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보기 시작한 숏폼의 위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걸 새삼 또 느끼는 중이다. 평소 관심 있던 연예인 영상을 두어 번 반복해서 보니, 바로 비슷한 영상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덕분에 원 없이 실컷 봤다. 아마도 당분간은 다시 보지 않을 거 같다. 이어서 관심 있던 드라마 2편을 보고 나니, 새벽 3시가 훌쩍 넘은 시간. 잠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생각해 모든 불을 끈 채로 이불을 덮었다. 창 너머로 들리는 조용한 파도소리가 좋다. 오랜만에 넓은 침대를 혼자 쓰는 것도 편하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홀로 있으니, 새삼 세상이 아주 많이 조용하게 느껴지는 것도 좋다. 그래서, 갑자기 외로움이 찾아오는 이 순간도 반갑다.
그렇게 잠이 들어 오전 9시 40분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오후에 비가 온다 하니, 얼른 씻고 나가서 바닷가를 걸어야 하나 고민했다. 밖에는 퇴실하는 사람들의 소음이 이어지고 있다. 짐을 들었다 내렸다 하는 소리도 나는 거 같고, 트렁크를 끌고 가는 소리도 난다. 일행을 부르는 소리가 가장 크다. 내일이면 그 행렬에 나도 동참하겠지만, 오늘은 그 행렬과 마주치지 않아도 되니, 좋으다. 이어지는 소음을 들으며 다시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마음은 더 자고 싶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을 걸 안다.
회색빛 두툼한 구름이 하늘을 가려 빛을 차단해 버렸다. 덕분에 이 시간이면 눈부시도록 반짝이던 바다가 잠잠하다. 여행을 왔음에도 나가는 걸 포기한 채 숙소에서 오후에 내릴 비를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시 멍하게 창 밖을 본다. 손톱만 하게 보이는 배들이 오고, 간다. 어느새 밖에서는 파도소리에 더해서 아이들 소리도 난다. 아마도 호텔 인피니티풀이 문을 연 모양이다. 살짝 수영을 배우고픈 욕망이 올라왔다 사라진다. 여전히 나는 이불속에서 눈동자만 돌려가며 세상을 보고 있다.
그렇게 10시가 되어가고, 11시를 넘어서야 나는 침대 밖으로 빠져나왔다. 특별히 뭘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배가 고파서다. 탁자에 있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어젯밤에 사두었던 빵으로, 배고픔만 달랜다. 특별히 뭐가 먹고 싶지도 않고, 특별히 어딜 나가 구경하고픈 마음도 없다. 지금 계획대로라면, 아마도 이 글을 발행한 후, 다시 잠을 청했다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는 씻지 않은 채, 대충 가리고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을 사다가 저녁을 때울 것이다.
나는 이렇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날티 나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눈곱은 눈곱대로 끼어있고, 베개에 눌린 머리는 사방팔방 뻗쳤다. 무릎 나온 잠옷은 존재감을 당당히 하고, 훅 던져진 여행가방은 활짝 열린 채 닫힐 생각이 없다. 정리하지 않아도 되니, 먹었던 것들이 그대로다.
일과를 쓰고 보니, 내가 얼마나 팔자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알겠다. 집에 있었다면 이런 날티 나는 하루는 엄두 내지 못했을 것이다. 무시하고 뒹굴거리다가도 결국 일어나 청소하고, 정리하고, 바쁘게 하루를 채웠을 테니까 말이다.
날티나는 하루에 감사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