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레즈 투쟁기 3회

by 김성호

나는 창을 가린 커튼 사이로 비쳐드는 달빛을 뒤로 하며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집은 고요했다. 정적이 가둔 집안은 물 샐 틈 없이 하나의 어둠으로 응축된 상태였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소리가 가까워지고 커져만 갔다. 누구의 목소리일까. 어느 정도 소리의 윤곽이 잡힌 찰나 나는 그것이 아들 호석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렸다.

“......형, 그럴 순 없어. 알다시피 나한텐 엄마가 있다고. 형하고 사정이 달라.”

형? 나는 그 의문의 표현에 꽂히듯 온 신경을 집중했다. 대장의 방 문이 한 뼘 정도 열려 있었다. 목소리는 그곳을 통해 나를 천천히 제 주인 쪽으로 이끌었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기척을 느낀 모양인지 그 애는 목소리를 낮추고 서둘러 통화를 끊었다. 나는 재빨리 거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소파 끄트머리에 걸터앉아있기를 몇 분, 그 애가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신 대장은 다시 방으로 향하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잠이 안 오냐고 물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머뭇거리던 그 애는 내 곁으로 와 소파 등받이에 기대 앉았다.

“나도 잠이 안 와. 왜 그런지 모르겠어.”

그는 피곤하다는 듯 두 손으로 눈을 비비며 말했다. 살짝 짜증이 묻어있는 목소리였다.

“엄마는?”

“응?”

“엄마는 왜 안 자는데?”

그가 애써 희미한 미소를 그려보였다. 나는 그 애의 미소를 사랑했다.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편해지고, 안심이 되고, 그래서 자연히 스르르 잠이 오는. 나는 그 애가 내가 잠들 때까지 나를 지켜봐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나도 잠이 안 와.”

“무슨 고민 있어?”

대장이 물었다. 그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보여 나는 그 애의 손을 향해 뻗으려다 관두었다. 상황을 진지하게 만들지 말자. 어렵게 만들지 말자. 그 꿈은 아무것도 아니었어. 그냥 개꿈, 악몽에 불과해.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렀다.

“고민은 네가 있는 것 같은데? 얼굴에 다 쓰여 있어. 엄마한테 말해봐.”

“난 없는데.”

“거짓말. 내 눈엔 다 보여. 엄마 눈엔 다 보인다고.”

어렸을 때 그 애가 처음 거짓말을 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그랬을 것이다. 대장은 어떤 여자애 집에 놀러가도 되냐고 내게 묻곤 오후 아홉시 넘어 집에 돌아왔다. 하지만 다음날 길에서 우연히 그 애와 같은 반인 남자아이의 엄마와 마주쳤다. 그녀는 어제 호석이가 잘 들어갔냐며, 너무 늦게 돌려보낸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것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정말 아무렇지 않았지만....... 왜 거짓말을 했을까. 나는 같이 놀았다는 그 남자애를 몰랐다. 반에서 제일 키도 크고, 내가 봐도 잘생긴 아이였다. 집에 돌아갔을 때 그 애에게 그 같은 사실을 따져 물었을 때 대장은 엄마가 걱정할까봐 싫었다고 했다.

“뭘? 엄마가 뭘 걱정하겠어? 같은 반 친구랑 논다는데.”

“그냥. 미안해, 엄마.”

그러더니 그 애는 그 남자애하고 친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때 나는 그 애의 표정에서 무엇을 읽었나. 아마 꼭 왕자와 사랑에 흠뻑 빠진 공주 같은 얼굴이었으리라. 그 남자애는 다음 학기에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갔다. 그때 그 애는 무척이나 우울해했다. 생전 잔병치레도 하지 않던 아이가 며칠 동안 몸살을 앓았다. 나는 도통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지금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대장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무슨 말을 하려 한다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애는 끝내 말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 희붐한 베란다 바깥을 응시했다. 나는 다시 한 번 팔을 뻗어 그 애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이번에도 실패했다. 무언가가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단단한 벽 같은 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또는 감추고 있는.

“진짜 없어.”

“아까 통화하던데. 이 새벽에 누구야? 여자친구?”

