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레즈 투쟁기 11회

by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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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은 한산했다. 수요일, 평일 오후여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분실물 센터를 찾아가 그 빨간 이어폰을 맡겼다. 직원은 친절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재빠르게 일이 처리되었다. 나는 주인이 찾아가지 않을 시 어떻게 되냐고 물었다. 남자 직원은 분실물은 한 달 간 보관되며 그 안에 주인이 찾아가지 않을 시 자동 폐기 수순을 밟는다고 설명해주었다. 그 말이 나를 불안케 했다. 한 달. 그러니까 저 이어폰에게 내려진 생명의 시한이었다. 주인이 나타날까. 확신할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어떠한 근거도 없었으므로. 나는 다시 내가 가져갈까, 하다가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는 데 생각이 가닿았다. 그것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야 했다. 그래야 순애가 쓴 편지의 의문도 조금이나마 해소될 것이었다. 나는 직원에게 혹시 영화관이 자리한 7층의 주차장 쪽 입구 CCTV를 확인할 수 있냐고 넌지시 물었다.

“귀중품을 잃어버렸는데 저번에 여기 와서도 못 찾아서요. 부탁해요.”

나는 호석과 함께 영화를 본 날짜를 기억해내고는 그대로 전달해주었다. 직원은 상사한테 물어본다는 식으로 애매하게 둘러대고는 자리를 잠시 비웠다. 나는 데스크 앞에 서서 초조하게 그를 기다렸다. 여기서 이러는 게 맞나, 싶었다. 주인을 찾아서 뭘 어쩔 건가. 답 없는 질문을 마주 보는 기분이었다. 손거스러미를 뜯고 손톱을 깨물기를 반복했다. 괜히 거울만 들여다보며 머리를 매만졌다. 마치 잘 보여야 할 사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직원이 돌아왔다. 그는 내게 CCTV로 확인하고자 하는 날짜와 시간을 다시 물었다.

“누가 훔쳐갔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가 나를 보안실로 안내하며 말을 건넸다. 나는 우물쭈물하다가 모르겠다고 답했다.

“잃어버린 건 확실한데....... 누가 가져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누가 훔쳐갔다면 차라리 다행이에요. CCTV 사각지대가 거의 없으니까요. 99.9퍼센트 범인을 찾을 수 있단 얘깁니다. 그렇지만 그냥 잃어버린 경우, 그러니까 고객님이 착각하신 거라면 찾기 어려우실 거예요. 지난번엔 키우는 강아지를 잃어버렸다고 CCTV 열람을 요청하신 고객님도 계셨어요. 보여드리는 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글쎄, 강아지가 웬 말입니까. 무엇보다 이 백화점은 반려동물 출입금지랍니다. 물론 열람 결과 허탕이었고요. 강아지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좀 이상했던 사람이었어요. 들어보니 예전엔 있지도 않은 자기 딸을 찾아달라고 백화점을 들쑤셨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동물을 데리고 왔다면 숨기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출입구에서 보안요원에게 저지당할텐데 말입니다. 강아지를 찾아달라니....... 옛날엔 백화점에도 사물함 같은 애견 보관소가 있었지만 학대 논란으로 사라진지 오래죠. 그 고객님도 지금 고객님과 비슷한 연배의 여자 분이셨어요. 아, 물론 고객님께서 이상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는 말이 무척이나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가 떠벌리는 얘기 중에 놓칠 수 없는 말도 있었다. 정신 이상. 어쩌면 데스크 직원에겐 나의 그 ‘귀중품’이 강아지만큼이나 어이없고 하나의 해프닝에 가까운 사물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이어폰을 떨어트린, 그러니까 내가 줍길 바랐던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야 했다. 그러지 않고서 작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보안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CCTV 기록이 저장된 화면을 확인했다. 내가 직원에게 말한 시간은 이어폰을 주운 찰나였다. 나는 한순간 화면 재생을 멈추어달라고 외쳤다. 내 옆을 바짝 스치고 간 여자가 등장한 장면이었다. 뒷모습만 보여 다른 각도의 CCTV를 확인할 수 없냐고 묻자 보안실의 젊은 남직원은 귀찮다는 듯 얼굴을 구긴 채 아무말 없이 화면을 전환했다. 보였다. TV 화면처럼 화질이 선명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자를 못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였다.

순애의 딸, 주애. 주애가 긴장한 듯이 얼어붙은 얼굴로 이어폰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찾으셨나요?”

