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웨이는 왜 콘서트홀을 떠나 부자들의 거실로 갔을까

권위 마케팅에서 라이프스타일 마케팅으로

by 프린스턴 표류기
note_by_note.jpg 피아노의 표준, 최고급 피아노를 만드는 장인 정신을 그린 영화 노트바이노트. 스타인웨이의 권위 마케팅 전략과 매우 잘맞는다. (스타인웨이가 직접 돈을 댄건 아니라고 한다.)


거장의 연주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스타인웨이 자동 피아노 스피리오 영상에는 밝고 탁트인 현대적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음악을 즐기는 젊고 세련된 부자들이 등장한다.이건 전형적인 스타인웨이 광고가 아니다. 일류 피아니스트들이 선호하는, 정석 클래식 피아노 그 자체로 확고하게 브랜딩한 스타인웨이는, 음향엔지니어를 내세워 최고의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권위 마케팅의 귀재였다. 어째서 그들은 갑자기 콘서트 홀에서 일반인의 거실로 무대를 옮긴 걸까.


사실, 스타인웨이의 일반인 공략은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스피리오의 등장으로 그들이 누구를 공략 하는 지가 우리 눈에 더 잘 보이게 됐을 뿐이다. 스타인웨이 피아노들은 공연장과 대학 연습실에서 많이 보이지만, 그건 브랜드 구축과 네트워킹의 전략 때문이다. 실제로 스타인웨이 스스로 기관판매는 15 % 정도 뿐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대부분의 구매자는 전문 피아니스트가 아닌, 개인이다.


NewYorkApartment-1-scaled.jpg 인테리어 가구인 피아노 Modern Luxury Apartment in New York City 출처 https://poloandlifestylemagazine.com/


일반인이 스타인웨이를 산다고 놀랄 건 없다.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지위를 상징한다. 실제로 뉴욕 럭셔리 아파트 내부 사진에는 거의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상당수는 스타인웨이다. 이런 인테리어용 피아노는 중고 매물로 나올 때 거의 새것과 다름이 없다고 한다. 아무도 치는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스타인웨이 피아노에 자동 연주하는 기능은 금상첨화, 스피리오가 나타난 건 거의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2021년 기준으로 스타인웨이 피아노 매출의 약 32 %가 스피리오에서 나왔고 평균 판매가 상승의 동력이 되었다. (출처: Steinway Musical Instruments Holdings, Inc., Form S-1 Registration Statement, U.S. SEC, 2022)


죽어가던 피아노 시장에서 이정도면, 눈부신 성공이다. 스피리오는 피아노 역사의 신의 한수일까?


스타인웨이의 기술적 모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2 년 부터 20 년 가량, 그들은 내구성을 높일 목적으로 액션의 회전 부품에 천연 양모 대신 그 당시 신물질로 등장한 테플론 부싱 (Teflon Flange Bushing)을 사용한 적이 있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양모는 계절에 따라 목재와 함께 팽창하고 수축하지만, 테플론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 결과 나무가 수축하면 덜컥거리는 소음이 생기고, 반대로 팽창하면 터치가 빡빡해지는 문제가 나타났다. 이것이 스타인웨이 역사상 가장 뼈아픈 기술적 실패로 남은 ‘테플론 부싱 사건’이다. (이 때 생산된 스타인웨이는 시장가도 낮다. 사고 싶은 중고 피아노가 있으면 시리얼 넘버로 생산년도를 꼭 확인하기 바란다.) 이 사건은 첨단 소재라 하더라도 전통 악기에 자연스럽게 융합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Steinway-Sons-Teflon-Bushings-and-Pins-Close-up-625x417.jpg 테플론 부싱과 센터핀. 출처: "Teflon Bushings The Steinway & Sons" by Benjamin Rogers and Philip Balke

작은 테플론 조각 하나만으로도 이럴진대, 스피리오 내부에는 덧붙인 것들이 정말 많다. 스피리오에서 건반을 움직이는 것은 솔레노이드 전자석이다. 날씨만 변해도 수축, 팽창하는 피아노 속에 열을 내는 전자석이 88개나 있다. 물론 제조사는 이것도 고려해 디자인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추가된 부품의 무게와 전자 장치의 수명 문제까지 생각하면, 과연 이 복잡한 구조가 시간이 지나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 나는 이미 걱정이 된다.


스타인웨이가 그들이 창조한 클래식 음악계 내의 탄탄한 생태계가 있고 '타협하지 않는 장인 정신'이라는 브랜드 포지션을 생각하면 나는 이번 시도가 위험해보인다. 자동피아노시장에는 정밀기계 영역에서 잔뼈가 굵은 숙적 야마하가 버티고 있다. 야마하가 훌륭한 피아노로도 부자들 공략이 어려웠던 것은 낚시대, 오토바이, 값싼 키보드 등으로 인한 대중 잡화 브랜드 이미지 때문이다. 자동피아노는 사실 가전제품이다. 부유층들은 브랜드의 차별성이 사라지면 철새처럼 날아간다.


거의 100년이 된 내 피아노는 아직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들려준다. 하지만 10년 20년 뒤 스피리오의 내부장치가 구식이 돼버린다면, 그 무거운 '가전 피아노'는 어떤 가치를 남길 수 있을까? 시간을 이기는 장인정신을 넘는 스타인웨이의 새로운 도전, 이번엔 테플론의 망령을 떨쳐내고 또 다른 역사를 쓸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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