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를 받는다는 것은

기억을 선으로 남긴다는 일

by 박지현Jihyun Park


누군가가 내 얼굴을 그려준다는 건, 단순한 예술 행위가 아니다.

그건 존재의 증명이고, 기억의 기록이며, 때로는 책임의 선언이다.


3년 전 오늘, 나는 Financial Times의 대표적인 인터뷰 시리즈인 “Lunch with the FT”에 참여했다.

이 코너는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그들의 삶과 철학을 탐색하는 자리다.


한국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반기문 전 유엔총장, 장하준 경제학자 같은 인물들이 등장했고,

세계적으로는 일론 머스크, 조던 피터슨, 자디 스미스 같은 인물들이 참여해왔다.

그들과 같은 페이지에 내 이름이 실린다는 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날의 인터뷰는 기자 Christian Davies가 진행했다.

그는 단순히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내 이야기를 경청했고, 그날의 공기와 감정을 함께 나눴다.

그의 태도는 내게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을 선물해주었다.


우리는 영국 베리(Bury)에 있는 작은 지역 식당에서 만났다.

그곳은 내가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 낯선 음식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위로를 느꼈던 장소였다.

감자와 생선 튀김—그 단순한 한 끼가 내게는 생존의 맛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식당을 인터뷰 장소로 선택했다.

그날 내가 주문한 메뉴는 아마도 Lunch with the FT 역사상 가장 저렴한 식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한 끼는 내게 자유의 시작이었고, 존엄의 회복이었다.


인터뷰에서는 내가 겪은 두 차례의 탈북 이야기,

중국에서의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그리고 영국에서의 정착과 지방선거 출마까지—

생존에서 시민으로, 침묵에서 증언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나눴다.


그날의 기록은 한 장의 초상화로 남았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Ciaran Murphy가 내 사진을 보고 그려준 그림이었다.

그는 Google, Financial Times, The Big Issue 등과 협업해온 작가로, 섬세한 선묘와 감정이 살아 있는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는 단순히 얼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기억과 서사를 시각화하는 예술가다.

그의 손끝에서 내 얼굴은 단지 생김새가 아니라, 생존의 흔적으로 태어났다.


그림 속의 나는 흐릿하지만 단단했고,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특히 내 얼굴에 새겨진 주름 하나하나는 단순한 세월의 흔적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지나온 삶의 골짜기였고,

내가 기억하는 고통의 선이었으며,

죽어가던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자유를 함께 누려야 할 사명을 상기시켜주는 선이었다.


나는 그 주름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주름은 내가 말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증거다.

그들은 사라졌지만, 나는 남았다.

그리고 내가 남았다는 것은, 말해야 한다는 뜻이다.


초상화를 받는다는 것은—

내 얼굴이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증언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이다.

그건 내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다.


그 초상화는 내게 평생의 선물이다.

그건 내가 살아남았다는 증거이고,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듣고, 보고, 그려주었다는 존재의 확인서다.


나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내가 혼자가 아니었음을,

그리고 기억을 지닌 얼굴은 책임을 지닌 얼굴임을 다시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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