 하지 않을까요?
노년 초월은 개인의 자아실현과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과 태도가 만들어 내는 결과라고 봐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초월하냐고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답니다. 정신적인 면에서는 종교에 귀의해서 영적으로 충만함을 얻거나, 새로운 학문이나 기술에 푹 빠져 자아실현을 해볼 수 있죠. 정서적인 측면에서는 새로운 취미나 관심사를 찾아보거나,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줄 명상이 도움이 될 수 있고요. 사회적인 면에서는 자원봉사나 사회활동에 참여해서 자기가 가진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것도 정말 보람 있는 일이 될 거예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는 이런 멋진 말이 나와요. “5월의 싱그러운 환희 속에서 눈을 그리워하지 않듯, 크리스마스에 장미를 갈망하지 않는다.” 노년에 굳이 젊음을 갈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천천히 흘러가는 인생 후반기에는 그 시간만이 지닌 특별한 즐거움이 분명히 있잖아요. 우리 마음속 호기심을 꺼뜨리지 않고,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고 몰두할 때 비로소 여생의 시간은 환하게 빛날 거라고 믿어요.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