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레즈 투쟁기 10회

by 김성호

“순애가 진희에게.”

나는 소리내어 읽었다. 그렇게 하면 조금 진정이 될 듯했다. 편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한 글자씩 느릿느릿, 그러나 정확하게 읽어나갔다. 첫 문장에서 순애는 자기 이름의 뜻을 아느냐고 묻고 있었다. 순애(純愛).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이라는 뜻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자기 이름은 그와는 다르지만, 그녀는 내가 자신의 이름을 그 의미로 다시 지어주었다면서. 기억나지 않았다. 그 역시 의문의 추락사고 때문이겠지. 나는 의문과 관련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싶은 기대감과 두려움에 짓눌린 상태로 편지를 읽었다. 편지는 A4 네 쪽짜리 분량이었다.

처음 다 읽고 나서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다.

순애가 진희에게. 이번엔 속으로 읽었다. 남에게 행여나 마음이 들킬까, 들여다보일까 두려웠다. 표정도 최대한 일관되게 유지하려 애를 썼다. 나를 훔쳐보거나 지켜보는 이는 없었지만, 공원엔 나 혼자였지만 동시에 홀로 있지 않았다. 나무와 꽃, 풀이 살아 숨쉬고 모든 사물들이 깨어나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한편으로 지켜보았다. 나를. 그때의 그 순간, 그 풍경은 일종의 정물화와도 같았다. 내가 조금만 잘못 해도 질서와 배치가 이지러져 균열이 일어나 망가질 듯싶었다. 두 번째로 정독을 마치자마자 편지를 봉투에 다시 집어넣었다. 깨질까 조심히 어루만지는 것처럼 ‘순애’를 다루었다.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고 많은 의문(의심이라 해도 좋다) 잇따랐다.

그러니까 내가 순애의 애인이었단 말이지.

우리는 참 이상하게도 서로 사랑했고.

함께 도망치기까지 했지만 버틸 수 없었다.

사랑을 다음으로 미룰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때 그 순간을 영원히 박제하기로 했다. 죽음으로.

하나 실패했다. 우리는 둘다 살아남았지만 그때 그 시도로 인한 사고로 나는 기억을 잃었고, 동시에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잃어버렸다.

그것들이 순애가 편지에 적은 주요 내용이었다. 아니, 순애가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마지막에 “나는 지금도 널 사랑하는데, 너도 그렇니?”라고 묻고 있었다. 무엇보다 “빨간 이어폰은 내가 네게 주는 선물이야. 선물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 원래 네 것이었고, 돌려주는 것뿐이니까. 이 편지를 읽을 때면 이미 돌려받았으리라고 생각해.”라는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순애가 어떻게 내가 주운 빨간 이어폰을 아는 건지.

나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교육 받았다. 남자를 사랑해야 한다고. 그래서 남자와 결혼해 남들처럼 자식을 낳았다. 그러나 순애의 주장에 의하면 나는 여자를 사랑했고, 그것도 순애를 사랑했으며 죽음 직전까지 내몰렸다.

나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은 건가, 아니면 못한 건가.

그저 여자를 사랑할줄 몰랐던 것뿐인가.

정신을 차리니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신발 밑창이 지저분해질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전히 나 혼자였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고 생각한 새로운 감정이 마음속에서 움트고 있었다. 오랜 시간 잊혔던, 하지만 몸에 맞는 감정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그것은 순애가 발굴해준 것이었다. 그러고서 자기는 죽어버렸지. 나는 사위에 들릴듯 말듯 작게 읊조렸다. 공원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13

남편은 연락 한 번 없었고, 집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또 출장 갔냐고 물어보는 호석에게 나는 그렇다는 한 마디 대꾸만 했다. 그는 계속 출장 중일 것이다. 영원히. 잘못을 빌고 다시 받아들이는 일 따위 없을 터였다. 나는 그 애를 비롯한 다른 누군가가 보지 못하도록 순애의 편지를 깊숙한 곳에 감추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모든 일상이 안온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듯이. 종일 나는 집안일에 매진했다.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하고 반찬을 하고 부엌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쓸모없거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골라내 버렸다. 한편으로 일기를 쓰는 것에도 집착했다. 사소한 일 하나까지도 염두에 두고 메모해 글로 풀어냈다. 아들을 대장이라 부르며 더 친하게 굴었고 자주 약속을 잡았다. 무언가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양 굴었다. 그러나 균열은 이미 일어났고,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는 안간힘을 다해 어떻게든 부서져 떨어지려는 조각들을 온몸으로 막아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순리를 어길 순 없었다.

