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어폰 생각이 갑자기 왜 떠오르는 걸까. 아니, 엄밀히 말해 나는 이어폰이 아니라 그 이어폰의 목소리가 전한 말에 신경이 쓰였다.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아들이 동성애자라고 했다. 게이, 그러니까 요즘엔 퀴어라 그러나. 어째서 그런 말을 들은 걸까. 유튜브 영상에 잘못 녹음된 소리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아제르바이잔의 시골 아주머니한테서 게이가 웬 말인가. 나는 목소리에게 따지고 싶었다. 네가 뭘 안다고. 대장은 그렇지 않았다. 그럴 리 없었다. 나는 다짐하듯 그 말을 속으로 외었다.
나는 마저 유튜브 영상을 재생했다. 새로운 사연자가 나타났다. 짧게 친 머리의 어중간한 키를 가진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자신이 일본에 사는 파일럿이라고 밝힌 그는 고민이 뭐냐고 묻는 상담사 역할의 연예인들에게 느닷없이 말을 꺼낸다.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그 때문에 아버지와 반목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풀 수 있는지 고민이라고. 답을 얻으러 온 건 아니라고. 두 분(그러니까 상담사 연예인)은 결혼한 이성애자이니까 분명 답에 한계가 있을 거라고도. 나는 전화가 오지도 않았는데 영상을 일시중지했다. 어쩜 타이밍도. 요즘 알고리즘이 발달했다더니 귀신 같이 이 기계 덩어리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이런 영상을 추천 탭에 띄웠던 걸까? 그러나 망상이었다. 순전히 내 의지로 즐겨 보던 예능 영상을 틀었을 따름이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갑자기 자신이 동성애자라 공개 커밍아웃한 남자가 나타난 거고. 나는 망설이다 유튜브를 꺼버렸다.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거실 시계로 눈길을 돌렸다. 오후 열두 시가 막 지난 즈음이었다. 점심 때이니 점심을 먹어야지. 나는 생각하며 책상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허정허정 두 다리를 움직였다. 이어폰 생각은 새까맣게 잊혔다.
5
출장을 갔다온 남편은 예정보다 하루 늦게 귀가했다. 내가 왜 이렇게 늦냐고 물으니 일정이 미루어져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서로 무심한 나와 남편이었지만 요즘 따라 그의 행동이 어딘가 어긋나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신경과민일까. 그러나 그에게서 낯선 여자의 향기나 징후를 발견하진 못했다. 그저 마음이 싱숭생숭 그랬다. 그는 밥을 차리던 내 등뒤에 대고 치킨을 배달시켜 먹자는 말을 꺼냈다.
“기껏 저녁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웬 치킨?”
나는 투덜거리며 수건에 물기 어린 손을 꼼꼼히 닦았다.
“출장에서 먹은 치킨 브랜드가 있는데 맛있더라고. 우리 동네에도 있더라.”
“평소엔 호석이가 먹자고 할 때도 싫다던 사람이.”
“내 이가 안 좋으니까. 걔는 튀김옷 딱딱한 곳만 시켜먹잖아. 바삭하다면서. 여긴 달라. 튀긴 게 아니라 구운 치킨이야. 사람들도 맛있다고 하더라고.”
그가 그 맛을 다시 떠올리며 음미하는지 낯에 희미한 미소마저 어렸다.
“호석이가 임플란트 해줬잖아. 그래도 씹기 힘들어?”
“힘들어.”
“엄살은.”
“당신은 꼭 그러네. 엄살이 아니라 진짜야.”
그는 나를 원망하는 시선으로 쳐다보다 핸드폰 화면에 눈길을 붙들었다.
“거긴 무슨 연수원이 그래? 밥도 안 주고 치킨 시켜먹으라 하고.”
“이 사람아, 때 되면 삼시세끼 다 챙겨줬어. 밤에 우리끼리 따로 나가서 사먹은 거지.”
“‘우리’? 우리가 누군데?”
“누구긴 누구야, 동료 교사들이지.”
나는 말을 멈추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당연한 사실을 의심으로 캐묻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이 그럴 리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 순간이었다. 남편은 치킨을 주문하고는 위로 기지개를 펴며 지나가듯 툭 말을 흘렸다.
“재성이는 명예퇴직 취소한대.”
“갑자기? 왜? 명퇴하고 시골로 내려간다매.”
나는 그의 옆에 앉아 TV 전원을 켜며 말했다.
“돈을 더 벌어야겠대. 딸 때문에. 딸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가봐.”