나는 부러 소리내어 킥킥 웃으면서 물었다. 그 애도 나를 보고 마주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어딘가 슬펐다. 비애랄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기저의 슬픔이 생동했다.

“아니. 그냥. 그냥 친구.”

그때와 똑같았다. 그냥. 그냥 친구. 세상엔 그냥으로 변명하거나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내보이기 마련인데 그 애의 경우가 딱 그러했다. 나는 ‘그냥’ 너머에서 무언가에 옭아매여 몸부림치는 그 애를 건너다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생각에 잠겨 있는 차에 그 애가 갑작스레 생기 어린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근데 엄마. 나 독립해서 나가 살면 어떨 것 같아?”

“독립? 혼자?”

“응.”

나는 당황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런 걸 묻지. 나는 아까 엿들었던 통화 속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려 했다. ‘......나한텐 엄마가 있다고.’ 그게 무슨 뜻이었을까.

“그야, 그건 네 마음이고 네 의지지. 너도 벌써 나이가 있는 성인이니까.”

“엄마는? 엄마는 괜찮을 것 같아? 내가 그래도?”

이 아이는 내게서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걸까. 내가 무슨 말을 하기를 바라는 걸까. 어쩌면 그저 떠보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 말일 수도 있고. 나는 아들이 집을 떠나 혼자 사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전무했다.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단 한 번도 현실로써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애는 독립할 나이가 됐다. 우리는 자주 연락하겠지. 만나기도 하고, ‘본가’에 가끔 오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연락과 만남의 빈도가 줄어들고,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고....... 아니, 그 애는 그럴지 몰라도 나는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더 강한 그리움의 열망에 사로잡혀 그 애를 보고 싶어할 터였다.

“그거야 네 마음이지.”

나는 앞선 말을 되풀이했다.

“나는 괜찮아. 아빠도 있잖아. 내가 걱정 돼? 뭘 걱정하니?”

그 애의 표정을 보니 뭔가 부족하다 싶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대장은 아빠 얘기가 나오자 고개를 홱 돌려 활짝 열린 안방으로 눈길을 던졌다.

“아빠하고 엄마는 그리 사이가 좋지 않잖아. 오늘도 아빠는 외박하고.”

“그래서? 엄마가 외로울까봐 걱정하는 거야?”

“그런 것도 있고. 나도 혼자 살기는 두려워서. 룸메이트하고 같이 살면 모를까.”

그 애가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같이 살만한 애는 있어?”

“있지. 사실, 아까 전화한 친구가 걔야. 걔가 나더러 월세 반씩 내면서 같이 살자고 하거든.”

“남자애?”

“남자애지.”

“그렇지. 당연히 남자애겠지. 여자애일 리는 없지.”

나는 중얼거리다시피 말을 맺었다. 문득 집안이 으슬으슬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바람이 새나. 난방을 틀었는데도 이 지경이라니. 고장난 게 틀림없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마침 원치 않은 장면들이 머릿속으로 잠입한 후였다. 그 애의 예정된 룸메이트라는 남자애를 상상했다. 얼굴은 초등학교 때 전학 갔던 남자애 얼굴로 바뀌고, 도톰하고 가느다란 입술이 대장의 입술에 맞닿는다....... 나는 생각을 떨치려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몇 번이고 그랬다.

“그럼 난 다시 더 자러 들어간다? 엄마도 잘자.”

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벽을 맞바라보다가 뒤늦게 뒤를 돌아보았다. 방으로 사라지는, 늘어진 그 애의 긴 그림자 자락을 눈으로 좇았다. 이윽고 어둠 한 터럭만 남긴 채 그림자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4

남편은 대장이 독립하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는 내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심히 젓가락으로 소세지 야채볶음에서 소세지만 골라먹을 뿐이었다. 이내 나는 그의 손등을 탁 치며 반찬 그릇을 빼앗아갔다. 아들은 늦잠을 잔 탓에 아침도 먹지 않고 출근한 지 오래였다. 그 애는 반년 전 엘리베이터를 설계하는 대기업 회사에 비정규직 인턴으로 입사했다.

나는 반찬 그릇을 돌려달라고 시위하는 남편을 채근했다.

“내 말에 먼저 대답해. 어떨 것 같냐고.”