그 애가 다시 독립 얘기를 꺼낸 건 한창 예능프로그램에 열중하고 있던 때였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80년대 가요를 주제로 한 가요제를 연다고 했다. 그 과정을 담아낸 게 꽤나 재밌었다. 나는 꼭 잃어버린 그때 그 시절을 되찾으려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이던 그때를. 순애의 주장대로라면 기억 속에서 사라진, 그 2년 간의 기록을 다시 들춰보려고 했다. 그러면 무슨 거대한 진실이나 해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때부터였다. 자꾸만 자성을 띤 것처럼 그때로 나라는 존재가 이끌리기 시작한 것은.

나는 TV를 보며 있는 대로 힘껏 웃어젖혔다. 남들은 나를 정말 미친년으로 볼 수도 있었다. 문제는 대장이었다. 그 애마저 이상하다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식한 듯 보였다. 그 애도 균열의 조짐을 눈치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등 뒤에서 해일이 밀려오고 있는데도 평온하게 모래 구덩이를 파는 사람처럼.

“엄마. 나 독립하려고.”

그 애가 말을 꺼낸 건 그 예능을 꼬박꼬박 챙겨보기 시작한 지 몇 주 되었을 무렵이었다. 나는 그때 그 시절을 어렴풋하게 되찾는 와중에 갑작스레 끼어든 현재에 당황했다. 뭐라고 했냐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애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독립하고 싶다고. 저번에 말한 룸메이트 친구와 함께 살 거라고. 내 머릿속은 또 다시 의문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목덜미가 가려웠다. 등도 가려웠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가려움이었다. 나는 대답은 않고 그 애에게 등을 보인 채 가려운 곳을 긁어달라 했다. 대장은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그 섬세한 손끝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사실에 문득 슬퍼졌다. 일상으로 다가온 그 애의 부재는 그 몸집을 더욱 부풀릴 것이었다.

“갑자기? 왜?”

기껏해야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러했다.

“친구가 같이 살재. 월세도 반반이고, 방도 커. 지금 아니면 영영 못 나갈 것 같아.”

‘이 집에서.’ 그 애가 삼킨 뒷말은 그거겠지. 나는 혀끝에 쓰린 맛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그래도. 너무 갑작스러운데.”

“그렇게 갑자긴 아니지. 전부터 계속 말해왔잖아. 독립 얘기 말이야.”

그 애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덧댔다.

“룸메이트 친구는 어떤 앤데? 내가 아는 애야?”

“엄마는 모를 걸. 종종 말한 적은 있어.”

“이름이 뭐야?”

“이배현. 일단 이사 날짜는 다음주 월요일로 정했어.”

그 말에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 애를 쳐다보았다. 그 애는 단호했다.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럴 수도 있고.”

“이사를 무슨 그렇게 빨리 해? 너무 서두르는 거 아냐?”

“한 번 결심하면 그때 딱 행동으로 옮겨야지. 안 그럼 영영 미루게 될 것 같아서.”

“그래.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우리는 한동안 다시 TV에 다시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 아무리 웃긴 장면이 나와도 침묵만이 자리를 대신했다. 뒤늦게 입을 연 건 그 애였다.

“내가 독립하는 게 싫어, 엄마는?”

“섭섭하지. 그래도 때가 된 건 맞아. 너 서른이 코앞이니까.”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 애의 말은 따듯했다. 적어도 냉정하진 않았다. 이만큼 자랐으면 됐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자랐으면 됐고. 이어 속으로 되뇌었다. 후회는 없었다. 이대로 내보내도 아무런 걱정 없어, 나는.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잠시 불안이 가시는 듯했으나 곧이어 걱정으로 위장한 갖은 의문이 밀려들었다.

“그나저나 넌 여자친구 아직 없니?”

“엄마. 나 결혼 생각 없어.”

그 애는 내 말을 여느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물리쳤다. 나는 왠지 모를 오기에 물음을 멈추지 않았다.

“평생 없을 리가. 그건 그렇고, 여자친구는 몇 명이나 있었니?”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해?”

그 애가 오늘따라 ‘대장’답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말할 의무는 없지만, 엄만 그냥 궁금해서.”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나중에 연애하면 그때 말해줄게. 됐지?”

