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이어 나는 기억해낼 수 있었다. 워낙 독특한 향이었다. 지난날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나오는 길, 이어폰을 떨어뜨리고 나를 스쳐지나간 여자의 냄새였다.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이 일었다. 그것은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는 욕실 안 수챗구멍을 막은 머리카락 뭉치에 딸려나오는 각종 이물질과도 같은 기억이었다.
신경이 따끔거릴 정도로 충격에 붙들린 상태로 나는 수술대기실로 들어가 조심히 앉는 순애의 딸을 쳐다보았다. 그 옆에 다가가기 두려웠다. 또 어떤 잊힌 기억이, 또는 잃어버린 기억이 더 깊은 심연 속에서 딸려나올지 몰랐으므로. 그럼에도 나는 앉아야 했다. 무심코 가방 속으로 집어넣은 손에 이어폰 줄이 닿았다. 그것을 내밀며 물어보아야 할까. 그쪽 거냐고. 그쪽이 떨어트리고 간 게 이것 아니냐면서. 그러나 나는 엄두도 내지 못했고, 다만 향수 향이 좋다는 말만 혼잣말처럼 지껄였다. 내 말을 들었는지 그녀는 산 지 얼마 안 됐다고, 애인이 선물해준 거라고 답했다. 안색이 좋지 않은 한편 즐거워보이는 그녀였다.
“남자친구가 센스가 좋네요. 향수 고르기 어려운데.”
나는 말했다.
“남자친구 아녜요. 여자예요.”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네?”
“저 여자랑 사귀어요. 엄마도 아시구요. 커밍아웃하고, 오픈리로 산 지 좀 됐어요.”
나는 연이은 그녀의 말에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순애의 딸이 레즈비언이라니. 나는 순애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이어 대장이 떠올랐다. 호석이, 걔가 떠오른 건 왜일까. ‘오픈리’는 무슨 뜻이지. 뭘 오픈한다는 거지. 나는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섣불리 말을 건넸다간 무슨 시선을 받을지 몰라서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수술 현황판을 바라보았다. 순애의 이름 옆에 ‘수술중’ 표시가 떠있었다. 순애의 딸은 아랑곳않고 얘기를 이어나갔다.
“죄송해요. 갑자기 이런 말 해서요. 하지만 전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렇게 말하는 거. 일종의 습관이 됐달까요. 밥 먹듯 커밍아웃하는 게 습관이 돼서. 딱히 고쳐야할 나쁜 습관이라고는 생각 않고요. 누구나 나쁜 습관, 좋은 습관 하나쯤 있잖아요. 그게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때로 삶을 지탱하기도 하고. 좋든, 나쁘든. 저는 그렇게 여기려구요. 이렇게 커밍아웃하는 거 말이에요.”
“......행복해보여요.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느닷없이 튀어나온 내 말에 나 자신조차 놀랐지만 주워담을 방법은 없었다. 순애의 딸은 잠시 놀란 듯 보였지만 이내 미소 지으며 고맙다고 대답했다.
“별 얘길 다하네요. 처음 만난 분한테.”
“아니에요. 그보다, 듣기론 내가 순애랑 친했다고 하는데 평소 순애한테 내 얘기 들은 적 있어요? 별 것 아닌 얘기라도.”
“아, 그럼요. 아주머니 얘기 가끔 들었어요. 홍진희 아주머니시잖아요. 아주머니 사진도 보여주면서 제일 친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녀는 말했다. 낯이 어딘가 익은 것이, 금방이라도 그녀의 얼굴에서 순애의 옛 미소가 튀어나올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애써 그 표정을 회피했다. 외면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근데 나는 왜 기억이 안 나지.......”
“기억 안 나세요? 아, 그러고 보니 엄마가 아주머니한테 무슨 사고가 있었다고 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시선을 들었다.
“사고? 무슨 사고요?”
“추락사고였다고요. 그 때문에 자기가 마음 고생 엄청 심했다면서.”
내가 떨어졌는데 왜 걔가 마음 고생을 했을까. 나는 궁금증만 증폭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 하나 투명하게 비치지 않는 불투명한 장막 뒤로 넘어가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는걸요. 그런 사고가 있었다면 내가 기억을 해야 할텐데.”
“이 말씀도 하셨어요.”