데스크 직원이 물었다.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흥미를 보이고 있었다. 종일 분실물 센터 데스크를 홀로 지키고 서있으려니 지겨웠던 차에 재미난 일이 생긴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사건이 다른 누군가의 뉴스 속 기삿거리로 전락하는 건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나는 머리를 내저으며 못 찾았다고 간단히 대꾸했다. 그는 못내 아쉽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며 보안실에서 나를 데리고 나갔다. 나는 그에게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말하고는 천천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을 향해 내려갔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블랙 아웃이 된 것처럼 머릿속이 새까맸다. 또는 새하얗거나. 어느 경우든 주변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여 우걱우걱 남김없이 ‘비밀’이란 위장으로 소화시킨 사실은 변치 않을 것이었다. 어째서 주애는 이어폰을 흘린 걸까. 일부러 그런 거였다. 나는 당장에 주애에게 전화를 걸어 따져 묻고 싶었지다. 그러나 가까스로 참았다. 서두르면 되는 일도 안 풀리는 법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내가 잠든 사이에’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거지. 나는 시퍼렇게 두 눈 뜨고 살아있었으나 동시에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죽어있던 거나 다름없었다. 세상이 나를 벼랑의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거기서 내가 무슨 선택을 할지 잔인하게 지켜보려는 듯.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거라고, 나는 주먹쥔 손에 힘을 주며 다짐했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확인하고는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의 목소리가 귓가에 기어들었다. 힘이 잔뜩 빠진 목소리였다. 무언가에 지쳐있다고 숨기지 않고 내색했다. 이 전화마저도 온 힘을 쥐어 짜내 겨우 받은 거라는 양. 그러나 내가 주애 씨, 나예요, 라고 말을 꺼내며 대화에 숨을 불어넣자마자 그녀의 목소리는 돌변했다. 갑자기 기다렸다는 듯 생기를 띠었다. 나는 그것부터 반갑지 않았지만 일단 할 말을 해야 했다.

“요즈음 시간 되는 때 있어요? 만나고 싶어서. 돌려줄 것도 있고요.”

“엄마 때문이죠? 아주머니, 그렇지 않나요?”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나는 무시하거나 아니라고 할 수 없어 그렇다고 답했다.

“언제고 다시 연락하실 것 같았어요. 엄마가 떠나기 전에 꼭 내가 아닌 아주머니만을 남기고 떠난 느낌이었거든요. 전 엄마 떠나고 나서 이사도 했고, 회사도 그만뒀어요. 잠시 쉬는 거지만. 시간은 언제든 되니 편하신 때 말씀해주세요.”

나는 어쩐지 그녀의 목소리에 불안이 가시고 평안이 깃든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약속을 잡았다. 통화를 끊고 나서 나는 잠시 관자놀이 부근을 세게 눌러 비볐다. 사라져라. 사라져라. 안 좋은 생각은 모두 다....... 이제 거의 다 왔어. 풀 수 있는 퍼즐이었다. 이기진 못해도 지는 것도 아닌 게임이었다. 아니, 질 수 없었다.

그때 핸드폰 카톡 알림이 쉼없이 연달아 울리며 주변의 정적을 깨뜨렸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걸음을 멈춰세웠다. 지하 1층까지 내려가 백화점과 지하철을 잇는 지하통로로 들어서던 참이었다. 핸드폰 확인했다. 뭔지 모를 일이었다. 나를 포함한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낯선 단체 채팅방에 초대되어 있었다. 초대한 이는 뜻 모를 이니셜을 가지고 있었다. 이어 영상 하나가 전송되었다. 엄지 끝이 무심코 영상을 클릭했다. 머릿속에선 누르면 안 돼! 절대 누르면 안 돼! 목소리가 외쳐댔지만(이어폰 속 그것일까) 이미 덮쳐온 폭풍이었다.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발가벗은 남자가 제 성기를 붙잡고 흔들고 있었다. 이따금 엉덩이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수 초간 뚫어져라 바라보고 나서야 그 음란한 짓을 하는 주인공 남자가 누군지 알아차렸다. 호석이었다. 우리 아들, 대장이었다. 누가 봐도 그 애였다. 영상 속 그 애는 별의별 음란하고 추잡한 짓이란 짓은 다했다. 나는 눈 뜨고 내 살을 칼로 에는 과정을 지켜보고 감내하듯 재생되는 영상을 응시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호석이가 여기에. 딥페이크물, 그런 건가? 아니면 닮은 사람인가?