그 애의 말엔 보이지 않는 작은 가시들이 박혀 있었다. 나는 죽은 순애를 떠올렸다. 그것이 말해준 순애의 비밀도 기억해냈다. 그리고 나의 비밀이기도 한....... 동성애자라니. 내가 순애와 사귀었다니. 순애를 사랑했다니.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그건 순전히 그녀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했다. 아무리 동반자살 시도로 인한 추락사고로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동성애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다 공원에서의 일을 생각했다. 편지를 읽고 나서 마치 가슴에 하나의 심장이 더 생겨 벌떡거리며 뛰는 듯했던. 하지만 그 또한 일시적인 착각, 혼란에 불과했다. 이어폰 속 목소리처럼 환청에 가까운 가짜, 허구였다. 그로부터 오늘, 지금에 이르기까지 2주가 넘게 흘렀고 나는 심신을 더욱 단단히 했다. 그러나 불쑥 틈입한 생각 하나. 전화 통화에서 일흔이 넘은 엄마가 자신의 입으로 말할 건 더 없다고 했던 그때가 마음에 걸렸다. 엄마에게 물어보면 확실할 것이었다. 아니, 확실할까. 엄마는 못된 사람이다. 내게 없는 말 있는 말 다 갖다 붙이면서 어떻게든 괴롭히려 들 것이 뻔했다. 나는 엄마에게 물어보기를 단념했다. 결국 내가 스스로 풀어야 할 매듭이었다.

“참, 그때 우리 영화보러 간 백화점이 어디였니? 현대였나?”

나는 갑자기 생각이 나 그 애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 애는 어쩐지 우울해보였다.

“롯데. 그건 왜?”

“그때 주운 이어폰 주인 찾아주게. 분실물 센터에 맡기면 될 거야.”

“영화본 게 벌써 언젠데. 이미 주인도 포기했을걸. 그냥 버리는 게 나아.”

그냥 버리는 게 낫다는 그 애의 말이 폐부를 찔렀다. 순애는 버리지 않았다. 수십년 그 이어폰을 간직한 채 끝내 내게 돌려주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물건이지만, 여전히 진실은 오리무중이고 그 애의 주장만이 전부였지만, 진실된 그녀의 마음까지 외면하긴 힘들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인이 찾고 있을 거라고, 이런 사소한 물건일수록 더 찾기 마련이라며 그 애에게 백화점 위치를 재차 물었다.

“나 요새 회사가 바쁜데. 데려다줄 시간이 있으려나.”

그 애가 심드렁하게 말을 둘러댔다.

“엄마가 그냥 혼자 가지, 뭐. 지하철역으로 한 번에 가잖아.”

“그래, 그럼. 카톡으로 위치 보내놓을게.”

나는 고맙다고 대답했다. 머잖아 그 애는 자러 간다며 거실을 나서 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대장의, 아니 이호석의 뒷모습을 바라다보았다. 이제 대장이라 부르기엔 너무 커버린 걸까. 내가 선을 넘은 걸까. 저 애에겐 저 애만의 인생이 있다. 내가 알면서도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나도 뒤이어 TV를 끄고 안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닫고 침대에 눕기 전 가방 속 이어폰을 꺼내 보았다. 여전히 그것은 붉었다. 사람 피부 위에 불거진 혈관 같이 보이기도 했다. 자르면 피가 솟쳐나오는 게 아닐까 문득 두려웠다. 나는 그것을 손안에 움켜쥐고 만지작거렸다. 순애가 어떻게 이 이어폰을 알지. 어느 순간 그녀 딸 주애에게서 풍기던 향수 냄새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것이 이 사건의 단서일 수도 있었다. 순애는 나를 수십년 동안 잊지 않고 쫓았다. 대체 왜 그런 거지. 내가 다시 지어줬다는 그녀의 이름대로 순애(純愛) 때문일까. 침대로 가 걸터앉았다가 이내 몸을 누였다. 이불을 턱끝까지 끌어당겼다. 베란다로 통하는 안방 창이 꽉 닫혀있는데도 온몸에 냉기가 어렸다. 호석은 어째서 여자친구 얘기만 나오면 피하는 거지. 이어폰 속 목소리가 그 애가 게이라고 말했을 때부터 나는 줄곧 그 애를 향해 의심 아닌 의심을 품었다. 그 의심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빌기 위해 교회라도 다녀야 할 판이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생각을 잇기 위해 잠시 눈꺼풀을 내리누르듯 눈을 감았다 떴다. 그 목사는 여전히 동네 교회에 있을까. 내게 뱃속의 씨가 잘못 됐다고 말한. 예수를 거역하는 배신자일 거라고 말한. 동성애자라고 감지한....... 그러다 눈이 감겼고, 나는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에도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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