“그 사람 딸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겼어?”
“딸이 레즈비언이래.”
“뭐?”
나는 한 대 얻어맞은 듯 굳은 표정으로 남편을 돌아보았다.
“얼마 전에 그렇게 말했대. 외식 자리에서. 그 말 듣고 재성이는 밥 먹다 말고 혼자 집으로 먼저 돌아갔다는데. 충격이 큰가봐. 알고보니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도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대. 여태까지 속인 거지. 얼굴도 한 번도 안 보여주더니만. 자식한테 뒤통수 맞은 거지.”
그는 말을 마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소소 소름이 돋는 숨결이었다.
“그거랑 퇴직하는 거랑 뭔 상관이야?”
“전에는 자기 노후만 생각하면 됐는데, 이젠 딸 미래까지 책임지게 됐다고 그러네. 우리나란 동성애자들끼리 결혼 못하잖아. 그래서 여차하면 미국으로 보낼 생각도 하고 있나봐. 근데 걔 딸이 영어를 잘하냐, 뭐 딱히 엘리트이길 하냐, 아니면 전문기술이 있냐? 아무것도 없잖아. 고작 지방 사립대 국어국문학과 나온 거 빼곤.”
“그래도 그렇게 말할 건 아니지.”
나는 은근히 그의 말이 거슬려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남편이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 같은 여자라고 딸 편 드는 거야?”
“무슨 같은 여자야, 같은 여자긴. 나는 남자 좋아해. 레즈비언 아니라고.”
“여튼, 갑자기 돈이 많이 들게 생겼다나. 자식들 믿을 구석 하나 없어. 다 의심해봐야 돼.”
“우리 호석인 아니거든.”
내가 소리치듯 말했다. 그는 깜짝 놀라며 왜 소리 지르냐고 화를 냈다.
“뭐가 아니라는 거야? 하나하나 다 의심해봐야 한다니깐.......”
남편이 혀를 차며 말끝을 흐렸다.
“호석이는 의심할 거 없다고. 애가 착실하잖아.”
“누가 그런 걸 의심한대? 걔도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게 잘 지켜봐야 돼.”
“나이가 서른 가까워지는데 우리가 지켜볼 게 뭐 있어?”
“재성이 딸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지켜봐야 돼.”
“호석인 아니라니까.”
나는 다짐하듯 발음에 힘을 주었다.
“그래, 아니다, 아니야. 네 아들 잘났다. 잘났어.”
그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남편은 배달이 온 모양이라며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다가섰다. 곧이어 치킨 냄새가 고소하게 풍겨왔다. 그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접시며 음료수 컵을 세팅하더니 얼른 먹게 오라고 거실의 나를 손짓해 불렀다. 나는 마지못해 일어나 식탁으로 다가갔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예의 그 장면이 자꾸만 강박적으로 머릿속을 점거했다. 같은 남자와 키스를 하고 살갗을 맞대는 호석이 그 장면의 주인공이었다.
6
미숙은 미안하다고, 알고 봤더니 자신이 호석에게 시켜준다는 학생 여자애에게 아직 정리하지 못한 남자친구가 있었다고 이어지긴 어렵겠다고 말을 덧댔다. 나는 대장이 그에 화를 낸 얘기는 꺼내지 않은 채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오늘의 로컬 농수산물 센터에 그녀는 없었다. 세일한다는 광고 문자를 보고 달려간 건데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사가고 난 뒤였다. 근처 보건소로 정기 건강검진을 가는 길에 잠시 들른 것이었다. 소득이 없어도 별 아쉬움은 없었다. 나는 빈 장바구니를 팔에 건 채 가게를 나왔다.
로컬 농수산물 센터 앞에 찐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가 나와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할머니였다. 낡고 두꺼운 패딩을 입은 차림으로 흙 묻은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그 할머니는 설탕이나 사카린도 많이 넣지 않고 적당하게 쪄낸 옥수수를 팔았기에 과거 자주 사먹었더랬다. 나는 망설임 없이 할머니에게서 옥수수수 세 개들이 두 봉지를 샀다. 그 할머니가 오랜만이라며 아는 체를 했다. 그러면서 한 봉지를 덤으로 끼워주었다.
“고맙습니다. 많이 파세요.”
“저거 안 가져가?”
나를 보며 웃던 할머니의 얼굴에서 일순 미소가 가셨다.
“뭘요?”