그녀가 말을 고르듯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는 혀끝으로 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 이후로 아주머니가 자기를 잘 기억못한다고. 옛날에 있었던 일도. 그 이후로 아주머니가 전학을 가게 되고, 그렇게 연이 끊어졌다면서.”
“도통 모르는 얘기 천지네요. 제가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렸다는 걸까요.”
“더 자세한 건 저도 모르겠어요.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보셔도 되고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수술 현황판을 흘깃 쳐다본 뒤 정면을 응시했다. 나도 더는 할 말이 없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아들에게 연락해보았다. 아들은 오늘 딱히 바깥 약속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 집에 있을 텐데 답장이 오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젠 그녀와 나 사이의 어색하기보단 불편해진 정적이 흐르는 와중이었다. 순애의 딸이 내게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면 엄마도 학생 때 저처럼 여자애랑 사귀었던 적이 있다고 했어요. 제가 커밍아웃했을 때에요. 저를 안아주면서요.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진 모르겠어요. 결국엔 아빠랑 결혼했으면서. 더 자세한 건 묻지 않았지만, 가끔 궁금해요. 엄마를 사랑했던 그 분은 어떤 사람일까, 하고....... 제가 쓸데없는 생각이 좀 많죠?”
그녀가 헤헤 웃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그녀에게 내보였다.
“이거 잃어버린 적 없어요? 빨간색 줄 이어폰인데.”
그녀는 이어폰을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전 에어팟 써요. 하얀 거.”
“그렇죠? 아가씨 게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워낙 오래된 거니까.”
“길에서 주우셨어요?”
“네, 주인을 찾아줘야지, 찾아줘야지 했는데 아직 그러지 못했네.”
“길에서 주운 물건 함부로 가지고 있으면 안 돼요. 특히 낡은 물건일수록. 귀신이 잘 붙거든요. 제가 무당은 아니지만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아서요.”
그녀가 장난이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나는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녀의 말에 가방 깊숙이, 보이지 않는 물건 밑바닥에 이어폰을 숨기다시피 감춰두었다. 순애를 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갈 때 백화점에 들러 분실물 보관소에 맡길 생각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긴 했지만.
현황판에 수술회복 환자 명단에 순애의 이름이 오른 건 20분 정도가 흘렀을 무렵이었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수술복 차림의 의사가 나타나 보호자를 찾았다. 순애 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술실 앞으로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나도 수술 결과에 대해 듣고 싶었다. 어째선지 반사적으로 그런 의무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게 그럴 자격이 있나 의문이 들어 제자리에 가만히 앉은 채로 그녀와 의사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의사가 다시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이만 병실 가서 기다리자고 말했다. 나는 아무 말 않다가 올라탄 엘리베이터에 둘이 남게 된 후에야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이내 눈물을 흘렸다. 곧이어 그것은 울음으로 번졌다. 그녀는 소리내어 울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새는 슬픔은 투명한 눈물방울로 떨어져내렸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려 했으나 그 역시 쉽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순애 딸을 위로한단 말인가? 나는 교통사고가 예상보다 큰 사고였음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녀가 간신히 진정한 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13층의 널찍한 휴게공간으로 이동했을 때였다. 나는 조심스레 수술 결과를 물었다. 그녀는 모르겠다는 듯 탄식했다.
“수술이 잘 안 됐대요. 어려웠나봐요. 워낙 큰 사고였기도 해서.”
“그래도, 그래도 살 수 있는 거잖아요, 그치?”
나는 도움 안 되는 위로라는 걸 체감하면서도 애써 물었다.
“지금은 의식을 잃은 상태래요.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데,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요? 어떻게 하면 마음의 준비를 하냐고요. 애초에 그런 게 준비한다고 준비가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런 건 준비할 수가 없어요.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잠이 들듯 찾아오는 거죠. 근데 엄마를 이렇게 떠나보낼 거라곤 도저히 생각을.......”
그녀는 아까보다 조금 소리내어 울었고, 나는 그녀를 안아주려다 손만 잡아주었다. 눈물 범벅인 그녀의 손이 이미 죽은 사람처럼 차가웠다. 내 전해진 체온으로 따듯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손을 천천히 거두었을 때 그녀의 손바닥은 붉게 활기가 돌았다. 순애의 딸은 울음을 멈추었다.
