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한양도성길
작년 여름 광복절 연휴에 서울로 배낭여행을 갔었다. 항상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기에 항상 특별한 여행의 목적이 있는 편이다. 그때의 서울 여행의 주목적 중에 하나는 바로 뭉크 전시회에 가는 것이었다.
뭉크 전시회에 갔다 온 나의 소감은 '답답함' 그리고 '정신없다'이다.
나 비록 예술에 큰 능력과 관심은 없지만 뭉크가 그린 작품 하나 정도는 알고 있다. 그 유명한 절규를 그린 작가가 아닌가. 아이들은 그 당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 아이들을 보내고 아내와 나 단둘이 오붓하게 감상하는 미술 전시회를 생각했지만 예술의 전당에 들어서자마자 그것은 나의 크고 헛된 꿈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길게 늘어선 티켓팅 줄, 기다림 끝에 전시회 장으로 들어갔지만 또 길게 늘어선 줄, 이것은 마치 대설 이후 입산통제가 풀린 후 설산을 오를 때 사람에 치여 기차가 가듯 줄지어 오르내리는 것과 같았다.
그림은커녕 앞사람과 뒷사람에 치여 기차놀이하듯 떠밀려가야 했다. 심지어 가장 유명한 절규 작품 앞에서는 새치기를 하며 물밀듯 밀려오는 사람들과 사진 찍기에 정신없는 사람들, 그야말로 무질서의 혼돈 속에서 내 마음은 고구마를 3개 정도 물 없이 먹어버린 것 같은 갑갑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그 갑갑함을 감추며 아내와 오붓하게 사진도 찍었다.
이런 말 못 할 속병을 앓고 뭉크 전시회를 다녀온 나에게 아내는 또 서울여행을 가자고 한다. 이번엔 고흐란다. 그러면서 이 고흐 전시회가 어느 정도 인기 있는지를 늘어놓는다. 하도 인기가 많아 대기를 2시간이나 해야 한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가 여행 갈 시기는 얼리버드 예매가 끝나는 시점이니 안심하라고 한다. 1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아내는 신이 났는지 고흐 책들을 빌려와 하루 만에 읽어 버리고, 지역 서점에서 진행하는 고흐 특강을 들으러 간다고 한다. 2월 달력 어느 날에 '고흐 관련 그림책을 빌려오기'라는 일정이 적혀 있기도 했다. 그림책을 빌려와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어주기를 강요하겠지. 이러한 고흐의 흔적들을 볼 때마다, 아내 입에서 고흐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만 갔다.
조만간 가게 될 2박 3일의 서울 여행,
아내에게 고흐 전시회에 대한 답답함을 조금 표현했다. 그랬더니 3일 여행을 가니 아내, 나, 아이들 각각 원하는 것을 하루씩 하고 오자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나답게! 18.6km를 걸어야 하는 서울 한양도성길 종주를 하자고 했다. 5월 연휴에 가자고 선언한 지리산 종주 연습차 꼭 가야만 한다고 정당성을 부여했다. 혹시 아내도 이런 나의 바람에 고흐라는 단어를 들을 때 느꼈던 나의 심정과도 같은 답답함을 느낄까? 갑자기 반성을 해본다.
'아, 서울여행인데 하루 종일 도성길을 걸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