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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반지

편안함, 허전함

by 윤부파파

올해로 결혼한 지 10년이 된다. 1, 2, 3, 4,... 그 어떤 숫자가 의미가 없겠냐만은 그래도 1, 5, 10, 20, 30 이런 숫자들은 다른 숫자들보다 의미가 큰 것 같다. 무엇보다도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로 바뀐다는 것부터 그동안 잘 살아왔다고 의미 부여를 크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부부는 있어도 아마 결혼반지가 없는 부부는 없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학생들과 실습수업을 많이 하기에 손에 기름도 많이 묻고 금세 더러워 지곤 한다. 그래서 결혼 첫 해에는 결혼반지를 빼고 있는 시간이 꽤나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야말로 식겁했었다. 결국은 찾았지만 그 일 이후로는 절대로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지 않았다. 10년 동안...

그래서 아내의 결혼반지와는 다르게 내 반지는 윤기도 없고 곳곳에 흠집이 많다. 그래도 처음엔 애지중지했었는데 나의 몸의 일부라고 생각해 왔기에 나도 늙어감에 같이 늙어간다고 웃긴 생각도 했었다.


작년 휴직을 하고 수영을 배웠다. 등산도 열심히 했다. 신체적으로 봤을 때 군대 갔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주 열심히 살고 있다. 체중도 빠지고 몸도 좋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손가락도 얇아진 것을 느끼곤 한다. 수영을 할 때 근래 들어 자꾸 손가락에서 반지가 돌아다니고 빠져 버릴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손가락에서 자꾸 반지가 빠지려 해." 얘기를 하니 빼고 다니라고 한다. 뭔가 오기가 생겨서 절대로 빼지 않을 거라 했다. 그런데 체중이 조금 더 빠지고 이제 반지가 손가락에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고 화장대 서랍 속에 반지를 빼두고 왔다.


오늘 새벽 수영을 하는데 나를 성가시게 하던 것이 사라졌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턴 하기 전에 빠지려고 하는 반지를 매만지던 일도 이젠 필요 없어졌다. 자유형을 할 때 항상 오른쪽, 왼쪽 손을 당길 때 미세하기 다른 느낌이 있었는데 오늘은 그런 느낌이 없는 걸 보니 반지를 빼고 수영이 더 잘되려나?


그런데 무언가 허전하다.

항상 뒤집혀 있던 반지를 위아래 반듯하게 하던 나의 반대편 오른쪽 손도 할 일이 없어졌다. 가만 보니 왼쪽 약지는 오른손 약지와는 다르게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반지와 함께여서 그런지 반지가 있어야 할 부분이 눈에 띄게 홀쭉하다. 반지가 있어야 할 곳 바로 아래는 10년을 함께 해온 작은 굳은 살도 만져진다.


가끔 비누로 손을 급하게 닦고 나올 때면 항상 반지 틈에 비누가 묻어있곤 했었다. 그러면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반지만 닦아야 했던 일도 있었다. 학생들이 실습 때 "선생님, 반지 찌그러지면 어떡해요. 빼고 해요."라고 이야기를 하면 나의 반지를 빼지 않았던 10년의 세월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곤 했었는데...


처음의 설렘은 작아졌지만 함께 해 온 편암함이 있었는데 반지가 없으니 마음이 허전하다. 빨리 반지를 줄여서 끼고 다녀야겠다.


수영할 때 왼손, 오른손 느낌이 조금 달라도... 비누칠할 때 비누가 좀 묻어 있어도... 자꾸 아래를 향하는 반지를 다시 매만져야 할 지라도... 반지 아래 굳은살이 점점 더 커지더라도...


마음이 허전한 것보단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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