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 담임선생님이 부랴부랴 교실로 들어옵니다.
"자. 우리 반에서 ** 2동에 사는 친구 손 들어봐."
우리 집 주소 세 번째에 위치한 단어가 들리자마자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동시에 몇몇 친구들도 손을 들었죠.
"지금 손 든 친구들은. 가방은 학교에 두고, 실내화 주머니하고 도시락만 챙겨서 집으로 간다. 침수가 될 거 같다고 하니까 조심히, 조심히 가자. 얼른. 얼른 준비해."
며칠 쏟아진 비에 동네가 잠길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비만 왔다 하면 침수됐던 동네였고, 뉴스에 상습침수지역이라고 자주 나오던 동네였으니까요.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겪었던 일이라 놀랍지도 않았습니다.
집으로 가는 여러 길 중에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디가 침수됐는지 몰랐거든요. 휴대폰도 없을 때 일이라 집으로 연락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함께 고민하다, 마을버스를 타기로 결정했죠. 하. 지. 만.
"승객 여러분, 죄송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침수지역이라 차량 통행이 되지 않습니다."
목적지인 지하철 역을 코 앞에 두고, 침수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지하철이 침수되었다는 건, 집으로 향하는 길도 이미 침수가 되었다는 말이었죠.
"그냥 가자."
"그래. 어쩔 수 없지."
이미 흙탕물로 가득 찬 길을 바라보다, 그냥 지나가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친구 역시 그게 최선이라 생각한 듯 수긍하더군요. 흙탕물이 발목에 닿고, 무릎에 닿고, 허벅지 닿았습니다. 그 길로 집에 가야 하는 사람들이 비단 친구와 저만이 아니었기에, 이미 흙탕물 속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걷고 있더군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차가 다니는 도로는 중앙선 쪽이 가장 높고, 인도 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는 걸요. 때문에 흙탕물 속을 걷는 사람들 모두, 중앙선 쪽으로 걸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곳의 물 깊이는 허리를 넘지 않았습니다. 고가도로에 올라서고 나서는 흙탕물을 무사히 넘었단 생각에 잠시 안도했죠. 그러면서 고가도로 밑으로 침수돼 있는 전철역과 건물들을 바라보았습니다. 흙탕물에 모든 것이 사라진 동네. 전철이 다니던 길도, 사람이 다니던 길고, 차가 다니던 길도 사라진.
"야. 저기 봐."
주변을 살피던 저를 불러 세운 건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였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흙탕물은 맛보기에 불과한 수준이었던 것이죠. 고가도로 건너편은 더 낮은 지역이었는지, 어른 가슴 높이까지 흙탕물이 차올라 있었습니다. 도로 옆 건물 1층 절반이 흙탕물에 사라진 상태였죠.
"이거 어떻게 하지."
"몰라. 되돌아갈까?"
몸의 80% 이상이 흙탕물에 들어간다?! 생각만으로도 앞이 캄캄했습니다. 동네가 침수가 될 정도로 비가 온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그제야 팍팍 느껴지더군요. 보고 있던 모든 상황이 무서웠습니다. 그때부터는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오더군요. 수영도 못하고, 물도 무서워하는 터라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흙탕물이 두려웠습니다.
"야. 일단 가자."
이번에는 친구가 앞장섭니다. 다시 돌아가기에는 건너편 상황이 또 달라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쏟아지는 비에 우산을 최대한 번쩍 들고, 실내화주머니는 우산 고리에 걸었습니다. 그렇게 흙탕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순식간에 가슴팍 즈음까지 올라와 울렁거리더군요. 고개를 조금만 내려도 흙탕물이 내 입으로 들어올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차가운 수온에 몸이 덜덜 떨리기까지 하더군요. 앞을 볼 여유도, 주변을 살필 여유도 없었습니다. 친구가 가는 쪽으로, 따라가기만 했죠. 그렇게 10분쯤 걸었을 때,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잡아서 옮겨 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
인도 쪽으로 걸어가려던 친구를 어떤 아저씨가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이상한 행동이라 생각한 저는 아저씨를 잡아채려 했죠. 그때였습니다.
"너도 여기 그대로 있어. 니 친구 내려주고 다시 올 테니까."
낯선 아저씨의 이상한 행동이라 생각했던 찰나, 저는 알았습니다. 친구와 제가 도로 중앙선 쪽이 아닌, 인도 쪽으로 걸어갔다면 물에 빠졌을 거라는 걸요. 아저씨는 우리보다 키가 컸습니다. 우리에겐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하던 흙탕물이 아저씨에겐 명치에 걸려 있었거든요. 아저씨가 인도 쪽으로 걸어가자 물높이는 점점 높아져 아저씨 가슴 높이까지 올라왔습니다. 물높이도 그러한데, 인도 턱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위험하잖아요. 아저씨는 그 길을 잘 아는 듯, 인도 턱도 수월하게 넘어가 친구를 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데리러 와주었죠.
"얼른 조심히 가. 여기서부터 물이 낮아지니까 괜찮을 거다."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끝내자마자 아저씨는 다시 흙탕물 속으로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서 있던 자리에 우리보다 작아 보이는 체구의 누군가가 보였거든요. 아저씨의 도움으로 친구와 저는 무사히 집에 도착했습니다.
온 동네를 물바다로 만들었던 비는 다음 날 그쳤죠. 잠겼던 동네는 비가 그친 다음 날,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쓴 채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나와서 흙탕물을 닦아내고, 잠겼던 살림살이를 말리느라 분주했죠. 그때의 동네 모습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합니다. 세월이 흘러 동네 모습은 변했지만, 잠긴 동네를 바라봤던 고가도로는 여전히 존재하죠.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로 상습침수지역에 대한 공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지금은 비가 많이 와도 잠기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뉴스에서 수해 소식을 접할 때면, 가슴팍까지 오던 흙탕물이 떠오릅니다. 동시에 살갗을 파고들던 차갑디 차가운 수온이 느껴지는 것 같달까요. 쏟아지는 비가 무섭다는 걸 확실히 각인하게 된 날이었던 듯합니다.
어릴 적, 그 동네에 살았던 사람으로 매년 이어지는 수해 소식이 마음이 아픕니다. 제발, 더 이상의 피해는 없었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