그때였다. 카톡 알림이 시끄럽게 연이어 울렸다. 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무음으로 설정한 뒤 메시지를 확인했다. 아들이었다. 그 애는 약속이 생겨 잠시 집밖으로 나왔다가 들어가는 길이라며, 동창회는 재밌냐고 물어왔다.
“이만 가셔도 돼요. 같이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고요. 연락처 알려주시면 엄마 깨어나는대로 꼭 다시 연락드릴게요.”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내가 신경쓰인 건지 그녀가 내처 말했다.
“순애, 꼭 일어날 거예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말아요.”
“네. 고맙습니다. 살펴 가세요.”
그녀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를 배웅해주었다.
나는 천천히 병원을 나서 지하철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파랬다. 구름은 균열 한 점 없이 단단했고 옷깃을 스치는 바람은 한을 품은 듯 냉기가 서려 있었다. 문득 한기에 몸이 떨렸다. 나는 재빨리 역 계단을 밟아내려갔다.
10
집안엔 그 애 혼자 있었다. 나는 술에 잔뜩 취해 모든 걸 잊고 싶은 심정이었다. 원체 술이 안 받고 좋아하지 않는 음료라 마시지 않은 지 꽤 되었다. 나는 책을 읽는 그 애를 건너다보았다. 스티븐 킹의 <돌로레스 클레이본>이라는 책이었다. 소설이지 싶었다. 나는 외투만 벗은 채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 애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호석아, 너 할머니 전화번호 있지?”
“할머니? 무슨 할머니?”
그 애가 화들짝 놀란 듯 책을 내려놓았다.
“무슨 할머니긴, 네 외할머니지.”
“모르겠어. 있을 수도 있고. 왜?”
그 애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당연했다. 외할머니, 그러니까 나는 나의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래 전 남편과 결혼했을 때에도 반대가 심했고,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며 상견례 한 번 없이, 결혼식을 올렸다. 오랫동안 절연한 채 살아왔고, 그 세월은 어느덧 30년 가까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의 하나뿐인 외손자를 낳았을 때를 제외하곤 찾아간 적도 전무했다. 엄마는 나는 여전히 없는 사람 취급했지만 외손자인 그 애만큼은 각별히 애지중지 여겼다. 그 애라면 제 할머니와 아직도 연락을 하지 않을까 싶어 물은 것이었다. 나는 그 애를 닦달하듯 얼른 할머니 전화번호 좀 나한테 보내달라고 했다.
“왜? 할머니한테 무슨 일 있어?”
그 애가 물었다.
“그건 아니고. 내가 뭐 좀 물을 게 있어서 그래.”
“갑자기? 뭔데 그래?”
“넌 알 것 없어. 아니다, 나중에 말해줄게.”
그 애는 별 어려움 없이 엄마의 집 전화번호를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나는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며 엄마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심란했다. 평생 볼 일도, 말 섞을 일도 없을 것 같던 사람에게 이렇게 먼저 연락하게 되다니. 이게 다 순애 때문이지. 순간 머릿속 한 켠에서 목소리가 말했다. 나는 이어폰 속 그것이 돌아왔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생각에 불과했다. 통화 대기음이 질기게 이어지다 힘없는 노인의 목소리가 끊기듯 점점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전화가 끊어질까 싶어 서둘러 외쳤다.
“누구신데 그래요?”
“엄마, 나야. 진희.”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그녀는 네가 전화를 다하고, 웬일이냐고 빈정거렸다. 나는 당장이라도 전화를 끊고 싶었지만 인내해야 했다. 진실을 알기 위해선.
“하나만 물을 게 있어서 그래.”
“돈 빌려달란 소리는 하지도 마라. 네 남편 교사라면서? 꼬박꼬박 달마다 입에 처먹을 거 넣어줄 거 아니냐.”
나는 그 말을 무시한 채 물음을 던졌다.
“나 어렸을 때 말야. 그러니까 학생 때, 다친 적 있어? 어디서 떨어졌다거나. 그러니까 추락 사고 같은 거 말이야.”
다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 침묵을 견딜 수 없어 얼른 대답해달라고 채근했다.
그녀는 노인네 특유의 쉰 목소리로 부러 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그건 왜 물어? 그 시절에야 안 다치는 애들이 어디 있었다고.......”
“있어, 없어? 높은 데서 추락하거나, 기억상실증 같은 거 걸릴만한 큰 사고가 없었냐고.” “......있었어.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