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레즈 투쟁기 6회

by 김성호

모교는 외관이 몇 차례 변화를 거친 모양인지 많이 변해 있었다. 예의 그 잿빛 콘크리트 벽돌 덩어리는 어디 가고, 알록달록한 외관과 증축한 건물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운동장엔 인조 잔디가 깔렸고 오래된 벽돌 담도 연두색 철제 울타리로 교체된 상태였다. 보고도 기억나는 게 딱히 없었다. 수업중인지 단순한 몇 개의 음으로 구성된 짤막한 종소리가 이따금 흘러나왔다.

나는 조심스레 교문 안으로 들어섰다. 외부인은 행정실로 들어 출입증을 받아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무시했다. 괜찮겠지. 나는 여기 졸업생이니까. 그것 외엔 아무런 자격도 없었지만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운동장의 낡은 철제 운동기구들은 철거됐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물이 새 것인 축구 골대만 넓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 운동장 양쪽에 버티고 서있을 뿐이었다. 그 외엔 텅 비어있었다. 바람이 불자 인조 잔디는 뻣뻣한 몸을 잠시 휘었다 폈다. 나는 부러 걸음마다 발에 힘을 주었다. 그것을 짓밟고 싶었다. 우리 때에 불던 흙먼지가 지금은 불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신기하고도 두려웠으며 한편으로 마음 한 구석이 공허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깎지 않은 새하얀 수염이 턱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노인이 불쑥 나타났다. 그는 보안요원 명찰을 달고 있었다. 재학 시절 수위 아저씨는 아니었지만(이미 나이 들어 죽지 않았을까), 어쩐지 묘하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얼굴이었다.

“아, 여기 졸업생인데....... 그냥 둘러보려고요.”

“졸업생이더라도 외부인은 행정실에 가서 허가를 받으셔야 합니다.”

“아, 네....... 그냥 다음에 오겠습니다.”

다음은 없었다. 다시 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주위를 둘러본 한순간 1층 중앙현관을 달려나오는 옛날 교복 차림의 여자애를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여자애는 보안요원의 뒤를 빠른 속도로 지나쳐가더니 머잖아 시야에서 벗어났다. 나는 그쪽으로 좇은 시선을 보안요원에게로 돌렸다. 그는 여전히 유심히 나를 살펴보고 있었다. 의심 어린 눈빛이었다.

“학생들이 수업중인가요? 제가 괜한 시간에 왔나 봐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방학입니다. 학생들은 학원에 가있겠지요.”

“아까 종소리가 울렸는데요.”

“잘못 들으셨을 겁니다. 알림 시스템은 꺼둔 상태이니까요.”

“그럼 아까 그 애는.......”

“‘그 애’요? 현재 학교에 학생은 없습니다. 저밖에 없어요.”

내가 들었던 종소리와 아까 나타난 여자애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 때는 건물 중앙 현관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는데. 홀연히 그곳에 나타난 아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보안요원에게 목례를 한 뒤 교문에서 멀어졌다. 학교 주변을 잰걸음으로 빠르게 둘러보았지만 그 애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낼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숨이 차 호흡이 가빴다. 들숨날숨이 뒤엉킨 탓에 잠시 두 무릎에 양 손을 짚고 선 채 쉬어야 했다. 괜히 왔어.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모교에 온 게 괜히 혼란과 불안만 가중시킨 듯했다. 나는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택시를 불렀다. 모임 시간까지 30분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형 술집의 이름은 ‘고구려 식당’이었다. 가게 간판은 군데군데 녹슬어 닳은 것으로 오랜 시간을 버틴 흔적을 고스란히 내보였다. 이름도 어쩜. 저렇게 낡았을까. 학교를 다닐 적에도 와본 적 없는 곳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가게 앞을 서성였다. 썬팅지를 발랐는지 가게 안을 들여다보기 힘들었다. 문이 닫혀있는데도 왁자한 소리가 안에서 여과없이 새어나왔다. 나는 가게 문을 천천히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둘, 셋, 넷, 짝을 이루거나 한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가게 안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어느 자리가 가덕고 25기 졸업생 동창회 자리인지 알지 못했다. 동창회장이라는 애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보려는 찰나였다. 바투 다가온 한 여자가 내 팔을 붙잡으며 아는 체를 했다.

“왔구나, 진희! 진희 맞지? 그때 얼굴 그대로 남아있네. 이리로 와. 여기야.”

