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시 멍해졌다. 방금 무슨 말을 들은 걸까. ‘동성애자’와 ‘게이’라는 단어만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처음에 아무 형체도 갖추지 못한 그것들은 점차 평생 본 적 없는 괴이한 형태로 자라나 나를 잠식했다. 그것들의 의미조차 다시 따지고 톺아보아야 할 지경이었다. 나는 입술을 달싹였으나 어떠한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미약한 신음만 새어나올 뿐이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목소리의 주인공에 대한 궁금증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오직 아들이 게이라는 목소리의 잔흔만 머릿속을 넘어 온몸의 신경을 타고 유영했다.
이어폰을 거칠게 귀에서 뺀 건 찰나였다. 나는 이어폰을 한 뭉치로 꽉 움켜쥐었다. 그러면 들은 사실이 사실이 아니게 된다는 것처럼. 말의 내용이 진실인지 아닌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말을 전한 목소리는 사실이었다. 나는 맞은편에 앉은 여자를 쳐다보았다. 헤드셋을 낀 채 입모양을 벙긋거리며 소리없이 노래를 따라부르는 듯했다. 무슨 노래일까. 저 사람도 이 목소리를 들을까. 아니면 내 귀에만, 이 이어폰에서만 들리는 목소리일까. 나느 미동도 않고 한참 굳어 있다가 환승역을 알리는 안내음에 벌떡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차량 바깥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역사 바깥으로 나갔다.
비가 오려는 양 하늘이 우중충하게 흐렸다. 정렬한 가로수들은 심하게 몰아치는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가누기 힘들어 보였다.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두 발끝엔 무른 땅이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어딘가로 이동하고, 이동하기를 이어갔다. 반면 나는 정처없이 배회했다. 로컬 농수산물 센터를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내 앞에서 숨음으로써, 내 목표를 앗아감으로써 나를 영원히 방황케 하려는 양.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찾고자 하는 건,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로컬 농수산물 센터가 아니라 아들이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을.
머리가 어지러웠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건물 벽에 기대어 섰다. 손이 축축했다. 내려다보니 빨간색 이어폰을 쥔 주먹에 지나치게 힘이 많이 들어간 탓에 손등이 새하얗게 핏기가 가신 채 질려 있었다. 나는 이어폰을 사람들 눈에 띌지도 모르게 두었다는 사실에 놀라 얼른 코트 안주머니로 감춰두었다. 심장 가까이 위치한 그것은 또 하나의 심장처럼 뛰는 듯이 느껴졌다. 이어폰을 버려야 해. 당장.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하면 목소리가 전한 믿지 못할 진실을 피하고 영원히 묻어둘 수 있다는 듯. 그럴 거야. 나는 믿고 또 믿었다. 다시 안주머니에서 이어폰을 찾아 조심스레 꺼냈다. 그리고는 길가의 쓰레기 더미 위에 버렸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로컬 농수산물 센터를 향해 바삐 잰걸음을 놀렸다. 두리번거리며 헤맬 필요도 없었다. 가게는 지척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게 필요한 건 이거였어. 나는 생각하며 직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머릿속에서 흐릿하게 지워냈다.
대학 동창 미숙을 만난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그녀 역시 센터에서 장을 보는 중이었다. 나는 왠지 그녀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기뻐 아는 체를 하려 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녀가 나를 구원해주기라도 할 것처럼 구는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녀는 나와 달리 대학 문예창작과 교수였고, 아는 게 똑똑하고 돈도 나름 여유있게 벌었지지만 그렇다는 이유로 내가 그녀보다 못하고, 따라서 그녀에게 내 온 고민을 앞뒤 재지 않고 털어놓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때였다. 미숙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과일 매대에 서있는 내게 그녀가 알은 체를 하며 다가왔다. 진희야, 나를 부르며 반갑게 다가서는 친구를 모른 척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너도 장 보러 왔니?”
미숙이 물었다. 나는 미소 띤 얼굴로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는 탓에 긴장했다.
“아, 응. 여기서 다 보네.”
“나야 강의니 상담이니 바쁘다가 이제야 장 볼 짬이 나서 왔지. 그나저나 너 다친 건 괜찮니? 그때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병원비도 끝내 안 받고 말이야, 섭섭하게.”
