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하다 마주한 것들
엄마가 남긴 것들 중에 버리기 제일 어려운 건 음식 냄새가 밴 것들이었다.
앞치마.
오래된 냄비.
그리고 주방 서랍 맨 안쪽에서 나온 낡은 노트 한 권.
엄마가 돌아가신 지 넉 달이 지나서야 그 노트를 발견했다.
유품 정리는 진작 끝났는데,
주방 서랍만큼은 손이 가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곳만 피하게 됐다.
주방에서 엄마의 흔적이 가장 짙었으니까.
손때 묻은 나무 주걱, 오래 쓴 식칼, 냄비 받침으로 쓰다 거무스름해진 냄비 뚜껑들.
그것들을 치우는 순간 엄마가 완전히 없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그 서랍 앞에서 번번이 돌아섰다.
나는 엄마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가깝지도 않았다.
각자의 삶이 바빴고, 전화는 일주일에 한 번쯤, 만남은 한 달에 한 번쯤.
그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다.
엄마가 쓰러진 건 내가 출장 중이던 화요일 오전이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사흘 뒤에 돌아가셨다. 마지막 말을 나누지 못했다. 마지막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 사흘이 지금도 꿈에 나온다. 병원 복도, 형광등, 엄마의 손등에 꽂힌 링거 바늘.
넉 달째 되는 날 새벽, 잠이 오지 않아서 엄마 집에 갔다.
아직 집을 정리하지 못했다.
선뜻 손이 안 갔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인데 가스 잠갔는지 확인하러 간다는 핑계를 댔다.
스스로도 그걸 알았지만 그냥 그렇게 했다.
엄마 집 현관에 들어서면 항상 같은 냄새가 났다.
된장 냄새, 나무 냄새, 오래된 카펫 냄새. 지금도 그 냄새는 남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냄새만 남아 있었다. 불을 켜지 않고 잠깐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 냄새를 맡았다.
주방 불을 켰다.
처음으로 서랍을 열었다.
수저들, 집게, 채소 필러, 뒤엉킨 고무줄들.
맨 안쪽에 손이 닿았을 때 노트의 딱딱한 표지가 느껴졌다.
꺼내 들었다.
표지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오래된 격자무늬 노트였다.
표지가 모서리부터 닳아 있었다.
페이지를 열었다. 엄마의 필체가 나왔다.
엄마 특유의 동글동글하고 조금 기운 글씨.
중학교 때 엄마가 적어준 쪽지들, 명절 때 용돈 봉투에 적혀 있던 글씨들.
그 글씨였다.
된장찌개 — 멸치 육수 충분히, 된장은 두 숟갈 반, 마지막에 청양고추 꼭.
레시피 노트였다.
페이지를 천천히 넘겼다.
잡채, 갈비찜, 김치전, 미역국, 동태찌개. 엄마가 자주 해주던 음식들이 차례로 나왔다.
글씨 옆에 작은 메모들이 붙어 있었다.
연필로 쓴 것, 빨간 펜으로 쓴 것, 볼펜이 번진 것.
오랜 시간 동안 조금씩 덧붙여진 흔적들이었다.
어떤 글씨는 잘 보이지 않을 만큼 흐려져 있었고, 어떤 글씨는 비교적 최근에 쓴 듯 선명했다.
나는 주방 바닥에 앉아서 그 노트를 읽었다.
차가운 바닥이었지만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 두 시였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목소리가 아니라, 손이.
이걸 쓰던 손이.
이 글씨를 적으면서 어떤 표정이었을까.
어떤 날이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걸 써뒀을까.
묻고 싶은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이렇게 묻고 싶은게 많은데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답답해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