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레즈 투쟁기 8회

by 김성호

나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겼다. 이마를 짚었다. 열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뒤통수를 망치로 두드리듯 골이 울리는 듯했다. 그때 추락한 충격이 뒤늦게 아릿한 통증으로 몸속 구석구석에 번져는 느낌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고쳐잡은 뒤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언제? 나는 왜 그걸 기억 못하지?”

“그때 충격으로 기억이 일부 사라질 수 있다고 했으니까. 고등학생 때였어. 야, 네가 날 원망할 처지가 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부모 속을 들들 볶고선, 괴롭히고선, 못되게 굴고선....... 그때 내가 아무말 않고 널 보살펴준 걸 감사히 여겨야 해.”

“순애라는 여자애, 알아? 기억해?”

나는 그녀의 말을 흘려들으며 물었다. 저편에선 한동안 답이 없다 갑작스레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알지! 내가 기억못할 것 같니? 걔는 나쁜 년이야. 망할 년, 네가 걔 떄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네가 그때 걔하고 요상한 짓을 좀 많이 했니?”

“‘요상한 짓’이 무슨 짓인데?”

“나도 모른다. 남사스러워서 정말. 근데 그건 왜 묻니? 기억나봤자 좋을 게 뭐 있다구.”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머릿속 한 구석에서 그림자 형태를 띤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왜 말을 안 해준 거야? 딸 하나 등신 만드니까 좋아?”

“애먼 데 성낸다고, 난 너 살려준 죄밖에 없다.”

“내가 순애하고 친했다는데, 그게 무슨 얘긴지 모르겠어. 엄마가 말해봐.”

“날라리였어. 못된 년이었지. 별난 애였다. 왜, 최근에 걔 만난 적 있니?”

“아니, 만난 적 없어. 하지만 들었지. 내가 걔하고 엄청, 아주 친한 사이였다는 거.”

나는 천천히 말을 읊조렸다. 내 말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게 다야? 더 말해줄 것 없어?”

“없다. 내 입으로 말해줄 건 더 없어.”

나는 잠시 엄마의 말이 더 이어지기를 기다리다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던지고 싶었으나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고 내려놓았다. 두 손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문지르며 낮게 욕설을 뇌까렸다. 안방 문가에 나타난 대장이 말을 걸었다.

“엄마, 괜찮아? 무슨 일인데?”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애를 쳐다보았다. 미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걱정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내다보였다. 나는 저 애를 사랑한다. 세상 그 무엇보다. 한동안 그런 유치하고 당연한 생각에 붙들렸다.

“아니야. 아무 일도. 근데 너는 친구 만나러 나갔다 온 거야?”

나는 물었다. 그 애가 머리를 글적이며 머리를 위아래로 저었다.

“저번에 나랑 같이 살아보면 어떻겠냐고 물은 애 있잖아. 걔가 이번에 독립했거든.”

“그래? 어때?”

“뭐가?

“너도 혼자 나가 살고 싶니?”

내 물음을 그 애는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모르겠다.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저 입을 다문 채 허공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너도 독립할 나이지. 어쩌면 늦었는지도 몰라. 난 네 의견을 존중해.”

“알아, 엄마.”

그 애가 대답하며 따스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치 불안에 쫓기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했다.

“할머니하곤, 그냥 물어볼 게 있어서, 얘기하다 싸운 거야. 별 일 아냐.”

나는 손사래치며 말끝을 흐렸다.

“나도 할머니하고 연락한지 오래 됐는데.”

“조만간 연락드려. 좋아하실 거야. 그보다, 건강검진 통지서 안왔니? 핸드폰으로 온댔나.”

“우편물 온 거 없던데.”

그 애는 뒤로 시선을 던지며 대꾸했다.

“좀 늦나 보다. 저녁 먹었니?”

“응. 먹었어. 그 친구랑.”

“친한가 보네. 아주.”

그 말을 하는 순간 순애가 떠오른 건 왜일까. 머리는 여전히 아찔하게 어지러웠다.

“친하지.”

“너무 친하게 지내진 마.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나는 장난 투로 말했다. 그러나 그 애의 표정은 얼어붙은 채였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양 입을 달싹였다. 한순간 나는 그 애가 무슨 말을 내뱉을지 몰라 두려웠다.

“밥 시켜먹을래? 초밥 먹고 싶어.”

끝내 그 애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게 다였다. 나는 그러자고 했다.

웃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가열차게 희망을 바라며 웃었다.