그녀가 나를 팔꿈치로 나를 툭 건드렸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네 잘못도 아닌데, 뭘. 내가 밥 먹이겠다고 고집 부리다가 넘어진 거잖아.”
“그래도, 그건 경우가 아니었어.”
경우? 무슨 경우? 나는 웃고 있는 미숙의 얼굴이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과일 매대 쪽으로 시선을 돌려 사과와 귤을 뒤적거리는 사이로 그녀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나저나, 네 아들은 사귀는 여자친구 있어? 호석이 말이야.”
“여자친구? 그건 왜?”
나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 과일을 고르는 데 열중하는 척 대꾸했다.
“아니,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 예쁘고 성격 똑부러지는 여자애가 있는데 말이야.......”
미숙은 예쁘고 성격 똑부러진다는 여자애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찬사에 가까울 정도로 칭찬만 가득했다. 나는 미숙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의 말이 끝나갈 무렵 생각 하나가 머리를 번뜩 스쳐갔다. 나는 봉지에 귤을 담다 말고 미숙을 향해 휙 몸을 돌렸다. 그녀는 실컷 얘기하다 지쳤는지 어떠냐고 묻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아들한테 소개시켜준다고?”
“그래, 그렇다니까. 물론 지금 여자친구가 없으면 하는 얘기지만.”
“여자친구 없어. 내가 알기론. 아니, 없어. 없다고 하더라.”
“그럼 잘 됐네! 호석이 연락처 알려줄래? 내가 걔한테 따로 연락해서 약속 잡게.”
나는 그녀에게 대장의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아들이 여자친구와 결혼할 거라는 소식을 알려오기라도 한 것처럼.
3
아들, 대장, 그러니까 호석이는 열달을 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났다. 그 때문에 나는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울며 머리를 싸매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이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잘 버텨주고, 무탈하게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때부터였을 거다. 산후우울증이 찾아온 것은. 그것은 또 하나의 영혼처럼 몸속으로 기어들어와 내게 빙의했다. 몸 아주 깊고 작은 곳에서부터 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한 번도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알아듣지 못한다 해서 욕설이나 폭언을 퍼부은 적은 없으나(그러지 않기 위해 초인적인 자제력이 필요했다) 나는 늘 불안에 시달렸다. 혹시나 나도 모르게 그 애에게 상처를 줬거나 주게 될까봐 두려웠다.
세상이 시나브로 잿빛으로 굳어갔다. 물 샐 틈 없이 가로막힌 어둠 속에서 나는 빛을 갈구하며 몸을 버둥거렸다. 남편에게도 짜증과 화를 자주 내고 신경질적으로 행동했다. 공립고등학교 수학 교사인 그는 언제나 상황을 이성적으로 분석해 정리하려고만 했다. 그는 나를 일단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유명 의사에게 데려가려 했지만 내가 거부하자 상담사에게 데려갔다. 산후우울증을 겪는 여자들이 많이 찾는다는 의사였다. 처음 그 병원에 방문했을 적을 기억한다. 군데군데 보색으로 포인트를 준 희디흰 인테리어의 병원은 동네에 자리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컸다. 입원시설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는 나와 남편을 앉혀놓고 임신부터 출산, 그리고 이후의 과정을 상세히 묻고 전해들었다.
“종교가 있으십니까?”
의사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 거죠?”
나는 날카롭게 반문했다. 의사가 여전히 허허 웃는 편안한 얼굴로 대답을 이어갔다.
“때론 종교가 힌트나 정답이 될 수도 있어서요.”
“와이프는 아니고, 제가 교회에 다니긴 합니다만.”
남편이 나서서 대답했다. 의사는 뭔가를 적듯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는 그가 싫었다.
“오래 다니셨나요?”
“모태신앙입니다. 역시 와이프는 아니고요. 저만요.”
“아내분도 교회나 성당에 다닌 적이 있으신가요?”
“없어요.”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며 소리치듯 말했다. 그때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딱 한 번 있습니다. 임신 20주차 때, 성탄절에 제가 다니는 교회에 같이 데리고 갔죠.”
“그건 잠깐이야. 아주 잠깐. 나갔다 바로 나왔잖아.”
