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by 베니

우연히 20세기 포르투갈에서 활동하던 문학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알게 되었다. 제목에 담긴 단어 하나가 단숨에 나의 이목을 끌었다. 내 본질에 불안이 포함되어 있다고 느끼고 있었고, 요즘은 그 감정이 유난히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몇 가지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최근 아시아로의 왕복 비행을 포함한 이동이다. 비행만 해도 13시간이고, 공항을 오가는 교통과 대기 시간 등도 만만치 않다. 이 모든 걸 일주일 안에 왕복했다는 걸 떠올리면, 내가 얼마나 육체적으로 지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육체적 피로는 곧 정신적 피로로 이어진다. 애초에 정신적으로도 피로한 상태였다면, 그 전이는 더 빠르고 깊게 일어난다.


물론 미국 중서부에서 인천을 거쳐 중국의 한 도시에 이르는 여정은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실제로 여행 중엔 그 낭만을 충분히 느꼈다. 목적이 연인을 만나러 가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하지만 그녀를 떠나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오기 직전부터, 피로는 극심해졌고, 그 끝에서 불안이 찾아왔다.


아마, 아니 거의 확실히, 이 불안의 근원은 일이다. 나는 과학 및 공학을 하는 사람이고, 지금은 대학원생이다. 예술이 그렇듯 과학 연구는 창의성, 유연함, 자기 주도성을 필요로 한다. 나는 배의 선장이자 조타수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수보다 학생일 때 이 책임감이 더 크다. 적어도 내 분야에서는 학생이 실질적인 플레이어고, 교수는 여러 학생을 조율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자기 배를 잘 운항하는 책임은 결국 학생에게 있다.


여린 살갗을 가진 어린 선장은 좋은 항해를 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성공적인 항해에는 실력, 배움의 속도와 재능, 창의성, 체력, 멘탈, 운, 자유로운 영혼, 좋은 동료와 감독자 같은 다양한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의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끝이 아니다. 그 순간 또 다른 목적지가 생기고, 그 방향을 정하는 것도 선장의 몫이다. 나는 지금 좋은 항해 길드에 속해 있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관에서, 세계적인 감독자와 함께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동료 선장들은 처음부터 많은 요소를 갖춘 사람들처럼 보인다. 내 항해도 나쁘지 않다. 세계 기준으로 보면 평균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자극받는 이유는, 아마 그들이 너무 빛나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소에는 그 자극이 좋은 원동력이었고, 진심으로 감사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땐, 그 자극이 오히려 나를 가라앉힌다. 자극은 좋지만, 스스로가 탁월하지 않다는 생각은 열등감과 좌절로 이어진다. 특히 지쳐 있을 때는 더 그렇다. 이럴 땐 내가 가진 것을 온전히 보여주기도 어렵다. 자신감이 떨어진다.


내 눈에 그들은 정말 어린아이 같다. 여기서 ‘어린아이 같다’는 건 최고의 찬사다. 예술가든, 인간이든, 어린아이 같은 태도는 삶의 이상이다. 아마 니체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 그들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은 어쩌면 어리석다. 그 뿌리에는 남들의 시선에 대한 과도한 상상이 있다. 예컨대 초고수가 내 항해를 보고 코웃음을 치지 않을까 하는 식의 생각.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첫째, 내 항해에 대한 평가는 내가 내린 것이고, 그게 사실인지조차 알 수 없다.

둘째, 설령 사실이라 해도, 그들이 진짜 어린 아이라면, 자기 항해에 순수히 몰두하며 남을 비웃을 겨를도 없다. 오히려 같은 길드원으로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울 것이다.

셋째, 만약 그들이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그런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


그리고 내가 지금껏 사용한 비유, ‘항해’는 내 일에 얼마나 많은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느 진짜 항해사에겐 항해가 인생의 전부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일은 내 삶의 전부가 아니다. 그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 그래야 삶을 더 온전히 살 수 있고, 다시 어린아이가 될 수 있다. 나는 이미 수많은 행복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소중한 친구들, 가족, 연인. 그들이 나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설령 항해가 정말 중요하더라도, 목적지에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도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항해는 모험이고 과정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일상을 겪고, 사람을 만나고, 추억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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