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레즈 투쟁기 9회

by 김성호

“그게 무슨 말이야?”

정말 몰라 물은 것이었다. 순수한 의문이었다. 순애가 여자를 좋아한다니. 결혼까지 해 딸까지 낳았는데 그게 무슨 얘기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나는 이제 이 목소리가 나를 갖고 노는 것인줄 알았다. 끔찍한 거짓말로 사람을 구렁텅이에 처넣으려는 간교한 저의를 가진 말이었다. 나는 이제 속지 않는다, 고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속지 않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몰랐다는 투로 말하네. 순애는 여자를 좋아했어. 여자면서 같은 여자를! 더럽지? 끔찍하지? 근데 더 놀라운 건 말야, 순애가 널 좋아했다는 거야. 네가 상상이나 했겠어?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순애가 나를 좋아했다니. 그건 또 무슨 얘기인지.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조금이라도 식히려 앞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자꾸만 뒤로 넘겼다. 버릇이었다. 더는 넘길 게 없는데도 자꾸만 머리를 쓸었다. 누군가에겐 나의 완전한 민낯이 드러나 보일 것이었다. 나는 드러낼 것이 아주 많은 사람에 속했다. 그만큼 감추면서 살았으므로. 살기 위해 감췄던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쩌면 아직도 내가 모르는 나의 비밀이 깊은 곳에 똬리를 튼 채 웅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처음 듣는 얘기야. 거짓말하는 거지? 거짓말이잖아.”

-내가 왜 거짓말을 해? 순애도 죽은 마당에.

“아, 물론 좋아했지. 나를. 나랑 친했으니까.

-그런 의미의 ‘호감’이 아니란 거 너도 잘 알잖아! 그건 ‘사랑’이었다고! 사랑. 아 거룩하고 신성한 말이지. 안 그래?

그것은 이제 즐기고 있었다. 깔깔거리며 말을 이어가는 그것의 목소리가 거슬렸다. 순간 머리 위의 천장 형광등 불빛이 명멸하며 눈앞의 사물들을 교란했다. 마치 어딘가에 갇혀 생체실험이라도 당하는 피험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말라붙은 입술을 침으로 연신 적셨다.

“그럴 리가 없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진희야.

그것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너야. 그걸 깨달아야지. 내 목소리는 전부 네 머릿속에서, 입에서 튀어나오는 거라고.

“아니야.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어.......”

-봐. 지금 네 모습을 보라고.

나는 시선을 돌려 화장대 위의 거울로 시선을 두었다. 입술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뭐라고 속삭이는 모습이 맞바라보였다. 의식하고 그만둔 후에서야 내 입술은 오므렸다 벌리면서 쉼 없이 움직이기를 멈추었다. 그래서 거의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입술이 마르고 건조한 것이었다. 그러면 여태까지 나 혼자 미친년처럼 자문자답을 했다는 건가. 나는 의식에 여전히 주의를 기울인 채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인내해도 짙어져 가는 정적만이 고동치며 흘러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으로 거울 속 나를 쳐다보았다. 정답을 알려달라고 간청하는 눈빛으로. 애원했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남편이 나타났다. 나의 의아한 눈길을 느꼈는지 그는 수행평가 자료를 집에 놓고 왔다고 말했다. 나는 나가려는 그에게 커피 한 잔 하겠냐고 물었고, 그는 지난날 생일선물로 내가 선물해준 손목의 세이코 시계를 힐긋거리고는 그것도 좋지, 대꾸했다. 나는 믹스커피를 탔다. 그는 준다는 게 믹스커피였냐면서, 자긴 또 아메리카노인줄 알았다고 투덜거렸다. 집에 아메리카노가 어딨냐고 되묻자 남편은 교무실에서 너무 마셔서 질린다고 했다. 자신은 폴바셋 아메리카노가 맛있다고도. 나는 생전 먹어본 적 없는 브랜드라고 말했다.

“나하고는 한 번도 안 가봤잖아. 폴바셋 같은 곳. 카페 돈 아까워 하면서.”

“호석이가 데리고 간 거, 기억 안 나니?”

“기억하지. 근데 딱 한 번 뿐이었어. 거기다 그때 당신은 커피가 아니라 아이스크림 먹었고.”

그의 말을 나는 가볍게 쳐냈다. 남편은 떨떠름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다 손을 내저었다.

“몇 번 더 갔겠지.”

“누구랑 갔어?”

“뭐? 어딜?”

“폴바셋. 그리고 공항 면세점.”

그는 내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의심이라도 하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면세점이라니?”