나는 그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그가 맞는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우린 바로 나왔죠. 근데 그때 그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목사님이 아니라 목사 ‘놈’이겠지.”
나는 힐끗 남편을 곁눈질하며 중얼거렸다. 그는 그 또한 맞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그때 목사였던 남자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뱃속의 아기가 어딘가 잘못 되었다는 식으로요.”
“그 목사 놈은 아기라고도 안 했어. 뱃속의 ‘씨’라고 했지. 쌍놈의 새끼.”
내 느닷없는 욕설은 의사의 타자 속도를 빠르게 높이는 데 기여했다. 남편이 두 손을 들어보이며 지쳤다는 듯 말을 해나갔다.
“어쨌든, 그런 ‘뉘앙스’로 말했습니다. 우리 둘다 벙쪘죠.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은 건 한참 후였습니다. 목사였던 그 남자는 나쁜 의도로 말하는 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자신이 볼 때 뱃속의 아기는(그땐 ‘씨’라고 안했습니다. 분명히요) 당신들을 힘들게 할 것이다, 왜냐면 어딘가 단단히 어긋나있기 때문에, 뭐 그런 식으로 말했지요. 와이프는 병원 검진 결과를 거론하며 우리 아이는 멀쩡하다고, 그 말을 취소하라고, 사과하라고 난리, 아니 요구했지요. 저 같아도 난리쳤을 테지만 와이프가 워낙 노발대발해서....... 그게 답니다, 선생님. 아내는 그 후로 두 번 다시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신앙? 그런 게 있을 리 없죠.”
“쌍놈의 새끼.”
나는 그땐 다 들으라는 듯 소리치다시피 크게 말했다. 남편이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적잖이 애를 먹었다. 의사는 잠을 통 못 잔다는 말에 수면제 성분이 섞인 약간의 항우울제를 처방해주었다.
처음엔 약을 꼬박꼬박 챙겨먹었다. 그러면 나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효과는 없고, 부작용만 나타났다. 두통, 변비, 속쓰림. 불면증이 심할 때만 먹으라고 한 강한 성분의 알약만 말끔히 비웠다. 다시 병원을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의사에게 ‘그 얘기’는 왜 하지 않았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그는 나와 아이에 관한 건 빠짐없이 다 얘기했다, 뭘 더 얘기해야 하냐고 따지듯 되물었다.
“그 목사 놈이 했던 ‘진짜’ 얘기 말이야. 그 표현을 안 말했잖아.”
나는 흐릿한 눈으로 정면을 노려보며 누구에게랄 것없이 말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무슨 표현?”
“‘동성애자’. 그놈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다른 말은 다 제쳐두고도, 내 아들이 동성애자일 거라고, 자기 눈엔 보인다면서.”
“처음 듣는데.”
남편이 작게 읊조리듯 대답하자 나는 발끈했다.
“처음 듣는다고? 처음? 처어음? 그 자리에 당신은 없었나보다, 그치? 나만 있었지. 나만 미쳐서 헛소릴 들은 거야. 환청을 들은 거라고. 당신 말이 맞아. 그런 거야.”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분명히 그놈이 그렇게 말했어! 내 아들이 그런 인간이라고,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 그때 못 들었다고? 그럼 지금 똑똑히 두 귀 열고 들어! 그러면 되겠네. 그놈이 그렇게 말했어. 알아들었어? 알아들었냐고.”
“알았어.”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침묵을 깬 건 남편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뭐 어쨌다고? 그저 미친 또라이 목사가 한 헛소리일 뿐이야. 내 아들이 호모라니, 말도 안 돼. 그렇게 키우지도 않을 거고 그렇지도 않아. 그건 확실해. 내 모든 걸 걸고 장담해. 당신은 걱정할 필요 없어.”
“당신이 애 키워?”
“뭐?”
“당신이 애 키우냐고. 애를 키우는 건, 하루종일 애하고 씨름하는 건 씨팔 나잖아!”
그 순간부터 그날의 기억이 끊긴다. 그날의 장면은 그렇게 휘리릭 넘어가다가 눈을 뜬 지금에서야 멎는다. 나는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세운다. 새벽이다. 어디선가 조그만 말소리가 문 틈으로 들려오는 건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