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받아들인 거야? 네 아들이 호모 새끼라는 사실을?
“아니야. 호석인 아니야.”
내 목소리는 점차 커졌다.
-부정하지 마. 변하지 못할 진실이야. 사실, 이것 말고도 알려주고 싶은 게 더 많은데, 참으려고 노력해볼게.
목소리가 킥킥 웃었다. 나는 신경을 긁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에 목덜미가 서늘했다.
“정체가 뭐야? 왜 나한테 이러는 건데?”
-네가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지. 우리의 약속을.
“난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약속을 어겨? 왜 나한테 이러는 건지 이해가 안 돼.”
-나를 불러낸 건 너야. 누굴 탓할 생각하지 마.
나는 이어폰을 줍던 순간을 기억해냈다. 그때 줍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그걸 흘린 여자는 누구일까. 내 게 아닌 걸 주워 쓰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이어폰을 빼서 가방 깊숙이 밀어넣었다. 건물 외벽에 쓰인 ‘일산동구보건소’라는 글자가 시야에 들어찼다. 나는 그리로 서둘러 들어가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이어폰을 끼지도 않았는데 목소리는 그 뒤에도 들려와 나를 괴롭혔다. 나는 남의 걸 탐한 죄라고 생각했다. 내 게 아닌 남의 것을. 주인을 찾아 돌려주어야겠다는 데 생각이 다다랐다.
건강검진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 검사도 이루어졌다. 수면내시경이라 끝날 즈음 아들이 보호자로 데리러오기로 되어 있었다. 맨 마지막에, 의무적으로 정신건강 진단을 받는 과정에서 나는 의사의 물음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었다. 의사 역시 그러리라는 걸 예상했다는 듯 대충 지나가듯 말을 툭툭 흘렸다.
“궁금하신 거 있나요?”
의사가 물었다. 그는 젊은 여자로, 명패에 ‘황순애’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순애. 나는 그 이름과 의사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어폰 속 그것과는 판이했다. 그럼에도 순애라는 이름이 어떤 메시지, 계시를 주는 듯해 나의 육감이랄지 직감이 진동하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나는 어째서 당신이 순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럼에도 참았다. 난 정신병자가 아니니까. 환청 따위 듣는 미친 여자가 아니니까. 나는 입술을 달싹이다 끝내 토해내듯 말했다.
“제 나이쯤 되면, 그러니까 50대 중반 정도 되면 우울증이나 건망증 같은 증상도 흔한가요?”
정작 묻고 싶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질문이었지만 그게 어떤 실마리가 됐으면 했다. 무심한 표정으로 내 말을 들은 의사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그렇죠. 아무래도, 어디 보자, 홍진희님 나이에 이르면 그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죠. 혹시 그런 증상들이 심한가요? 그러면 약간의 의료적인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아뇨, 아뇨, 심하진 않아요. 근데....... 다른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나요?”
“다른 증상이요? 예를 들면요?”
의사의 미소가 굳어지며 자못 심각해졌다.
“예를 들면.......”
나는 말과 표현을 고르기 위해 애를 썼다. 환청이 들린다고는 할 수 없어. 날 미친 여자로 볼 테니까. 근데 그게 정말 환청일까? 하지만 그 목소리의 정체는 환청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었다. 의사는 무언가를 요구하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대답하려다 말았다. 아무것도 아니라도, 감사하다고 말을 흩뿌린 뒤 재빨리 진료실을 나섰다. 등뒤에서 건강검진 결과는 2주 후에나 우편과 카카오톡으로 도착할 거라는 의사의 말이 건너들렸다.
7
나는 틈 날 때마다 핸드폰으로 환청, 낯선 목소리와 같은 단어를 집어넣은 표현을 검색하는 데 집착했다. 그때마다 별다른 소득은 없고, 괴담 같은 이야기만 잔뜩 발견할 수 있었다. 조현병의 전조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그럴 리가. 볼일을 마치고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 나는 조금 추레하고 두 눈은 잠을 못 잔 탓에 초점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멀쩡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괜찮아. 나는 멀쩡해. 정상이야. 하나도 잘못된 거 없어. 나는 그렇게 나를 타이르고 안심시키기에 급급했다.
