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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부리 Sep 23. 2021

이 글을 읽기 전에 나의 반려견을 한 번 바라보세요.

내가 잃어버린 것들

그러니까, 꿈을 꾼 것 같다. 사람은 자는 내내 꿈을 꾼다고 하던데. 유난히 꿈을 많이 꿔서 편히 잠을 못 잔 것 같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선잠을 자서 꿈 내용이 다 기억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날은 잠든 내내 선잠을 잤나 보다.



“하.. 차 오지게 막히네~”


부슬비가 내리는 퇴근길. 나는 운전석에 앉아 앞차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마미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어, 엄마.”

“퇴근해?”

“응~ 비 와서 차 엄청 밀리네.”

“밥은?”

“집 가서 대충 먹어야지, 엄마는?”

"너희 아빠 곧 오시면 같이 먹으려고 기다려."

"아빠 좀 늦나 보네, 오늘은"

"그런가 봐. 아참, 꼬미 주말에 산소 가서 묻어줄 거야."


순간 목이 메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말을 이어갔다.


"왜, 나는 내 방 책상에 올려두면 좋을 것 같은데. 어차피 거기 쓰지도 않잖아. 볕도 잘 들고."

"아무리 그래도 방은 방이야. 죽어서도 방에 있으면 너무 답답하지~ 사람이든 동물이든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거야."


내가 좀 이기적이었나. 보내기 싫은 마음이 컸던 것뿐인데 엄마의 말을 들으니 꼬미가 더 원하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 마음껏 냄새도 맡고 뛰어노는 것일 듯싶었다.


"그래~ 꼬미도 그게 더 편할 것 같네."

"꼬미 화장할 때 거기 화장해주시는 분이 그러더라. 꼬미가 많이 아팠나 보더라고."

"그걸 어떻게 알아?"

"많이 아픈 강아지들은 화장하고 나면 색깔이 회색이래. 근데 우리 꼬미가 그랬데~"


이번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혼자 운전하고 가는 길이라 사실 울어도 상관없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울음을 참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흠흠. 그래, 그럼 잘 묻어줘요. 주말에 내려갈 수 있으면 내려갈게~ 이제 끊어야겠다."

"그래. 밥 잘 챙겨 먹고. 끊는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출근을 하기 위해 운전석에 앉았다. 출발하기 전 핸드폰을 보니 아침 일찍부터 언니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꼬미 잘 나온 사진들 있어? 장례식장에서 사진이 몇 장 필요하다고 하네. 미리 준비해두려고.'


한 번 더 생각해봤다면 꼬미가 죽었구나 싶었을 텐데,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클라우드에 저장되어있던 꼬미의 사진들 중 귀엽고 예쁜(사실 어떤 사진이든 다 귀엽고 예쁘지만.)것들로 엄선해서 열댓 장을 전송했다. 그리곤 여느 때처럼 출근을 했고, 일을 했고, 퇴근을 했다.


퇴근을 하고 소파에 퍼져 카톡을 확인했다.


'뭐가 이렇게 카톡이 많이 왔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연락을 자주 안 하는 언니들과 동생이 있는 '남매' 카톡방에 수십 개의 카톡이 와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사진 몇 장이 보였다. 오늘 아침에 내가 보내준 사진으로 된 꼬미의 영정사진과 눈을 감고 편한 자세로 누워있는 꼬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오늘 꼬미 무지개다리 건넜다. 편히 잘 갔어.'


꼬미가 아프기 시작 한 이후로 잘 참아왔다고 느꼈던 슬픔에 미안함이 번지자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새벽에 엄마가 먼저 발견했고 현우가 마지막까지 계속 쓰다듬어 주면서 잘 보내줬어.'


아, 그래서 오늘 아침에 사진 보내달라고 한 거였구나. 살아있는 꼬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일주일 전쯤 영상통화를 통해서다. 망할 코로나 때문에 지병이 있는 부모님에게 피해를 줄까 꼬미가 아픈 것을 알았지만 자주 보러 갈 수 없었다.


"꼬미야~ 누나야~ 꼬미야~"


눈이 안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꼬미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총명하고 선명하기 그지없던 얼굴이 약간 멍- 해졌달까. 그리고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보며 낑낑거리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했다.


"꼬미야~ 소리 들려? 누나야~ 많이 아프지?"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것인지 멍하던 꼬미의 고개가 까딱거리며 반응을 보였더랬다.

"언니, 꼬미 숨소리가 거칠다. 숨쉬기 힘든가 봐.."