의문을 채 해결할 새도 없이 다른 사람들의 메시지가 연이어 올라왔다. 영상이 뭐냐고, 그 안의 남자는 누구냐고 궁금해하다 이내 호석임을 알아차리는 반응이었다. 말없이 채팅방을 나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초대된 이들의 명단을 확인했다. 개중엔 이름이 익숙한 그 애의 중고등학교 친구들 이름도 끼어있었다. 무엇보다 이호석, 이름 세 글자도 자리해있었다. 초대한 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얼어붙은 채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핸드폰만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누군가가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왜소한 몸집의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내게 죄송하다고 말하고는 서둘러 개찰구를 향해 뛰어갔다. 지하철이 도착했다는 안내음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나도 달려가야 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붙박인듯 꼼짝할 수 없었다. 미동도 않은 채 핸드폰만 바라다보았다. 영상을 확인한 사람들의 읽음 표시는 빠르게 줄어들다 이내 ‘0’이 되었다.

핸드폰을 떨어트린 건 그 순간이었다. 얼른 다시 주웠지만 시멘트 타일 바닥에 떨어뜨린 탓에 화면에 어지러이 금이 가 있었다. 한편으로 파편화 되어 부서진 내가 비쳐보였다. 지금의 나를 엿본 누군가가 내게 암시를 보내는 걸까. 나는 핸드폰을 다시 떨어트렸다. 아니, 떨어트린 게 아니라 바닥에 내던졌다. 주워서 또 바닥에 던졌다. 발꿈치를 세워 신발 뒤축으로 핸드폰을 찍어누르듯 밟았다. 숨이 찰 때까지 그 행동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부서져가는 핸드폰이 눈에 들어온 동시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다가온 사회복무요원 명찰을 단 남자애가 괜찮냐고 물을 때까지.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아무 문제 없어요.”

나는 그렇게 말한 뒤 태연하게 바닥의 핸드폰을 주웠다. 그리고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박살이 나버린 핸드폰을 가방 깊숙이 숨기듯 집어넣은 채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호흡을 가지런히 가다듬었다.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누가 이렇게 안 받는 건지 서서히 화가 치미는 와중에 그 주인공이 나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부서진 핸드폰은 여전히 괜찮다는 듯, 말짱하다는 듯 요란스레 비명을 질러댔다. ‘대장’이란 이름이 화면에 떠있었다. 호석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핸드폰을 아예 끄려고 했지만 터치가 먹히지 않았다. 버튼은 함몰되어 누를 수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이 끊임없이 울리도록 내버려두는 수밖에.

“아줌마. 전화 오는 것 같은데 좀 받아요. 시끄럽잖아요.”

“죄송합니다.”

한 중년의 남자가 타박하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죄송하다고 하곤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는 나를 이상하다는 눈길로 쳐다보다 불평하며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한참 후였다. 모든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나는 이렇게, 이 정도로 부서지고 마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기에. 꼭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황정은 소설가가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지. 소설 속 주인공이 같은 게 되고 싶겠냐고. 어느 고약한 작가가 나를 소설 속으로 유인해 주인공으로 못박고는 이리 굴러 저리 굴러 똥개훈련을 시키다 내 몸에 기름을 뿌리고 불 붙은 라이터를 던진 것 같았다. 나는 활활 타오른다. 이곳은 지옥이다. 여기가 지옥이다. 순애 마저 없는 지옥에서 나 홀로 타는 외로움이란, 이루말할 수 없었다. 질식할 것 같았다. 얼마 못가 나는 지하철에서 내쫓기듯 빠져나왔다.

아직 집에 가려면 다섯 정거장이 남았는데. 나는 뇌까렸다. 외롭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그건 단어나 문장이었으며 장면이나 노래이기도 했고, 목소리였다. 그러나 하나도 분명하게 읽어낼 수 없었다. 힘겹게 두 발을 끌듯 움직였다. 계단이 꼭 히말라야 등산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기력이 소진된 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시 핸드폰으로 눈길을 돌렸을 때, 부재중 전화 아홉 건과 카톡 알림이 수십 개 쌓여있음을 확인했다. 그것들을 볼 용기는 말끔히 사그라들고 제멋대로 날뛰는 공포만이 오롯이 피어났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제대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순애가 보고 싶은 건 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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