나는 뭐라 답할 새도 없이 여자에게 이끌려 가게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운 단체석으로 다가갔다. 몇 명 없었다. 다섯 명 정도. 십수 명, 아니 그 이상을 예상한 나로서는 당황스런 일이었다. 여자는 자신이 연락을 돌린 동창회장이라며, 박선미라고 재차 자신을 소개했다. 핸드폰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보다 한층 더 엷은 목소리였다. 나는 곁의 사람들을 일별했다. 모두 낯설었다. 스스로가 속한 적 없는 무리에 갑자기 끼어든 이방인처럼 여겨졌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도 인사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아는 체를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이름이 생각나거나 낯이 익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 남자 네 명과 여자 두 명.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꼭 내가 오기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것 마냥 굴었다. 박선미가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너 오기 전에 쟤들 싸웠거든.”

“무슨 일로?”

나는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순애 때문이야. 남자애들이 순애가 자기를 좋아했었다는 둥, 자기가 순애하고 애들 몰래 비밀연애를 했다나 뭐라나.”

“그런 일이 있었어?”

“나도 모르지. 지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뿐이야. 순애 오면 물어봐야겠다.”

선미가 웃으며 대꾸했다.

“근데 여자애들은 왜?”

나는 아무 말 않고 화장을 고치거나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여자들을 힐끔 쳐다보았다.

“남자애들한테 헛소리라 하더라. 순애는 그런 적 없다고. 친구도 거의 없이 저 혼자 잘난 맛에 사는 여자애였다고.”

“그런가.”

순애의 얼굴을 봐야 뭐든 기억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애가 순애일지 확신은 없었다. 과거엔 반 아이들이 오륙십명 이상이었고 그 안에 동명이인은 흔했으므로.

나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 내 옆의 다른 사람들은 저희들끼리 떠들기만 할뿐 특별히 내게 주의를 기울이거나 따로 말을 걸진 않았다. 나는 가방을 품에 안은 채 언제든 일어나 떠날 사람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었다. 잊을만 하면 선미가 나를 챙겨주었지만 사람들과 통성명을 할 때도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릴 뿐 아는 체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쯤 되자 나는 어서 빨리 순애가 나타나기를 바랐다. 얼른 나타나 이 상황에서의 나를 구원해주기를. 하지만 그건 구원인 동시에 파멸일 것이었다. 둘 중 하나였다. 중간도 없고, 고르기도 불가능했다. 나는 빈 속에 마른 안주만 가끔 집어먹었다. 남자들 중 하나가 술을 권했지만 완곡히 거절했다.

“그러고보니 기억나네. 진희라고 했지? 기억 나. 키가 가장 커서 항상 맨 뒤에 앉았지.”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남자였다. 도톰한 안경을 걸친 그는 아까부터 계속해서 술잔이 비는 일이 없었다.

“그랬나.”

“내가 너 좋아했잖아. 고백까지 했는데. 네가 싫다고 했지. 자긴 사귀는 사람이 있다면서.”

나는 희미하게 웃어보이며 말없이 맹물을 들이켰다. 물이 미지근했다.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그게 누구였어? 갑자기 궁금하네. 저 새낀 아니지?”

그가 맞은편의 다른 남자를 가리켰다. 나는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길쭉한 중안부의 머리숱 많은 남자가 참 나, 중얼거리며 금방이라도 싸우려 달려들듯 씩씩거렸다.

“아니야. 그때 나는 아무도 안 사귀었어.”

나는 재빨리 말을 얹었다.

“그런데 왜 거짓말했어? 순애한테도 고백했었는데 걔도 사귀는 애가 있다더라. 그때 여자애들은 지금보다 더 발랑 까졌나봐. 뒤로 호박씨 까고 다닌 거 보면.”

선미가 그만하라면서 그 남자의 옆구리를 팔로 툭 쳤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너 순애랑 친했잖아. 서로는 알 거 아냐. 아니면 걔도 거짓말 한 건가?”

“기억 안 나. 사실, 순애 얼굴도 흐릿하고.”

“어떻게 기억이 안 날 수 있지? 너희 가장 친했잖아. 누가 보면 사귀는 줄로 알 정도로.”

남자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땐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냐. 연락도 끊겼고.”

“하긴, 걘 워낙 별났어. 친구 떨어져나가는 거야 일도 아니었지.”

내가 애써 미소를 유지하려는 순간이었다. 선미가 이목구비가 일그러진 채 새파랗게 질려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어떡하냐고 울상을 지었다. 그녀는 여전히 영락없는 여고생이었다.

“왜 그래?”

