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에 더 민감하고 깊이 반응하도록 설계된 듯하다. 뉴스의 대부분이 나쁜 소식으로 채워지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인간의 성격 분포를 보면, 낙천성보다는 비관성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 같다. 물론 이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봤거나, 철학자라도 된 듯 여러 번 고찰해본 사람이라도, 근본적인 성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어렵다.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의식의 끈이 느슨해지는 순간이면 좋은 소식은 무심히 흘려보내고, 나쁜 소식만 붙잡아 마음속에 품고 이리저리 살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의식할 수 있을 때마다 의식하려는 노력은 나쁜 게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집 안에만 갇혀 있는 것과 앞마당까지 나가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최근의 좋은 소식에 의도적으로 집중해보려 한다.
막상 이렇게 써보려니, 새 신발을 처음 신는 것처럼 설레고 어색하다. 말하자면 내가 쓴 논문이 네 명의 전문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 어느 학회에 최종 합격했다. 내 배가 목적지에 잘 도착했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이력서 한 줄로, 더 나아가 세상에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더 고무적인 건, 이번 항해엔 시행착오가 적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내가 가고 싶던 섬을 제대로 찾아간 셈이다. 사실 그 실력에 대한 자부심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더 이상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다. 항해를 그만두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 끝맺음 덕분에 더 가볍고 자유롭게,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끝맺음의 이유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함이다—릭 루빈의 말처럼.
이번 논문이 합격된 학회는 여름, 이탈리아에서 열린다. 정확히는 베니스 근처의 도시, 파도바에서 5일 동안 진행된다. 나는 그곳에 가서 논문을 발표하고, 다른 인상적인 연구들도 둘러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연인과 함께 파도바를 포함한 이탈리아 몇 도시를 여행할 계획이다. 여행의 일부는 학교에서 지원받는다. 그것 역시 나를 홀가분하게 만든다.
지금 있는 학교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해, 세 번째 논문이 합격됐다. 만약 이 논문이 떨어졌다면 어땠을까. 그 한 가지 다른 결과만 상상해봐도,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 느껴진다.
감사하다.
그 논문을 쓸 수 있었던 일에,
그 과정을 함께한 사람들에게,
합격이라는 결과에,
이탈리아에 갈 기회를 얻게 된 데에,
그리고 그 여정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음에.
이 모든 일이 가능하도록 도와준 수호천사에게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