토요일이었다. 대장은 팔걸이를 베고 거실 소파에 드러누운 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방에서 노트북을 가져와 그 애 근처에 앉았다. 무릎 위에 올려둔 노트북을 열었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올려야 할 블로그 일기를 쓰기엔 충분할 터였다. 남편은 얼마 전에 수학교사 등산 모임에 가입했다며, 등산을 하러 아침 일찍 집을 나간지 오래였다. 그때 나는 무심코 나도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어째서 그런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는지 몰랐다. 나는 생전 산이라곤 좋아해본 적이 없는 데다가 사람 많은 무리에 끼는 건 질색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간다고?”
그가 떨떠름한 얼굴로 되물었다.
“응. 아, 아냐. 됐어. 당신 혼자 가.”
“교사들만 모이는 자리야. 당신이 가면 좀 그렇지.”
그는 마치 나를 창피해하는 듯한 어투였다. 나는 괜한 말을 했다 싶어 얼른 나가라고 재촉했다. 요즘의 나는 뭔가 이상했다. 기류가 그렇게 흘렀다. 이젠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모르는 새에 무언가가 ‘침입’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나는 키보드에 두 손을 올렸다. 하염없이 뻔한 말만 글로 지껄이다 이내 고개를 들고 그 애를 돌아보았다. 대장은 핸드폰의 무언가에 심각하지만 흥미로운 얼굴로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뭘 그렇게 보냐고 물었다. 대장이 내 말에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유튜브라고 짤막하게 대꾸했다.
“무슨 유튜브?”
나는 물었다.
“다큐. 생로병사의 비밀.”
“어머, 그런 건 왜 봐? 너 어디 아파?”
“아니. 재밌잖아. 치매로 인해 환각, 환청에 시달리는 사연이 나와. 예방할 수 있는 방법도 자세히 알려주고. 같이 볼래?”
“누가 치매에 걸렸어?”
“그런 건 아니지만, 미리 알아두면 좋잖아.”
“‘미리’ 알아두다니?”
“그거야, 누구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네 엄마나 아빠가 치매에 걸리기라도 한다니?”
내 말에 그 애가 나를 의미심장한 눈길로 쳐다보더니 벌떡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엄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난 그냥 보는 거야. 아무 의도도 이유도 없어. 엄만 멀쩡하잖아. 아빠도 그럴 테고.”
“그래. 그러니까 그런 거 자주 보지 마. 괜한 걱정만 쌓인다.”
나는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기 상태로 돌아간 노트북의 검은 화면에 비친 나는 지나치게 예민해져 이목구비가 한껏 성난 모습이었다. 나는 일기를 쓴 뒤 업로드했다가 다시 수정 버튼을 눌러 비공개로 돌렸다. 아무래도 바깥에, 사람들에게 공개하기엔 이른 내용인 듯했다. 혹시나 남편이나 그 애가 볼 수도 있으니.
“아참, 나 축하받을 일 생겼어.”
아들이 내 옆으로 내려와 앉으며 말했다. 나는 시큰둥하게 뭐냐고 물었다.
“애인 생겼어?”
“여자 생겼다고?”
“그치. 사귄 지 일주일 됐어.”
“네 나이 땐 당연하고 흔한 일이 아니니. 뭘 축하까지야. 고등학생도 아니고.”
“결혼 언제 하냐고 묻지나 마.”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건데?”
“엄마!”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애를 쳐다보았다. 아들, 대장, 호석은 어디까지나 사랑스러운 내 아들이었다. 한 치의 틀림도 없는 정상적이고 완벽한 아들. 우리 집엔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래야만 했다. 물론 그 ‘집’ 안엔 나도 포함되었다. 나는 점심으로 중국집이냐 배달시켜 먹을까, 아들에게 제안했고 그 애는 좋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내 돈으로 시키라는 거지, 하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전화벨이 울린 건 그때였다. 낯선 번호였기에 받지 않으려다 ‘010’이 마음에 걸려 한참 후에야 통화 버튼을 눌렀다. 스피커 너머 목소리는 이내 내 이름을 물으며 신분을 확인하고는 자신이 가덕고등학교 25기 졸업생 동창회장이라면서 동창회 모임 때문에 연락했다고 말을 이었다. 나는 동창회? 하고 중얼거렸다.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당시 반 친구들을 포함해 기억 속에 남은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는 동차회장이라는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그녀는 깜빡했다며 얼른 자신의 이름을 읊었다. 선미. 기억이 날듯 말듯 했다.
“어쨌든, 날짜나 장소는 아직 정하는 중이야. 참석 의사는 있는 거지?”
