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레즈 투쟁기 1회

by 김성호

1

대장은 발레리나는 대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불평했다. 영화 얘기였다. 나는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토리는 없고 너무 쉼 없이 액션만 이어져 꼭 과호흡이 온 느낌이라면서 그 애는 켁켁거리는 흉내를 냈다. 나는 작게 웃었다. 대장, 그 애, 그러니까 내 아들은 나와 걸음을 맞춰 걸었다. 속도와 보폭을 맞추는 그 애의 세심한 배려는 익숙한 한편 언제나 나를 감동에 휩싸이게끔 만들었다. 그 애는 180센티미터가 넘는 멀끔히 큰 키에 다부진 체격, 그리고 결코 못생겼다고는 말할 수 없는 매력 넘치는 얼굴의 소유자였다. 모든 여자는 아니겠지만, 몇몇 여자는 반할 만한 첫 인상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주인공 여자애는 예쁘지 않았니? 처음 보는 배우이긴 하다만.”

“그다지. 매력 없던데.”

내 말에 대장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 애는 여자애들에 대해 항상 그런 식이었다.

이어 우리는 키아누 리브스가 생각보다 너무 적게 나왔다는 데 의견을 모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의 백화점 식당가로 향했다. 나는 슬몃 대장의 팔을 살짝 움켜잡듯 안았다. 그 애는 왜 이래, 하면서도 정겹게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들을 애인 삼아 주말 백화점을 돌아다니는 건 유쾌한 일이었다. 물론 불쾌한 일은 절대 아니고. 나는 이런 행복에 오히려 감사해야한다고 늘 여겨왔다. 우리는 솥밥을 먹기로 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식당을 나와 잠시 옷 구경을 하다 집으로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기던 순간이었다. 한 여자가 내 앞을 가까이 스쳐갔다. 한순간 나는 무언가에 사로잡힌듯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멍하니 서서 이제는 지나가버린, 미약한 향수 냄새만 남은 그녀가 떠난 자리를 응시했다. 대장이 옆에서 왜 그러냐고 묻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 여자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자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사라지고 다만 천장의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붉은 형체의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나는 그곳으로 다급히 다가섰다.

이어폰이었다. 빨간색 줄이 달린 옛날 이어폰.

나는 그것을 집어들었다. 여자가 흘리고 간 게 틀림없었다. 거기서도 여자의 향이 풍기는 듯했으므로. 뒤따라온 대장은 뒤늦게 따라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까 그 여자가 흘리고 갔나봐. 어떡하지?”

나는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여자? 어떤 여자?”

대장이 처음 듣는다는 듯 반문했다.

“아까 그 여자 말야. 우리 앞 스쳐지나간 여자.”

“거기 우리밖에 없었는데? 엄마가 잘못 봤나 보지.”

“아냐. 향수 냄새가 진동하는 걸. 이것도 그 여자가 떨어뜨리고 간 거야.”

나는 아무렇지 않게 빨간색 이어폰을 내보였다. 그 애는 내 손에서 이어폰을 가져가 살피고는 그 사람 것이 확실하냐고 물었다. 머리를 주억거렸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어떤 확신이 나를 강하게 내리눌렀다. 나는 꼼짝없이 그 아래 깔려 누가 묻든, 그 여자 것이 맞는다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야 했다. 그 애는 다시 이어폰을 내게 건네주었다.

“되게 오래된 옛날 이어폰이네. 아직도 이런 거 쓰는 사람이 있구나. 요샌 다 에어팟 쓰지.”

우리는 다시 차를 찾아 주차장을 돌아다녔다.

“그 비싸기만 한 거? 너 그거 몇 번 잃어버렸지? 아마 못해도 너댓 번은 될 거야.”

“아니거든. 딱 두 번이야. 그것도 하나는 정말 내 탓이 아니라 누가 훔쳐간 게 틀림없다니까.”

차를 찾기 위해 그 애는 몇 번이고 자동차 키 버튼을 눌러댔다. 어디선가 소리가 나고 빛이 번쩍거렸지만 주차된 차량이 워낙 많고 장소가 넓은 탓에 찾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차를 발견해 올라탔을 땐 주차장에 난방이 되지 않는 탓에 온몸에 냉기가 잔뜩 서린 뒤였다. 그 애는 운전면허를 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차를 몬 사람처럼 핸들을 다루는 데 익숙했다. 차체가 흔들릴까 손잡이를 잡을 필요도 없었다. 그 순간, 무심코 사이드미러를 힐끔 곁눈질 했을 때였다. 이어폰을 흘린 예의 그 여자의 모습이 언뜻 비친 듯 보였다. 그러나 이내 그 형체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창문을 올리고 히터를 틀었다. 문득 스스로가 행복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나는 행복했다. 적어도 그날은.