11

나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내렸다.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계단이 끝이 없고, 무한히 떨어진다는 느낌만 선명히 온 감각을 건드렸다. 어째서 떨어진 거지. 떨어지고 있는 거지. 마치 언젠가 읽은 적 있는 황정은 소설가의 <낙하하다>의 인물이 된 기분이었다. 이유도, 원인도 모른 채 무한한 공간을 끝없이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에 중독되는 건 어떤 걸까. 이미 자각하고 있으니 자각몽인 건가.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팔다리를 느릿느릿 버둥거리는 게 끝이었다. 주위는 새하얗다가, 새까맣기를 반복했다. 내 몸을 보려 했지만 내가 보이지 않았다.

투명인간이라도 된 건가. 아니면 애초에 나는 존재하지 않나.

하지만 감각은 살아있다. 육체가 있는 것이다. 그게 어디든. 어디에 있든 나는 존재했다. 추락이 멈춘 건 떨어진다는 사실 자체에 무감각해질 즈음이었다. 나는 일어났다. 적어도 그 의미에 준하는 행위를 취했다. 여전히 나는(내 육체는, 몸은) 보이지 않았고 다만 공포감이 찾아들었다. 원인 불명의 공포였다. 형체를 알 수 없어 맞설 수도 없었다. 무언가가 보였다. 흐릿한 윤곽으로 보이던 그것은 이내 분명한 실루엣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순애였다. 그 애는 나를 향해 달려왔다. 무언가를 쫓는다기보다는 내 쯤에서 멈추려는 듯 속도를 줄여나갔다.

진희야, 괜찮아? 다친 데 없어?

순애가 물었다. 그녀는 옛날 교복을 입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학교에서 걸어나온 것처럼 생생했다. 나는 그렇다는 의미로 고갯짓을 했다. 그녀는 미안하다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왜 우냐고,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같이 뛰어내리기로 했는데. 같이 죽기로 했는데, 나만 살아남을까봐 너무 무서웠어.

순애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궁금한 게 많았다. 우리는 왜 같이 죽으려 했는지, 뭣보다 우리가 무슨 관계이기에 그런 짓을 저지르려고 하는 건지. 하지만 고개를 들어 물으려 했을 때 나타난 건 실링팬이 천천히 돌아가는 크림색 천장이었다. 나는 누운 채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뜨기를 되풀이했다. 그러면 다시 교복을 입은 순애가 있는 세계로 돌아가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멍청한 기분으로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바깥 창으로 쏟아져내리는 눈이 시야 가장자리에 밟혔다. 난방 온도를 올리고 부엌에 들러 미지근한 물을 한 컵 들이켠 뒤 거실로 향했다. 오전 여덟 시였다. 남편과 아들 둘 다 이미 출근한 지 오래였다. 나는 정체모를 기시감에 녹아든 채로 베란다에 서서 바깥의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쓰디쓴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그러나 집엔 믹스커피 뿐이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었다. 남편이 교무실에 맨날 남는다고 가져오는 게 믹스커피 뿐이었으니까. 그걸 뭐하러 돈 주고 사먹냐고도 한 소리 했었다. 그거라도 마셔야 했다. 나는 도로 부엌으로 돌아가며 핸드폰에 쌓인 알림을 확인했다. 낯선 번호로 문자가 한 통 도착해 있었다. 미리보기로 나타난 내용에선 공손한 인삿말과 함께 자신이 순애의 딸 주애라고 밝혔다. 문자 내용을 확인하기가 새삼 두려웠다. 좋지 않은 예감이 피어났다. 나는 한숨을 내쉰 후 문자를 클릭했다.

내용은 길었으나 전하고자 하는 건 딱 한 가지였다.

순애가 죽었으며 빈소가 마련되었으니 찾아와달라는 것.

주애는 엄마가 끝내 의식을 회복했으나 다시 코마 상태에 빠졌고, 끝내 일어나지 못한 채 떠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긴 편지가 있다고, 그것도 가져가달라고 청했다. 나는 천천히 문자메시지를 몇 번이고 읽었다. 그날의 향수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순애가 죽었다니. 무언가 잃어선 안 될 것을 잃은 느낌이었다. 결락감에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 다리가 고장난 듯 흔들거렸다. 나는 문자메시지에 답장하려다 아직 이르다는 결정을 내렸다. 다른 알림은 없었다. 오늘 회식 때문에 늦게 들어갈 거라는 남편의 메시지가 남은 전부였다. 이 인간은 아침 댓바람부터 회식 운운해. 나는 남편이 식탁 의자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져둔 바지를 챙겨 다른 세탁물과 함께 바구니에 담아 세탁기로 들고 갔다.