나는 주머니에서 뜯지도 않은 새 립스틱을 꺼내 그에게 보였다. 그는 잠시 그것을 빤히 바라보며 정체를 파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곧 상황 파악을 한 양 웃음을 터뜨렸다. 한동안 길게 이어진 웃음소리가 쇳소리처럼 거슬렸다. 나는 금방이라도 립스틱을 내던지고 그의 뺨을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거 당신 주려고 산 거야. 내가 줄 다른 여자가 어딨다고.”

“그거야 모르지. 예쁜 연하 여교사 꼬시려고 그랬을 수도 있고.”

나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말했다. 그의 웃음이 멎었다.

“립스틱 하나 사려고 집에서 두시간 넘게 떨어진 인천국제공항까지 갔다는 게, 말이 돼? 당신 미쳤어? 내가 등신 천치인줄 알아?”

“그건, 그건 사실 여행 갔다온 동료 교사가 와이프 주라고 선물한 거야.”

“아까하고 말이 왜 달라?”

“내가 샀다고 해야 폼이 좀 더 사니까 그랬지.”

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한데 당신까지....... 어떤 여자야?”

“알았어. 사실대로 말할게. 새로 들어온 신입 여교사 주려고 산 거야. 그 립스틱이 공항 면세점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대서 간 거고. 마음 없어. 전혀. 그냥 친해지려고 그런 거야. 왜냐면 교장 딸이니까.”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나는 코웃음을 쳤다. 핸드폰 알림이 울렸지만 급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남편의 외도였다.

“교장 딸한테 당신이 잘 보여서 얻을 게 뭔데? 학교가 무슨 일반 회사야? 당신 교장한테 밉보인 거 있어? 약점이라도 잡혔어? 아니면 교감, 교장 될 거야? 거짓말 하지마. 속는 것도 한 두 번이야. 결혼하기 전에도 그러더니 아직도 버릇 못 고쳤구나. 미친 새끼.”

나는 부러 마지막 단어를 힘주어 느릿하게 발음했다. 그도 표정이 조금씩 굳어갔다.

“다 끝난 예전 얘긴 왜 꺼내는 거야?”

“다 끝난 걸 당신이 다시 시작했잖아!”

나는 소리쳤다. 잘한다, 잘해. 머릿속 한 구석에서 그것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망가져가는구나. 남편은 파랗게 질린 낯빛으로 나를 응시하다 갑자기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빌었다. 불쌍한 똥파리 한 마리가 살려달라고 두 손을 맞비비는 듯했다. 그랬다. 그는 냄새 나는 똥파리를 닮아있었다.

“아무 짓도 안했어. 잠도 안 잤다고. 그냥 호감 표시한 게 다야. 다시는 안 그럴게.”

그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두 번은 안 속아. 같이 살지도 않을 거고, 이혼도 안 할 거야. 뭐든 당신이 바라는대로 이루어지진 않을 거야. 이 집에서 당장 나가. 지금 당장.”

나는 현관 창고로 가 캐리어를 끌어렸다. 그는 캐리어를 한손에 쥔 채 어린 애처럼 훌쩍이고 있었다. 꼴보기 싫었다. 그는 자신의 옷가지와 물건들을 캐리어 안에 집어넣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문가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가 캐리어를 닫고 바닥에 드르륵 끌며 내 옆을 지나쳐갔다. 그때 한 마디 말이 거짓말처럼 귓가에 꽂혔다.

“미친년.”

나는 현관으로 향하는 그를 향해 돌아섰다.

“뭐라고? 내가 미쳤다고?”

“그래, 너 미쳤어. 시도 때도 없이 혼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중얼거리기나 하고. 예민해져서 걸핏하면 소리지르고, 화내고. 건강검진이라도 받아봐.”

“건강검진은 진즉 받았어. 그리고 중얼거리는 건.......”

내가 말을 제대로 맺지 못하자 그가 기회라도 잡은 것 같이 굴었다.

“나도 미친 여자하곤 살기 싫어. 너도 너 원하는대로 살아. 이젠 너도 나 안 사랑하잖아? 내가 나이 육십 가까워지지만, 나도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 권리가 있어. 나이가 몇이든!”

그는 그렇게 외치곤 현관문을 소리나게 닫고 나가버렸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그가 떠난 자리를 멍청히 처다보다 마시다 만 커피를 잔째 치웠다. 계속해서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멈출 수 없었다. 정말 미쳐가는 모양이었다.


