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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윤슬 Jul 10. 2023

혼자 있는 시간

외로움이 필요할 때

혼자, 어딘가 쓸쓸한 단어이다.

혼자 밥 먹기, 혼자 술 먹기, 혼자 웃기, 혼자 울기, 혼잣말하기.

혼자 있고 싶을 때는 기쁘고 즐거울 때보다는 슬프고 외롭고 고독이 필요할 때 혼자 있고 싶다.

그럼에도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세상과의 단절이 필요할 때, 아무 얘기도 듣고 싶지 않을 때, 맘껏 울고 싶을 때,  몸도 마음도 지쳤을 때, 쉬고 싶을 때.

나의 30대는 아직 진행 중이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다분한 30대였다. 20대와는 완전히 다른 일, 다른 장소, 다른 환경, 다른 인간관계. 다름과 새로움이 나에게 스며드는 시간을 보내며 잊고 살던 감정이 나를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외로움.


20대 때 아주 외로운 시간이 있었다. 22살에 전역을 하고 대학교 친구들과 즉흥적으로 시작했던 호주 워킹홀리데이. 학교에서 5주간 호주로 어학연수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에 친구들과 함께 참여를 했고, 5주간의 연수를 끝내고 난 뒤 뜻이 맞는 사람들과 같이 워킹비자를 신청하고 아무 계획 없이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했다. 같이 워킹을 시작했던 사람들 중에는 어학연수 때 처음 만난 친구들과 형들도 있었다.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도 빨리 친해졌고 어느 순간 난 기존의 친구들과 새로운 사람들 중간에서 서로 조율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물론 그들도 많이 친해졌지만 아무래도 내가 만만하다 보니 불편한 얘기나 돌려서 말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는 꼭 나를 통해서 얘기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 사이에 트러블이 발생했고, 난 최대한 좋게 풀어보려 노력하다가 한쪽을 잃고 한쪽과는 이전만 못한 사이가 되었다. 그때 한동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외로워지려고 나를 몰아세웠던 거 같다. 방에서 나가기 싫어서 혼자 슬픈 노래를 찾아 듣고, 의미 없는 낙서를 하고, 눈물 나게 슬픈 영화만 골라보고. 그때 처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온몸으로 맞았던 거 같다.


30대에 들어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들면서 외로움의 감각을 스스로 끄집어내고 있었을까? 어느 순간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연락이 없는 사람들. 내가 이들과의 인연의 끈을 억지로 잡고 있나? 놓아 볼까? 그렇게 한 명씩 연락하지 않게 되고 내 주의에는 진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몇을 빼고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30년을 살던 부산을 떠나와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몇 안 남은 '친구'들도 여기저기 멀리 있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쩌면 내가 일부러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든지도 모른다.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고 2년이란 시간 대부분을 집, 회사, 집, 회사만 반복하며 나를 혼자로 만들었다. 물론 회사에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지만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나의 일상이었고, 일상을 벗어나 나에게 신선함을 줄 수 있는 만남은 없었다. 이때는 집에 돌아가도 아무도 없었고 집에 있는 시간이 나의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책을 읽으며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자기 계발을 하거나 꼭 자기 계발이 아니어도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는 시간. 그때의 나는 쪽지시험에 백지를 내듯 나의 귀중한 시간을 내버려 뒀다. 

내가 무기력하고 나태한 게 먼저였을까? 내가 외로운 게 먼저였을까?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동시에 찾아와 나를 혼자 있는 시간에 가두었다. 외로우니 무기력해지고 무기력해지니 나태해지고 또 더 외로워지고 다시 무기력해지고... 그리고 그때의 나는 외로움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혼자인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노래를 아무 눈치 보지 않고 흥얼거려도 되고, 가만히 앉아 의미 없는 낙서를 해도 되고, 혼자 생각하고 중얼거리다 바보같이 피식 웃어도, 의미 없이 멍하니 앉아 있다가 울어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어서 좋다. 그렇게 외로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외로움이 그리움으로 바뀌게 된다.


예전에 나였다면 그리움을 가족이나 친구, 친한 직장동료 같이 아주 작고 가까운 관계에서만 찾으려고 했을 것이고 여전히 외로움에 침식된 채 바보 같은 시간이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다르다. 그만 외롭고 싶다. 예전에는 왜 그렇게 작은 관계에 집착했나 싶을 정도로 요즘은 새로운 만남이 좋고 새로운 관계가 좋다. 굳이 나의 작고 좁은 관계의 울타리 안에 그들을 다 넣을 필요가 없다. 이미 이 관계 자체만으로 충분히 소중하다. 나를 웃게 하고 설레게 하는 이 관계가 좋고 이제는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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