어느새 그녀는 내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졸업생 동기라고 그러는 걸까. 나는 어쩐지 불쾌해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 반응이 달갑지 않았는지, 그녀는 비장의 카드라는 듯 ‘순애’도 올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순애? 순애라고?
“순애가 누군데?”
나도 자연스레 그녀를 따라 말을 놓았다.
“어머어머, 너 순애 기억 안 나니? 둘이 제일 친했잖아. 걔도 온대. 근데 정말 기억 안 나?”
“비슷한 이름이 하도 많아서.”
“하긴, 순애만 해도 두 세명 됐으니까. 여튼 걔도 온대.”
내가 순애를 안다고 해도 그 순애가 그 순애인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핵심은 쏙 빼놓은 채 동창회장이라는 여자는 걸걸한 목소리로 오는 걸로 알겠다고 외치듯 덧붙이고는 전화를 끊었다. 동창회라니. 벌써 그런 나이가 된 걸까. 가서 뭘하지. 나는 딱히 할 게 없었다. 남편 자랑도, 아들 자랑도 ‘자랑’이라 하기엔 어딘가 구색 없고 밋밋했다.
“누구야?”
화장실을 갔다온 대장이 부엌에서 물을 따라 마시고는 물었다.
“응. 동창회 연락.”
“동창회? 그런 데 나가는 사람이 아직도 있나.”
“아직 있기야 하지. 근데 나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안 나갈 것 같아.”
“왜? 그래도 있으면 나가면 좋지 않나.”
그 애가 중얼거렸다. 일순 나는 ‘순애’에 생각이 미쳤다. 곧이어 목소리의 형태로 자신이 순애라고 밝힌 그것이 한 말도. 그것은 분명 자신이 순애라고 했다. 순애가 기억나지 않냐고. 그때부터 나는 순애라는 하나의 비밀에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 어린 충동을 느꼈다.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괴상망측하고 끔찍한 말을 속삭이는 그것에서 벗어나려면 그 ‘순애’와 직접 대면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슨 실마리를 찾을지도 몰랐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들어 통화 내역을 확인했다. 가장 최근에 ‘010’으로 온 번호를 ‘동창회장’이라고 새 연락처로 저장했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마치 풀리지 않던 숙제를 푼 기분이었다. 뒤이어 나는 이제 다 잘 될거라는 막연한 낙관에 젖었다.
그 찰나 현관 도어록에서 비밀번호 눌리는 소리가 나더니 남편이 나타났다. 씩씩거리고 있었다. 무언가에 잔뜩 분노가 치민 것처럼 보였다. 나는 저녁 먹고 들어올 거라는 그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그의 등장이 다소 뜬금없고 놀라웠다. 나는 무슨 일이냐고, 비도 오지 않는데 등산이 취소 됐냐고 물었다. 빈정거리는 기색 하나 없는 말이었는데도 그는 내가 손뼉 치며 좋아한 것처럼 빈정 상한 낯으로 싸움이 났다고 했다.
“싸움? 무슨 싸움?”
“동료랑 싸웠어. 에이, 그년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
그러고서 그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 나를 뒤로 하고 외투를 벗은 뒤 욕실로 향했다.
“네 아빠 왜 저런다니?”
나는 아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대장은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다시 핸드폰에 열중했다.
8
동창회 장소는 대전 궁동의 한 대형 술집이었다. 대장이 티켓을 끊어준 KTX를 타고 모임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다. 나는 그 유명하다는 성심당에 한 번 가보려다 주말이라 줄이 긴 것을 보고는 포기했다. 대기했다 빵까지 사서 갔다간 분명 모임 시간에 늦을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술집에서 조금 떨어진 모교를 돌아보기로 했다. 택시를 타지 않고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수십년 전 그날이 머릿속에 오롯하게 되살아났다. 거리 풍경은 많이 변했지만 정취는 그대로였다. 손끝에 세월이 간직한 오래된 나이테의 표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불에 덴듯 놀라 서둘러 손을 거두었다. 마치 자신을 건드리지 말라는 듯, 찾지 말라는 양 시간이 경고를 보내는 것처럼 불안이 찾아왔다. 낙관은 어느새 시들어 떨어져 바닥에 아무렇게나 밟히는 먼지로 전락했다. 이제 믿을 건 ‘순애’ 뿐이었다. 조금 후면 그녀가 나타나 이 모든 의문을 풀어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