“뭐가 어떨 것 같아?”

남편이 듣지 못했다는 듯 태연히 반응했다.

“대장이 말야!”

“대장이 누구야?”

“호석이잖아.”

“아직도 대장이라고 불러? 애 나이가 몇인데.”

그가 혀를 차며 다른 반찬을 향해 눈독을 들였다. 눈빛이 탐욕스러웠다.

“나는 그렇게 불러. 나한텐 아직도 대장이니까.”

“호석이가 혼자 나가 살고 싶어하면 그러라 하면 되지. 나이가 있는데.”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마치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어제 갑자기 그러더라니까? 그것도 새벽에.”

“새벽에?”

문득 남편이 놀라 되물었다.

“그래, 새벽에. 오밤중에.”

“잘됐네. 새벽엔 머리가 맑아지고 생각이 정리되는 법이니까.”

그 말에 나는 남편을 노려보았다. 신경질이 났다. 매사 그런 식으로 진지하지 못한 태도로 대화를 이어가는 그가 마음에 드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못이기는 척 소세지 반찬 그릇을 내려놓았다.

“당신은 호석이가 나가길 원해?”

그가 나를 흘깃 올려다보았다.

“지가 나가고 싶으면 나갈 수도 있는 거지. 당신이 애기마냥 감싸니까 별 것도 아닌 일로 지금 이렇게 반찬 그릇 빼앗고 유난을 떠는 거야. 남들한텐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라고.”

“그렇지. 평범하고 익숙하긴 하지. 그런데 혼자가 아니라면?”

나는 중얼거리듯 나직이 물었다.

“혼자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룸메이트를 구해 살겠다잖아. 혼자는 싫은가봐.”

“임신한 여자애 데리고 동거한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 그러라 그래. 성격만 잘 맞는 친구면 됐지.”

“말을 그렇게 하냐, 당신은.”

재차 반찬 그릇을 빼앗을까 하다가 초가공식품은 몸에 안 좋다고 꽥 소리치는 것으로 대신했다. 나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아들에게서 연락이 온 건 유튜브로 고민 상담을 해주는 내용의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던 와중이었다. 남편은 교사연수 때문에 출장을 갔고, 집에는 나 혼자였다. 그때나마 잠시 그 애의 생각을 잊고 있던 차였다. 그러다 어딜 감히 그러냐는 듯 핸드폰 벨이 울리며 ‘대장’이라 적힌 아들의 핸드폰 번호를 화면에 띄웠다. 한창 일할 시간 아닌가. 나는 영상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엄마, 엄마가 미숙 아줌마한테 내 번호 가르쳐줬어?”

대장은 화가 났는지 한껏 목소리가 거칠었다.

“아, 응. 미숙이, 걔가 너한테 여자 소개시켜준다고 해서 알려줬지.”

“지금 일 때문에 바빠죽겠는데 무슨 여자야? 그리고 나 애인하고 헤어진지 몇 달도 안 됐어. 그걸 왜 알려줘?”

“그 여자애한테 전화 왔니? 뭐래? 예쁘고 성격도 좋다는데.”

“엄마! 아무튼 난 지금 연애 생각 없어.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고 아줌마한테 전해줘. 끊는다.”

내가 뭐라 말을 이을 틈도 없이 통화가 종료됐다. 나는 천천히 일시정지된 유튜브 화면으로 돌아간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난 지금 연애 생각 없어.’ 그 애는 그렇게 말했다. ‘나 애인하고 헤어진지 몇 달도 안 됐어.’ 그렇게도 말했고. 여자친구가 있었던 걸까? 몇 달이란 시간차를 아무리 길게 잡아도 근 몇 년 새에 그 애의 입에서 여자 얘기가 나오는 걸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면 그 사이 여자친구가 있었던 걸지도. 그 생각에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달뜬 몸이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걱정과 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다. 그렇지, 그 애는 바쁘고, 돈 없는 인턴이고, 동시에 독립하고 싶어하는 나이의 남자애지. 당연히 룸메이트하고 살 수도 있지. 그런 거야. 거기까진 괜찮았다. 모든 게 해결된 것 같았다. 길가 쓰레기통에 버렸던 이어폰이 갑자기 머리를 스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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