12

순애의 빈소는 텅 비어있다시피 했다. 주애 혼자 상주 완장을 차고 제 엄마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조의를 표한 뒤 그녀에게 다가갔다. 울 거라곤 예상치 못했는데 어째선지 흘러내리는 눈물에 뺨이 간지러웠다. 본능적으로 그녀와 내가 무언가로 연결되어있다는 듯. 그게 이제 끊어져 하염없이 슬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몸이 먼저 체감하여 반응하는 것 같았다. 주애는 나를 흰 전지가 깔리고 그 위에 편육과 육개장을 내온 탁자로 안내했다. 배고프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보니 종일 먹은 게 없었다. 남편이 집을 나간 뒤 내리 잠을 잤다. 악몽을 꾸었으나 기억나지 않았다. 떨어지는 꿈이었을까. 나는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육개장에 밥을 말아 먹고 편육을 집어먹었다. 입맛이 돌았다. 주애가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한 숟갈도 입에 대지 않았다. 꼭 순애와 함께 단둘이 육개장 잘하는 집에 와 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나직이 말을 늘어뜨렸다.

“미안해요. 종일 굶었더니. 이렇게 맛있게 먹는 것도 볼썽사나운데.”

“아니에요. 많이 드세요. 예상보다 오시는 분들이 적어서 음식이 남아요.”

주애가 대답했다. 그녀의 파리한 낯은 한층 수척해진 몸을 대변했다.

“순애 동창들은 많이 안왔어?”

나는 물었다.

“한 분도 안 왔어요.”

“그럴리가. 병원에도 온다고 약속했던 애들인데.”

“바쁘신가 봐요.”

주애는 체념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에게 동정심을 가졌다.

“그러고 보니 순애랑 닮았네.”

나는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예쁜 얼굴이었다. 단정한 이목구비와 작은 머리, 곧은 몸이 그랬다. 불현듯 낯선 장면 하나가 머릿속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희디흰 살갗의 벌거벗은 몸이었다. 바깥으로 환히 드러난 가슴이 한 손에 잡힐 듯 솟아있었다. 너무 마르지도, 통통하지도 않은 그 몸은 누구의 것일까. 그 순간 들려온 주애의 목소리가 장면을 흩뜨려놓았다.

“사실, 오늘 꼭 오셨으면 했어요.”

“왜요?”

“내일이 발인이거든요. 이대로 영영 안 오시는 건 아닐까, 걱정했어요. 엄마가 잠시 깨어났을 때 아주머니를 꼭 보고 싶다고 하셨거든요. 결국 못 보고 떠나셨지만. 그리고 드릴 것도 있고요. 별 것 아니고, 편지 같아요. 제가 읽어보진 않았지만요. 쓰시는 걸 도왔어요. 기력이 하나도 없어서 펜 쥐는 것조차 힘들어 하셨으니까요.”

그녀가 흰 봉투를 하나 건넸다. 두툼했다. 나는 그것을 받아 힐끔 곁눈질하고는 얼른 조심럽게 가방에 찔러넣었다. 왠지 그 자리에서 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순애가 화를 낼 성 싶었다. 그녀는 죽고 없지만 마치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처럼 자꾸만 기척이 느껴지고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다.

“전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말했다. 주애는 흐릿한 미소를 내보일 뿐이었다. 향수 냄새는 여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빈소를 나왔다. 주애의 배웅을 받으며. 배가 불렀다. 죽은 누군가에게 조의를 표하고 빈소에서 나오는 길에 이렇게 배가 불러본 적은 처음이었다. 순애가 차린 처음이자 마지막인 만찬을 양껏 먹은 것처럼 느껴졌다. 근린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에 갈까 하다가 날씨가 개고 소복이 쌓인 눈을 문득 밟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공원 정자 벤치에 앉았다. 바로 옆에 위치한 도서관으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한 두 명씩, 때론 무리를 지어 드나들었다. 인근 고등학교도 여기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했다. 나는 가방에서 찢어지거나 떨어트리지 않도록 유의하며 주애가 건넨 편지 봉투를 꺼냈다. 그것은 순백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단정한 하나의 마음 같았다. 그것을 함부로 열어서도, 열 수도 없으리라 여겨졌다. 한동안 봉투째 편지를 손에 쥐고 가만히 공원 풍경을 바라보았다. 흐릿한 하늘엔 뒤늦게 고개를 내민 해가 점점이 빛을 뿌리고 있었다. 긴장되었다. 나는 들숨날숨을 몇 차례 내뱉고는 편지 봉투를 열었다. 무턱대고 깨워 놀라지나 않을까 걱정스런 손길로. 그것은 정말이지 살아있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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