2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블로그에 새 일기가 올라갔다. 얼마 되지 않는 서로이웃들이 서둘러 글을 읽고 댓글을 남겨주기를, 반응을 보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을 하는 시간이었고, 그렇지 않다 해도 바로 좋아요가 쌓이거나 댓글이 달리는 경우는 드물었다. 저마다 할 일이 있고 사정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성미가 급한 나로서는 이해 가지 않는 일이었지만. 오늘의 일기는 주말에 아들과 영화관 데이트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블로그에 일기를 쓴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갔다. 대개 책을 읽은 감상이나 일상에 대한 느낌, 후기 등을 마구 뒤섞은 잡문에 가까운 글이었다. 제대로 각 잡고 쓴 건 없었다. 언젠가 대장이 책 읽고 글 쓰는 게 좋으면 공모전에 나가보라고도 했지만(그러면서 저도 한 번 읽은 적 없는 박완서 작가의 등단 나이를 언급했다) 나는 흘려들었다. 무언가에 도전하거나 시도하기엔 이미 늦었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욕심이 없었을 뿐이다. 나는 무언가에 큰 욕심이 없었다. 늘 적당히, 선을 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무엇이든 간에. 인간관계도, 일상에도, 물건에도. 그건 50이 넘도록 지금까지 살면서 몸에 익은 일종의 버릇 같은 것이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 딱 남들만큼만,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게 내 목표라면 목표였다.

나는 노트북 앞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로컬 농수산물 센터를 다녀올 생각이었다. 이맘때쯤이면 제철 과일이나 각종 농수산물을 싸게 살 수 있었다. 얼마 전 생일선물로 남편에게 받은 베이지색 트렌치 코트를 걸친 후 현관문을 밀고 집을 나섰다. 거리는 쌀쌀했다. 기온은 17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체감 온도는 훨씬 낮을 터였다. 동물병원과 편의점, 무당집을 차례로 지났다. 나는 무당집을 지날 때마다 선뜩한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게 확실해질 때까지 제자리에서 두 발을 떼지 않았다. 무당집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을 본 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12년 전 이사를 왔을 때부터 그 자리에 ‘인현궁’이라 적힌 무당집이 있고, 그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외에 달라진 건 전무했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지하철역 아래로 내려갔다. 조그맣고 느린 엘리베이터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에스컬레이터가 자주 고장나는 때문이기도 했다. 툭하면 안전 점검 중이라며 안내판에 가로막혀 있었다. 골반에 인공관절을 끼운 지도 두 해가 지났다. 집안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친한 대학 동창의 갓난아기 손주를 얼떨결에 보게 되었더랬다. 밥을 먹인답시고 나서 아기용 식탁의자 가까이 다가서다 의자 다리에 걸려 넘어졌다. 재수없게 무언가를 잡거나 가까스로 중심을 잡을 새도 없이 옆으로 그대로, 무력하게 넘어진 탓에 골반이 그대로 부서졌다. 119 구급차가 왔고 나는 당일 응급수술을 했다. 친구는 미안해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행여나 말도 못하는 손주 탓이나 며느리 탓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다짐을 받아냈다. 회복하는 와중에도 나는 친구의 손자가 드문드문 생각났는데, 나도 꼭 그런 손주를 보고 싶다는 마음속 욕망의 발현 때문이었을까.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꼬박꼬박 어렸을 적 애칭 ‘대장’이라 부르는 아들에게 여자친구는 있냐고, 결혼은 언제쯤 할 생각이냐고 묻기 시작한 것은. 그때마다 아들은 없다고 하거나, 있었는데 지금은 헤어졌다고 대답을 회피할 뿐이었다.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한 번도 그 애 여자친구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있기나 한 걸까. 어디 문제라도 있는 걸까. 나는 내 삶의 유일한 목표인 ‘평범성’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소리를 그 순간에도 알아채지 못했다.

지하철에 올라탔다. 히터가 조금 약한 곳을 찾아 칸을 옮기다보니 어느새 아무 빈 자리에나 앉은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핸드폰이나 노트북, 책에 시선을 처박고 몰두해싿. 눈을 감고 자는 이들은 오늘 따라 많지 않았다. 열심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은 쉬우면서도 지난한 고행에 가깝다. 나는 그런 깨달음에 도달한 채 핸드폰을 꺼냈다. 유튜브로 즐겨 보는 아제르바이잔의 아주머니 일상 영상을 보고 싶었다. 순간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화들짝 놀랐다. 나는 다급히 소리를 끄고 영상을 보았다. 별다른 맛이 없었다. 소리를 껐기 때문이다. 그러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무심코 잡힌 이어폰을 꺼내들었다. 빨간색의 그것은 지난 주말 한 여자가 흘리고 간 물건이었다. 이걸 써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이어폰을 양 귀에 꽂았다. 착용감이 괜찮았다. 이어폰 연결이 되었다는 표시가 핸드폰 화면에 떴다. 나는 소리를 키웠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영상의 소리가 그대로 귓가로 흘러들었다. 아제르바이잔의 시골 풍경, 동물 울음소리, 요리를 하는 일상이 그대로 음계를 밟아 노래가 되었다.

