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이 연결해준 특별한 인연
밴쿠버에 온 지 10일 정도 지났을까. 아직 어학원 수업이 시작되지 않아 갈 곳도 아는 사람도 없었다. 숙소 앞 카페만 자주 가며 나름 공부를 한다는 명목으로 아이패드를 들고 문법만 계속 공부했다.
그러던 중 아빠와 통화를 했다. 며칠 간 밴쿠버에 있으면서 느낀 편안한 마음과 일상을 공유했다. 통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이어폰이 떨어졌다.
그 이어폰은 한 친구 앞에 떨어졌고, 그 친구는 이어폰을 주워주며 한국어로 "여기요"라고 말했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서 "한국말 할 줄 아세요?"라고 물었고, 그 친구는 조금 한다고 대답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근처 랑가라 대학교를 다니는 친구는 인도 출신의 프라브라는 이름이었다. 작년 겨울에 캐나다에 온 프라브는 대학교 1학년 새내기이고, 현재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프라브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나왔는데, 너무 일찍 나와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옆자리에서 한국어로 통화하는 나의 목소리가 들렸고, 한 번도 한국어로 소통한 적이 없는데도 알아듣고 있는 자신이 놀랐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인 나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고 했다. 마침 이어폰이 떨어졌고, 그것을 주워주며 말을 건넸다고 했다.
프라브는 한 번도 한국어를 따로 공부하지 않았지만, K-드라마와 K-POP을 좋아해 매일 보고 듣다 보니 한국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조금 어려운 부분은 번역기로 확인하며 대화를 이어갔고, 프라브는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나와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먼 타지에서 한국어를 하는 인도인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인연을 많이 만들어 가는 걸까? 영어를 못하는 나에게 생긴 첫 번째 특별한 인연이었다.
한참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 빠져 있던 나는 프라브에게 대학교 탐방을 요청했고, 그는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간이 된다며 꼭 나에게 자신의 학교를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며칠 뒤,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몇 친구들을 데리고 랑가라 대학교를 갔다. 외국에서의 대학교 탐방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내가 다닌 한국과는 다른 풍경, 다른 사람, 그리고 다른 느낌..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프라브는 친절하게 모든 장소를 안내해주었다. 점심시간이 맞물려 대학교 식당에 갔는데, 식당은 여러 매장이 한데 모여 있었다. 우리는 그 가운데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나의 부탁을 들어준 프라브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점심을 사주려고 했지만, 그는 한사코 거절하며 오히려 나에게 쿠키를 사서 나눠주었다.
캐나다로 오기 전, 나는 내가 디자인한 양말을 여러 개 가져왔었는데, 캐나다에서 처음 사귄 친구에게 선물하려했다. 하지만 포장지가 없어 조금 난감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잘 포장해서 전달했다. 프라브는 너무 기뻐해주었고, 나는 그 반응이 너무 고마웠다.
점심을 먹고 다시 대학교를 구경했다. 멋진 정원을 따라 걷다 보니 도서관이 나타났다. 여러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과제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에 있었다.
도서관을 구경한 후 동아리실과 미술실도 둘러보았다. 디자인학과를 나온 나에게는 미술실이 가장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좀 더 자연 친화적인 느낌의 교실에서 미술을 했다면, 더 잘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자판기 앞에서 프라브가 인도에서 유명한 과자라며 과자를 뽑아주려 했다. 그 과자는 치토스와 비슷하게 생겼고, 맛있었다.
그렇게 대학교 투어를 마친 우리는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카페에서 만난 대학생 인도인 친구와의 만남은 나의 캐나다 생활의 시작을 조금 낯설지만 따뜻함이 가득한 순간으로 만들어주었다. 영어를 못해 외국인 친구를 사귈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던 나에게는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갑자기 캐나다의 삶이 기대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