나는 할머니가 가리키니 손가락 끝을 따라 눈길을 옮겼다. 길가의 쓰레기 더미였다. 인근 상인들이 아무렇게나 내놓아 쌓아두는.
“이어폰. 이어폰 가져가.”
“네?”
“안 가져가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할머니가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할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다시 물었을 때, 할머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쳐들고는 “응? 오늘도 팔아줘서 고맙수. 많이 드셔. 옥수수 몸에 좋거든. 그나저나 매번 같이 오던 아들내미는 어디 갔나봐. 오늘은 안 보이네.”
이어폰에 대해 다시 물었지만 할머니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당황한 얼굴로 되물을 뿐이었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쓰레기더미에 이르렀을 때 걸음이 절로 멈춰섰다. 구름들 사이로 빼곰히 고개를 내민 태양의 햇빛을 받아 붉게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어폰이었다. 그 빨간색 이어폰. 의아했다. 벌써 버린 지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어째서 그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건지. 쓰레기를 비우지도 않았나? 나는 팻말에 적힌 쓰레기 수거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주에 한 번 쓰레기 수거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이어폰은, 그때 그 자리에 있는 걸까.
나는 옥수수 파는 할머니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가게에서 나온 손님 몇이 옥수수를 잔뜩 사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어폰으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천천히 손을 뻗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집어든 이어폰은 그 어느 때보다 낡아보였다. 성한 곳이 없었다. 원래도 이랬나. 마치 쓰레기 더미 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날이 갈수록 썩어간 것 같았다. 나는 보건소에 정차하는 버스를 찾아 안내판을 살핀 뒤 곧바로 온 48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남자애가 내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남학생은 에어팟을 낀 탓에 내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버스 엔진음이 오늘따라 심한 소음으로 다가왔다. 뒤에 앉은 어떤 아저씨가 목청껏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여러 모로 신경이 곤두선 채로 나는 주머니 안의 이어폰을 만지작거렸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덧 나는 이어폰을 양 귀에 꽂고 있었다. 노래도, 어떠한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그땐 착각이었어. 영상이 겹쳐 재생돼서 들렸을지도 모르지. 이어폰을 빼려는 찰나였다. 새된 웃음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돌아온 것이다.
-오랜만이야. 내 목소리 듣고 싶지 않았어? 순애 목소리 말이야.
“난 순애가 누군지 몰라.”
“몰라? 모른다고? 정말 까맣게 잊어버렸구나. 괜찮아. 들들 볶지 않을게.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도 내 장점 중 하나거든. 호석인 잘 지내? 네 ‘대장’ 말이야.”
“우리 아들 얘기 꺼내지마. 이어폰 빼버릴 거야.”
내가 홧김에 왼쪽 이어폰을 빼버리자 아직 꽂혀있는 오른쪽 이어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어폰은 상관없어.
“뭐?”
-이어폰을 빼든 안 빼든, 이어폰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고. 이어폰이 없어서 내 말을 못들은 것 같아? 아니야.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날 그때처럼. 아무 말 하지 않았다고. 침묵했다고. 입 꽉 다물고, 재봉틀에 대고 박음질한 것처럼.
나는 다시 이어폰을 꼈다. 그런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덜 이상하게 보이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너 누구야?”
-순애.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걱정하지 마. 시간이 지나면 생각날 거야. 꽤 깊은 곳에 묻어두고 묶어둔 탓이야.
“더이상 나타나지마.
내가 미친 건가? 나는 생각했다. 환청이 들리다니. 목소리는 이제 이어폰이 아니라 그 너머, 바깥 어딘가에서, 사위를 장악하며 울려 퍼졌다. 나는 점차 빠져드는 무력감에 지쳤다. 마침 보건소 근처 정류장이 가까워져 나는 하차벨을 눌렀다.
-난 내 의지로 나타나고 마는 게 아니야....... 전부 네 의지고, 네 뜻이지. 대답을 해. 호석인 잘 지내냐니까? 난 걔가 궁금해. 네가 끝내 낳아버린 네 아들 말이야.
“잘 지내. 아주 잘 지내. 그러니까 궁금해하지 마. 네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난 너랑 아무 인연 없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가만히 내버려 둬.”
버스가 멈추어섰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보건소를 향해 두 발을 놀렸다. 목소리는 잠시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순애를 떠올리려 애썼다. 순애가 누구지. 과거 나를 알던, 내가 알던 사람인가? 이름의 어감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여자인 것 같았다.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쉬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목소리가 다시 기지개를 펴듯 신음과 함께 말을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