나는 물었다. 내 놀란 물음에 탁자의 다른 사람들도 이쪽으로 주의를 기울였다.

“순애가 못 온대. 그러니까, 사고를 당했나봐.”

“사고? 순애한테 사고가 났어?”

길쭉한 코를 긁적이며 반대편의 남자가 물었다.

“집앞에서 교통사고가 났다고 순애 딸이 대신 전화했어. 그러더니 네 안부를 묻더라.”

선미가 내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물잔을 떨어트릴 뻔 했다.

“엄마가 널 되게 보고 싶어 하셨다면서. 순애는 널 기억하나봐.”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기꺼해야 병원에 다 같이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튀어나왔을 따름이었다. 내 말에 다른 이들은 회의적이었다. 다른 애들도 올 테고, 순애 하나 때문에 동창회를 갑자기 파하고 병원에서 다시 동창회를 열 순 없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나 또한 반쯤 수긍하는 의견이었다.

“걔가 무슨 공주도 아니고. 다른 애들 더 오기로 하지 않았니, 선미야?”

심술궂은 인상의 여자가 뒤로 고개를 내뺀 채 선미에게 물었다.

“오기로 했지. 열 명 정도 더.”

선미가 변명처럼 웅얼댔다.

“그럼 우린 그냥 있자. 순애한테야 친한 사람이 나중에 가보면 되지.”

그녀가 나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나는 그 시선을 못 본 척 회피했으나 무시할 수 없었다. 갑작스런 순애의 사고가 마치 나를 이리 오라고 손짓 하는 모양새였다. 가만히 물만 몇 번 더 들이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순애에게 가봐야겠다고 누구에게랄 것없이 말했다. 선미는 기다렸다는 듯 내게 순애 딸이 알려준 병원 위치를 알려주었다.

“순애 만나면 못 가서 미안하다고 전해줘. 쾌유 빈다고도.”

선미가 금방이라도 울듯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따로 인사하지 않고 바로 가게를 나섰다. 돌아본 ‘고구려 식당’ 간판은 아까 전보다 더 낡아 보였다. 구석구석 찌든 때까지 눈에 들어와 오래 쳐다보기 뭣했다. 나는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택시에 올라타 역으로 향했다.


9

병원은 다행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 근처에 자리한 서울대학병원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교통사고라니. 나는 생각했다. 어쩌다 그런 일을 당한 거지. 나는 문득 내가 모르는 불운에 휩싸인 무언가 어두운 것이 나를 엄습해온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여러 이상한 일들이 맞지 않아 따로 노는 퍼즐처럼 머리 한 구석에 흐트러졌다. 나는 외래 센터를 지나쳐 커다란 본관 건물로 들어섰다.

A동 1305호를 찾아 이곳저곳 조금 헤맨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간호 데스크에 방문록을 작성한 뒤 1305호로 움직였다. 4인 병실이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병상 커튼으로 완전히 가린 자리가 많아서 누가 누군지 쉽사리 알 수 없었다. 병실 한가운데서 주저하는 사이를 비집고 한 사람이 말을 건넸다. 돌아보니 창가의 병상에서 나온 젊은 여자였다.

“혹시 황순애 씨 찾아오셨나요?”

나는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황순애 씨 딸이에요. 이주애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혹시 순애는.......”

나는 그녀 어깨 너머를 살폈지만 막 커튼이 걷힌 듯한 병상은 비어있었다.

“엄마는 지금 수술 대기 중이에요. 수술 들어가면 대기실로 가야 해요.”

“아, 그렇군요. 같이 가서 기다려도 될까요?”

나는 넌지시 물었다.

“그럼요. 제가 위치를 알아요. 같이 가셔요.” 나는 여자를 따라 병실을 나갔다. 수술실은 지하 1층에 위치해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무슨 대화라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했지만 환자와 보호자, 의사, 간호사 들로 꽉 들어찬 탓에 얘기를 나눌 틈이 없었다. 수술 대기실로 가는 동안에도 우리 사이엔 별다른 말이 오가지 않았다. 딸이라는 그녀의 시답잖은 말이 간신히 공백을 메울 뿐이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얼른 순애를 보고 싶었다. 왜인지 나조차 몰랐다. 그저, 그녀를 만나면 이 모든 불안이 해소되리라는 느낌이 찾아들었다. 일순 나는 그녀가 익숙한 향기에 기억 속 파묻힌 무언가가 고개를 드는 느낌이 들었다. 향수 냄새였다. 분명 언젠가 맡은 적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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