세탁기 동작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였다. 그의 바지 주머니 안에서 무언가가 톡 떨어졌다.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새 립스틱이었다. 웬 거지. 내 것은 아니었다. 못 보던 것이었다. 언젠가 호석이 재밌다며 같이 보자고 하도 보채서 감상한 김희애 주연의 <부부의 세계>의 서두가 떠오른 건 왜일까. 그 드라마 1화에서도 김희애가 남편의 옷에서 낯선 립스틱을 발견했던가. 그게 파멸의 시작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들은 자신은 이미 진즉에 눈치챘다며 의기양양해 했다. 나는 그런 그 애의 직감이랄지, 육감을 언제나 두려우리만치 존경하다시피 했다. 그 애는 남이 무언가를 알아차리기도 전에 미리 함정을 피하고, 남이 보지 못한 진실을 먼저 알아차린다.

날 주려고 산 것 같진 않았다. 나는 립스틱을 살펴보다 면세점 로고가 적힌 가격표를 알아차렸다. 면세점? 남편이 언제 해외여행을 갔던가. 적어도 내가 알기로, 신혼여행이나 일본으로 갔지 그 이후로 살면서 함께 해외여행을 가거나 간다고 한 적이 전연 없었다. 남편이 해외여행을 갈 만큼 긴 시간 집을 비웠던 대가 있었나. 생각을 더듬다보니 있었다. 교사연수를 받으러 출장을 간답시고 며칠씩 집을 비웠던 때가. 그땐 마냥 아무 생각이나 의심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딘가 이상했다. 고심 끝에 립스틱을 그대로 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 이는 오늘 늦는다고 했다. 회식이 있다고.

문득 가정을 살피지 못한 내 자신이 거울처럼 거실 한 가운데 비쳐 보였다. 이어폰 속 그것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정신이 없었지. 계속 무언가에 쫓기고 무언가를 쫓듯 살아왔으니까. 결국 남은 건 기억상실증과 기억도 나지 않는 친구 순애의 죽음, 그리고 이 새 립스틱 뿐이었다. 아니지, 아니야. 나는 중얼거렸다. 호석이도 있잖아. 내 아들은 여전히 건재해. 유일하게 그 애만이 내가 제정신인 데 보탬을 해주었다.

나는 그러한 생각들을 한 차례 정리하기 위해 식탁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블로그 일기를 썼다. 공개를 할까 말까, 하다가 서로이웃만 볼 수 있도록 설정했다. 서로이웃이라고 해봤자 몇 없었다. 나는 서로이웃 목록을 훑다가 일순 멈칫했다. ‘순애’라고 적힌 닉네임의 블로거가 서로이웃 목록에 있었다. 공황에 가깝게 심장이 발작했다. 혼란과 불안을 가중시키는 야릇한 느낌이 나를 덮치는 와중에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순애라니. 이 순애가 죽은 그 순애일까? 언제부터 나와 서로이웃이었던 거지? 그동안 내 일기를 전부 봐온 건가? 나는 두려웠다. 순애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내 삶을 잠식하고 있는지 100만 분의 1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이끌리듯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 문에 걸어놓은 가방으로 다가섰다. 가방 안에서 빨간 이어폰 줄을 꺼냈다. 이제보니 낯이 익었다. 적어도 옛날 학생 때의 나나 순애와 관련이 있는 물건일 터였다. 나는 천천히 그것을 핸드폰에 연결한 뒤 양 귀에 꽂았다.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것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말을 걸기도 했다. 야, 여보세요, 거기 있니, 말 좀 해봐.......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이어폰을 빼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부려두었다. 목소리는 그때 들려왔다.

-안녕. 오랜만이야.

그것이 예전에 했던 말처럼 이어폰은 더는 상관이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매개체에 불과했다. 마치 저주가 서린 물건처럼.

“순애가 죽었대. 그런데 너는 어떻게 말하지? 너는 ‘순애’라며.”

-순애가 죽었다고? 물론 알지. 순애는 지옥에서 활활 불타오르고 있어. 끔찍하기도 해라.

그것이 처연하게 말끝을 늘였지만 나는 속지 않았다. 적어도 속지 않았다고 믿었다.

“왜 지옥에 있지? 그리고 너는 어떻게 계속......, 나한테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나는 너라니까? 순애이기도 하고. 순애가 왜 지옥에 있냐니, 그거야 당연하잖아. 너 예전에 교회도 한 번 갔으면서, 정말 몰라?

“몰라. 그러니까 알려줘.”

나는 이제 큰소리로 떠들었다. -순애가 지옥에 간 이유는 간단해. 더러운 동성애자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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