"응. 코에 이물이 많이 생겨서 꽉 막혀있어. 그래서 자다가도 숨쉬기 힘들면 일어나서 헉헉거리다가 또다시 자고 그래.."


한 때는 너무 혈기왕성해서 받아주기 힘들 정도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나이가 들은 거야.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났다. 꼬미는 내 방 끝에서 거실의 소파까지 최대한 긴 동선을 만들어 인형을 던져주면 혼자 맹렬히 뛰어다니며 아무 힘이 없는 인형과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그리곤 내가 이겼다는 듯이 전리품마냥 인형을 물고 신나게 점프 뛰어 품으로 달려들던 모습이 여전히 생생했다. (그렇게 물고 온 인형을 다시 달라고 당기면 절대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꼬미가 처음 우리 집에 온 것은 15년 전, 내가 수능을 막 마친 후였다. 집 안에서 강아지를 키우는 것에 적극 반대하던 부모님을 겨우 설득해 허락을 맡은 후, 동생과 언니가 강아지를 분양받기 위해 시내의 여러 동물병원을 다녀봤지만 분양받을 수 있는 강아지가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들려본 동물병원에 혼자 바리케이드 안에 있던, 대리석 바닥에 널브러져 밥통을 베개 삼아 쌔근쌔근 자고 있던 꼬미를 발견했다고 했다. 다른 아기 강아지들보다 조금 커 보였는데 몇 개월이냐고 묻자 6개월 정도 됐을 거라고 했다. 그때까지 주인을 찾지 못해 유리 케이지 안에 들어가기엔 이미 커버려서 혼자 나와 있었던 것이다. 언니는 그런 꼬미를 보고 눈에 밟혀 데리고 와야겠다고 느꼈다고 했고 동생도 적극 동의를 해서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꼬미가 밤마다 너무 힘들어하고 아파해서, 그냥 보내 줄까 해. 주말에 병원 데려가 보려고."


"안락사..?"


"응. 나도 정말 그러긴 싫은데, 꼬미 아파하는 것 보면 사람들 욕심인가 싶어. 어쩌면 꼬미는 그만 아프고 싶을 것 같아."


그럴까. 꼬미도 이제 그만하고 싶을까. 고마웠다고 편히 보내달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난 어쨌든 나와 있고, 꼬미 아프고 힘든 모습 보면서 보살펴주는 것은 언니니까.. 언니 결정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병원 데려가 보고 많이 아플 거라고 힘들 거라고 하면, 그렇게 할게."


그렇게 영상통화를 끝으로 꼬미는 일주일 정도를 더 벼텨줬고, 집에서 평소 앉아서 꾸벅꾸벅 졸던, 가장 좋아하던 '꼬미 스폿'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내가 성인이 되고 오락가락 20대를 보내는 동안 가끔 조용한 고향 집에서 쉬고 싶을 때마다 찾아가면 내 걸음 소리만으로도 나를 알아보고 낮은 자세로 꼬리를 흔들며, 아니 엉덩이를 흔들며 반기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났다. 꼭 그 모습이 '왜 이제 왔냐며, 나 지금 자다 깼는데 그래도 네가 반갑다며, 너를 잊지 않고 있었다며, 밖에서 뭐하고 왔는데 이 냄새는 뭐냐'라고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았다.


둘째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끅끅 우는 소리만 들릴 뿐 언니도 말이 없었다. 그렇게 말없이 서로 울기만 하다 언니가 말을 이어갔다.


"나는 꼬미 방석에 꼬미 화장함 올려져 있는 것 보니까..."


언니는 다시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다. 나 역시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 잘 알기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 목이 너무 메어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언니, 나는 너무 다 미안해 꼬미한테. 산책도 더 자주 시켜줄걸. 목욕도 그렇게 좋아했는데 더 자주 씻겨줄걸."


"꼬미한테 산책 가자고 하면 지 목줄 옆에 앉아가지고 나 나올 때까지 꼬리 흔들면서 기다리던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나도."  


그렇게 언니와 꼬미의 추억을 되새기며 우리만의 추모식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다 괜찮아진 것 같았는데, 꼬미를 땅 속에 묻는다고 하니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질까 봐 그럼 꼬미가 얼마나 슬플까 싶어 미안해졌다. 꼬미가 죽기 직전까지 나를 기다렸으면 어떻게 하지. 날 보기 위해 끝까지 버티다 못 보고 떠나는 것에 미안해하면서 떠났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하자 주말에 집에 꼭 내려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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