연신내역에서 내려야 했다. 나는 잊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이어폰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영상 어느 부분에서부턴가, 목소리가 중간중간 끼어들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다소 낮고 쉰 목소리였다. 나는 그 목소리가 영상에서 섞인 잡음이라 생각했고, 이어 이어폰 바깥의 소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유튜브 영상과 상관없이 이어폰에서만 흘러나오는, 그야말로 ‘낯선’ 목소리였다. 목소리는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야, 야, 야, 야. 진희야. 진희야. 내 목소리 들려? 들리지? 들리는 거 다 알아.

나는 통화 중이 아니었다. 목소리 사이사이로 영상 속 아제브라이젠 아주머니가 주걱으로 요리를 젓는 소리가 요란히 들려왔다. 나는 점차 등골이 서늘해지고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했다.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것은 여전히 내게 말을 걸었다.

-목소리 들려, 안 들려? 들리잖아, 그렇지? 어서 대답해, 빨리!

“여보세요? 누구신가요?”

나는 가까스로 소리 내어 되물었다.

-아하하, 들리는군. 들린다, 들려. 다행이야. 진희야, 나야. 나. 순애.

“죄송하지만, 순애가 누군지 저는 잘 몰라요. 전화 잘못 거신 것 같은데.......”

-바보, 이건 전화가 아니야. 통화하는 게 아니라고. 나는 순애라니까? 순애, 기억 안 나?

나는 잠시 이어폰을 양 쪽 다 귀에서 빼버렸다. 목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았다. 그순간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요동쳤다. 사람들이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쏠렸다. 이곳저곳에서 작은 소란이 터졌다. 마른침을 그러모아 삼켰다. 다시 이어폰을 꽂았을 때, 목소리는 중얼거리던 말을 멈추고 다시 내게 집중했다.

-기억 안나면 그냥 지금부터 내가 순애라고만 알아둬. 순애라고 불러도 돼.

“대체 그쪽이 누군데 그렇게 부르라는 거죠?”

-나는 이 이어폰의 주인이자, 순애고, 동시에 너 자신이기도 해.

내가 미친 건가. 그 생각에 다다랐을 즈음 이어폰 속 목소리가 말을 이어나갔다.

-넌 미친 게 아니야. 정상이라고도 할 순 없지. 애초에 네 아들이 정상이 아니니 말이야.

“그게 무슨 말이죠? 내 아들 얘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 거예요?”

-그나저나 골반은 어때? 남의 손주 밥 먹이려다 치른 대가치곤 험했어, 그치? 너도 얼른 손주를 보고 싶을 텐데, 그럴 여력은 안 되고. 거 참, 너도 안 됐다, 얘.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그보다, 내가 다친 건 어떻게 아는 건가요?”

-나는 너라니까? 동시에 네가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순애고, 이 이어폰의 주인이지.

나는 무당집을 지날 때 으레 그랬던 것과 같이 주위를 살폈다. 달라진 건 없었다. 지하철은 여전히 빠르게 움직였고 나는 그 안에 실려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것의 주인이 누구일지 짐작하려 무진 노력했다. 남편 회사 사람인가? 아니면 그 애의 친구? 내 주변인물은 아니었다. 애초에 나는 교류가 있는 사람을 많이 두지 않았으니까. 아들이 어렸을 때도 그 흔한 학부모 모임 하나 나간 적 없었다. 나는 사람들을 사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두려워했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애당초 목소리는 대학 동창의 것도 아니었고, 내가 아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나는 무릎 위의 가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계속 그런다면요. 장난전화도 정도껏 해야죠.”

-이건 장난전화가 아니야. 아니라고! 그리고 끊는다고 끊을 수 있을까? 이어폰을 아예 가위로 가닥가닥 잘라 버리지 않는 이상, 나는 여전히 너고 순애고 이 이어폰의 주인이야.

“끊겠습니다.”

-이건 전화가 아니라니까.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그쪽이 먼저 끊으세요.”

-너는 손주를 못 봐.

“네?”

-너는 손주를 못 본다고. 왜냐면 아까 말했듯, 네 아들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지.“

“대체 누군가요? 누구길래 내 아들을 들먹이고 협박하는 거죠?”

-협박이라니. 난 사실을 알려줄 뿐이야.

사실? 무슨 사실? 나는 어느새 헐떡이는 숨을 가라앉히려 호흡을 골랐다.

-네가 대장이라 부르며 애지중지 하는 스물 여섯 난 아들, 동성애자야. 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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