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을 쓸 때 꼭 생각하는 것

더 일찍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by 프린스턴 표류기
image.png 미국의 저명 문예지, 더 선. 떨어지고 나니 더 도전하고 싶어진다.



나는 피아노 마스터클래스를 즐겨본다. 거기서는 음악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가르친다. 멜로디와 화성적 구조, 소리의 질감을 어떻게 다루어야 듣는 사람에게 공감과 감동을 줄 수 있는 지를 말이다.

그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가르침이 있다.


“여기는 p (작게 연주하라는 악상기호)가 붙어 있지만 굉장히 중요한 음이에요. 힘없이 치면 안 됩니다. 공연장 맨 뒤에 앉은 사람에게도 분명히 들려야 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연주의 기준은 언제나 관객의 귀라는 것을. 작게 치라는 표시가 있어도, 그 음이 귀에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관객에게 전달되어야 할 것은 작은 음량이 아니라, 들었을 때 ‘작게 느껴지는’ 소리다.


이건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독자가 내가 의도한대로 수긍할 수 있는 말은 다를 수 있다. 이 차이를 반드시 의식해야 한다.


수십 년 전 학창 시절 이후 처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건 지난봄.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꺼내, 퍼스널 에세이를 한 편 썼다.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감정을 차곡차곡 담은 글이다 보니 내겐 의미가 매우 컸기 때문에, 간 크게도 미국의 최고의 문예지 중 하나인 The Sun Magazine에 보냈다.


크리스마스 무렵, 나는 “당신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잡지와 맞지 않는 글입니다.”라는 거절 통지를 받았다. 정말 진지하게 읽었는지, 아니면 연말에 모든 탈락자에게 보내는 통상의 거절 통지였는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글은 솔직했지만, 철저히 나를 위해 쓴 글이었고, 독자를 향해 있지 않았다. 나는 거절 통지에 진심으로 수긍했다.


그 때는 독자를 배려하는 법을 몰랐다. 지금이라면 절대 그런 상태로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알고리즘이 있는 플랫폼에서 글이나 영상을 만드는 법을 말할 때, 사람들은 흔히 내용보다 SEO나 썸네일 같은 기술부터 이야기한다. 나 역시 그런 것에 혹했었다. 알고리즘에 뜨는 일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잔기술이지, 절대 본질이 아니다. 관객의 귀에 전달되지 않는 피아노 소리 같은 글은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없다.


요즘 내가 글을 쓸 때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은 하나다. 내 글은 과연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독자가 많지 않은 나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지난 몇 달 동안 쓴 글을 돌아보면, 이전보다는 분명히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점은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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